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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이혼 D+100

by 유해나

아무리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해도, 이혼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잘 지내는척, 괜찮은척 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예고 없이 불쑥 우울함과 외로움, 공허함이 찾아왔다.


이혼 초기 3달 정도는 그런 감정들이 찾아오면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술과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멀쩡한 얼굴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집에 와서는 매일 한두 병씩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잠들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상실감과 외로움, 우울함이 침잠되어 있었는데 술을 마셔야만 그 감정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술에 취해야만 진실된 내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혼잣말을 하고, 엉엉 울고, 슬픈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술에 취해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때로는 폭식도 동반했다. 주말이면 배달 음식을 시켜서 자제력을 잃고 쉴 새 없이 음식을 욱여넣었다. 감정적 허기 때문인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과식을 해서 위/대장에 이어 자궁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리 많이 먹었다 해도 위가 늘어나 자궁까지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금 어딘가 고장 나있긴 하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마음이 많이 힘들구나. 그게 이렇게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미친 듯이 폭식하고 술 먹는 것으로 표출되는구나.


문득 무서워졌다. 계속 이렇게 살다간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엄청난 비만이 되어버릴 것 같았고 그럼 나 자신이 더 싫어질게 뻔했다.


다음날부터 혼술 / 폭식 빈도를 서서히 줄였다.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좀 더 건강하게 외로움을 달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처럼 이혼했든 아니면 원래부터 혼자 살던 사람이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들은 외로움이나 상실감, 공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찾아봤다.


결론은 외로움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감정임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에 압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해서도, 연애할 때도 외로운 순간은 분명 있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괴로운 순간들은 오히려 결혼했을 때 더 많았던 것도 같다.


그 순간의 감정에 취해 다급하게 누군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혼자서 외로움을 온전히 느끼면서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혼자서도 외로움을 잘 이겨내었던 날의 일기를 이곳에 옮겨 적어 보려고 한다.




[2024년 어느 날의 일기]

어제는 정말 너무너무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계속 X 생각이 났고, 누구에게든 연락해서 이 기분을 달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남에게 연락하는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나 혼자 이겨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을 온전히 느끼며 집에 왔고, 소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에 예쁜 튤립 한 단을 사 와서 꽃병에 꽂아놓고,

집안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달콤한 딸기 두 알을 먹고,

내일의 도시락을 싸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고롱대는 고양이의 털에 얼굴을 파묻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이 모든 걸 마치고 나니 내 기분은 훨씬 나아져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매우 자랑스러웠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감정을 과잉 표출하지 않고도,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낼 수 있다!


한 층 더 성장한 기분이었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미치도록 고독하지만, 고독을 떨쳐내려 하지 말고 가만히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살면서 어떻게 매번 좋은 감정만 느낄 수 있겠어.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종종 외로운 날이 찾아올 때면, 오늘의 기분을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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