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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an 24. 2024

아이에게 아빠 욕 하지 마세요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Asda로 향했다. Asda는 다운타운에 있는 대형슈퍼라서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자주 방문하는 곳은 아니다. 늘 붐비고, 계산대는 많이 느리다. 오늘은 스페셜 오퍼 중인 과일 티와 Asda에서만 파는 (한국식) 쌀을 사러 다. 장바구니를 들고 셀프체크아웃을 위해 줄을 섰는데, 바로 뒤에 무슨 이유인지 학교에 가지 않은 예닐곱 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징얼거리던 아이.

"아빠가 저번주에 그거 사준다고 약속했어요. 제발 오늘 사주면 안 돼요? 제발요."

"멍청한 네 아빠말은 듣지 마. 네 아빠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풀이 죽은 아이가 입을 닫았다. 장난감을 못 사는 것에 대한 서운함인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아빠가 자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게 미안해서였는지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남편이 미울 수 있다. 잘못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중엔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다. 그래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아빠를 그런 식으로 폄하해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


아빠의 험담을 습관처럼 하는 친정엄마를 위로하며 컸다. 고등학교 때까지 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나쁘고 까다롭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대학을 다니며 심리적 거리를 두고 부모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비로소 그동안 내가 들어온 것들이, 왜곡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 엄마의 실체 없는 감정의 부유물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과장되거나 거짓이었던, 한 사람에 대한 무차별 공격. 기억하는 한 늘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있었던 나는, 아빠가 너무 싫어 엄마가 나까지 버리고 떠날까 봐 노심초사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불안이 극에 달해, 고등학교 때는 엄마에게 '제발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요?'라고 엄마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간절한 부탁도 해 보았다. 물론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남편과 싸우면, 많이 외롭다. 세상에서 제일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단 한 사람으로부터 내쳐지는 기분. 내가 이런 사람을 믿고 앞으로 인생을 계속 함께해도 되는 것인가 불안하기도 하고,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며, 상황에 화가 나고,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를 보면,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응당 받았어야 할, 하지만 받지 못한 '이해위로'가 떠오르며 억울해진다. 그래서 아주 찰나의 안정을 위해 아이를 붙들고 남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속이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말하면서 화가 더 나기 시작해 결국 생각보다 심한 욕을 내뱉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올라오는 순간에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남편은 아이의 아빠이고, 아이에겐 또 하나의 우주이다. 내겐 그 우주를 흔들고 짓밟을 권리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므로 나에게 단점이 있듯 아이의 아빠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단점을 나열하는 것과 감정을 담아 비난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부정의 감정이 담긴 아픈 말들 속에서는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특히나 아빠가 없는 곳에서 아이에게 아빠 험담을 늘어놓으며 비겁한 편 가르기를 한다면, 아이에겐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추가된다. 항변할 기회마저 없는 상황, 이미 아이의 눈에도 그건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다. 엄마에게 무언의 협조를 한 것 같은 아이는,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빠를 미워해야만 할 것 같은 양가의 감정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해진다.


평생 아빠가 미웠고, 미안했다. 마흔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부모와의 관계는 회복이 힘들다. 엄마의 이야기 속 아빠가 너무 끔찍해서,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아빠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면 아빠에게 가던 모든 비난의 화살은 나를 향했다. 살얼음처럼, 늘, 딛고 있는 바닥이 불안했다.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건강한 나무 에서 적당히 보호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이 세상에 건강히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존재론적 고민은 나의 이십 대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2년 전쯤인가 남편과 언쟁을 하던 중이었는데, 아이가 불안해하며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림을 한 장 그려 나온 적이 있다. 그림 속에는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고 곁에는 '아빠 엄마의 싸움이 나를 슬프게 해요'란 말풍선이 달려있었다. 우리 부부는 당장 도돌이표 언쟁을 멈추고 아이를 함께 안아주며 말했다.

"아빠 엄마는 서로를 엄청 사랑해. 근데 사람은 다 다르거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그래서 이렇게 서로 이야기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해. 그래야 더 많이 이해하고 발전할 수 있거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를 불안하고 슬프게 했다면 아빠 엄마가 정말 미안해. 다음부터는 네가 무섭지 않도록 더 부드럽게 얘기해 볼게."


남편이 가진 게으른 습관이나 본인도 고치고 싶어 하는 단점들이 문득 아이에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남편에게 화가 날 수도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너도 네 아빠처럼 게으르고 한심하게 살 거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비난 대신에, '아빠도 아빠가 가진 단점들을 고치고 싶어 하실 거야. 아빠 엄마는 네가 좋은 습관들을 갖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해. 어른도 마찬가지야. 우리 다 같이 노력해 보자'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길. 남편에게 난 화를 아이에게 쏟아버리는 미성숙한 엄마는 되지 않길. 부부 문제는 부부끼리 풀고, 아이의 불안을 이용해 나의 결핍을 채우지 않도록 마음 단단히 먹기를.


며칠째 스톰 Isha의 영향으로 강풍이 분다. 바람 때문인지 집안에서도 한기가 느껴진다. 아침에 사 온 면역 강화 를 한잔 하려고 찬장을 열자, 남편이 대충 쌓아놓은 티박스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말끔히 정리해 둔지 한나절도  됐는데, 티백들이 가벼우니 망정이지... 언젠가는 찬장을 열다 떨어진 물건들을 맞고 죽는 거 아닐까,라는 말도 안 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상상을 하며 휴, 한숨을 내뱉었다. 옆에서 괜찮냐고 묻는 아들에게,

"응, 티박스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문을 여니 다 떨어지네. 괜찮아, 안 다쳤어."

라고 웃어 보이니, 아들이 아빠 서재로 쪼르르 달려가 얘기한다.

"아빠, 엄마 머리 위로 티박스들이 다 떨어졌어요. 다음엔 위험하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주세요."

그러자 남편이 강아지 눈을 하고 주방으로 달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준다.

"미안해, 여보.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되네. 딴생각을 하며 티를 만들다 보면 정리하는 걸 깜빡해. 더 노력할게."


나의 불만이나 불안을 아이를 통해 해소하지 않기. 이기적인 결정으로 아이가 바라 볼 세상을 흐리게 하지 않기. 부부간의 예의를 지키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기.


그래, 그런 마음들이면 된다.





※ 발행일이 아니지만, 아침에 겪은 일이 마음에 걸려서 글로 풀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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