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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주 이혼한 딸의 집에 온다

3부.이혼이 내게 남겨준 것들(3)

by 유해나

이혼하고 혼자 사는 딸의 아파트에는 매주 엄마가 방문한다. 명목은 언제나 고양이 돌봐주기 이다. 애묘가인 엄마는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혼자 집을 지키는 고양이가 불쌍하다면서, 일하는 중 짬을 내서 우리 집에 들러 고양이와 놀아주고 가신다.


동시에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해주고, 세탁기의 먼지망을 털어주고, 화장실 곰팡이를 청소해 주고, 냉장고에 과일을 예쁘게 깎아주고 가신다. 엄마도 바쁠 텐데 안 오셔도 된다며 미안해하는 내게 엄마는 "너 말고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그래" 라며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하신다.


엄마는 그렇게 이혼한 딸과 고양이를 모두 돌봐주고 있다.




한때 엄마를 원망했던 적이 있다. 연인 관계 속에서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게 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해서라며 원망했다. 심리 상담을 받아도, 관련된 책을 읽어도 내가 겪는 문제의 원인은 모두 “주양육자와 3살까지의 애착관계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만 3살에 이미 동생이 2명 있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은 좋지 않아서 아빠는 주말부부로 멀리 일하러 가시고, 엄마 혼자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어린 자식 셋을 돌봐야 했다. 삼십 대 초반, 고작 지금의 내 나이였을 엄마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애착 형성에 제일 중요하다는 만 3살까지 밀착 케어를 받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엄마에게는 나 말고도 돌봐야 할 동생 두 명과 시부모님이 있었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은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짐작하건대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하게 된 건 이혼 후의 일이다. X와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에는 내가 연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다 어릴 적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부모님 탓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솔직히 연애를 하기 전에는 내가 불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오히려 나는 부모님과 유대관계가 좋은 편에 속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심리학 책에서는 부모-자녀 간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는 황금 타이밍이 2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앞서 말한 만 3세까지의 애착 형성기이고, 두 번째는 사춘기이다.


기억하기 어려운 유년 시절보다는 오히려 사춘기 때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평생의 유대관계가 좌우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만 3살까지의 애착 형성기보다 사춘기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며 부모님 속을 꽤나 뒤집어놓았다. 엄마에게 살면서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어보면, 내 사춘기 시절이라고 할 만큼 유난스러웠다.


하지만 엄마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나를 믿어주었고, 바쁜 워킹맘으로 살면서도 내가 필요할 때면 항상 곁에 있어주었다. 제2의 애착 형성기라는 사춘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엄마와 나 사이에는 단단한 신뢰가 쌓여 있었다.





엄마는 지금도 묵묵히 딸 셋과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도 가사도 육아도 모두 해내는 슈퍼우먼의 모습이다.


언젠간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맞벌이로 살면서 집안일 대부분을 책임지고 애 셋을 어떻게 키웠냐고. 그러면서 포기한 게 무엇이냐고. 엄마는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포기할 건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고.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지 그런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대답에 실려 있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온 엄마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서 첫 3년간 안정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후 20년 넘게 한결같은 사랑을 준 엄마를 원망하는 건 너무한 일이었다. 엄마는 이미 나에게 넘치는 애정을 쏟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X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여전히 부모님을 탓하며 제자리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폭풍 같은 관계 속에 있을 때는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가장 만만한 대상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탓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이혼을 통해 내가 배운 두 번째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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