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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정한 버팀목

3부.이혼이 내게 남겨준 것들(4)

by 유해나

엄마의 사랑 방식이 헌신이었다면, 아빠의 사랑 방식은 묵묵함이었다. 아빠는 내가 이혼을 선택한 순간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선택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내가 성적표를 들고 오면 아빠는 항상 “고생했네” 한마디만 하셨다. 100점을 받든 60점을 받든 한결같은 반응에 아빠는 나한테 관심이 없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아빠의 사랑 방식이었다. 아빠는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똑같은 반응이었다. 아빠에게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딸이 노력했다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혼 후 돌아온 딸에게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고생했네”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아빠와 단둘이 술을 마시며, 아빠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빠도 많이 속상하지만, 괜히 뭐라고 말을 했다가 내가 상처 입을까 봐 섣불리 말을 못 하겠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당신의 속이 답답할지언정 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 쪽을 선택한 거였다.



비록 많은 표현을 하지 않은 아빠였지만, 아빠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 그리고 이런 묵묵한 지지 덕분이다.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둘째 동생. 동생 역시 나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힘들어할 때면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같이 울어주었다. 동생의 조용한 지지 덕분에 별 말 하지 않아도 언제나 나의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혼 후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것도 둘째 동생 덕분이다. 동생은 항상 새로운 운동 센터를 알아왔고, 같이 가자고 권유해 줬다. 동생과 운동할 겸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막내 동생은 인생에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이혼 소식을 알리던 날, 막내 동생은 1차 시험 합격 소식을 알렸다. 다행이었다. 만약 동생마저 시험에 떨어졌다면 집안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을 텐데,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한 동생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내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2차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를 하면서도 막내 동생은 간간히 나를 챙겨주었다. 자신의 달력을 사면서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길 바란다며 달력을 사주었다. 자주 연락하지는 못했지만, 워낙 속이 깊고 말을 예쁘게 하는 막내여서, 한 번씩 동생과 연락할 때마다 전해주는 위로와 응원은 나를 감동시켰다.





이혼 후에도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우리 가족 덕분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마음이 힘들 때면 언제나 가족들 곁으로 갔다.



가족들은 내 선택에 대해 비난하거나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 된 마음으로 이게 옳은 건지 수없이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나를 믿고 기다려주었다.



이런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자양분이었는지. 온종일 X에게만 집중할 때는 보이지 않던 나의 든든한 뿌리가 보였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가족들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다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20대 때는 항상 남자친구와 함께하느라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때는 나도, 가족들도 내가 남자친구와 어울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끼리만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지금처럼 내가 가족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고, 밥을 사주고, 동생들도 잘 챙겨주는게 너무 좋다고. 결혼 하기 전에도 이렇게 보냈다면, 지금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



나 역시 남자친구하고만 노는 대신 지금처럼 가족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내 마음도 훨씬 안정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이혼 후 가족들과 더 돈독해졌고, 나의 진정한 버팀목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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