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터 Jul 04. 2024

휴머니즘

인간을 감상하는 방법

예전에 심리 상담 선생님께 상담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상담 횟수가 쌓이고 선생님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쯤이었다.


"음 저는 인본주의 상담을 하는 사람이에요."로 시작한 선생님의 답변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검색해 보니 진실된 관심과 공감적 이해, 긍정적 수용 같은 것들이 인간중심 상담의 성격이라고 한다.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내 모습 그대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고 이것이 스스로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상담실을 나올 때마다 진정한 내 편을 얻은 것처럼 든든했다.


© 2022 Hanna K

당시 서울의 번화가에 10년째 살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내 삶에 들어온 인연을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냉소적으로 대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 변화의 계기는 직장을 관두고 간 워킹홀리데이에서였다.


사람보다 양의 수가 더 많다는 뉴질랜드에서 내 생에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본 외국인에게도 바라는 것 없이 관대하고, 어떤 상황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친절과 사랑을 삶의 모토로 하는 그들을 보다 보니 의심으로 가득 찬 내 모습이 딱하게 느껴졌다. 그런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가 생겼다. 공원에 차분하게 앉아있기만 해도 상상력이 마구 피어났다.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자마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판데믹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반강제로 귀국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려고 지방으로 이사했다. 동네 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외부인에게 먼저 다가와주었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이들이 보였다. 각자 저마다의 상처와 불안을 가지고 크고 작은 일에 놀라고 기뻐하면서 서로에게 다정해지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는 먼저 그들에게 멀어져야 했다. 작품을 바라볼 때도 한 발짝 물러서서 감상하는 습관이 필요하듯 너무 바짝 붙어 지켜보느라 인간 존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몰랐다.


아직도 나는 소도시를 사랑한다. 길거리에 있는 모든 이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칠 수는 없지만 스쳐 지나가는 모든 만남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그 환경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의외로 우리는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보다 카페 직원이나 버스 기사와 같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서 오는 긍정적인 경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관심으로 바꾸고, 냉정해지기보다는 책임을 지려 한다. 그러면 인간을 예술 작품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때가 오려나 하고.


작가의 이전글 고립과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