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디론가 Jul 01. 2016

2. Reject _2

거절하다. 거부하다.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1년간의 어학연수 이후, 내 인생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달 뒤, 바로 3학년 복학. 1년 동안 호주에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거의 백수 생활에 가까웠던 여유로운 일상 때문인지 이제는 좀 바쁘게 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배터리 100퍼센트 채워왔으니 이제는 열심히 움직여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영어회화 과외를 시작했고, 4월부터는 나고미 라멘 가게에서 주말 알바를 시작했다. 학교 생활에 일주일 2번 영어 과외, 그리고 주말에는 라멘가게 알바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는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무엇보다 2014년은 내게 대외활동의 해이기도 했다. 방송국 Jtbc로 시작해서 광고회사, 문화 마케팅 회사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놓치지 않고 대외활동을 했다. 정말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2개라도 모자랐다. 학교 과제에 시험 준비까지 하려니 매일 매일을 새벽 3시 전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눈코뜰새 없이 바쁠 때, 며칠 째 잠도 못자고 일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번득 생각이 떠올랐다. ‘와.... 너무 좋다. 와... 너무 재밌다. 와... 생각보다는 덜 피곤한데?’ 신기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내 눈은 감기지 않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신기하고 좋았다. 나 자신이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나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좋았다. 잠을 잘 수가 없더라도,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더라도 좋았다. 아마 ‘거절’이 아니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대외활동에 그치지 않고, 봉사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해외 대사님들의 의전도 맡으며 나의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12월이 왔을 때는 내 상태는 거의 죽음이었다. 학교생활, 영어 과외, 대외활동 3개에 봉사활동까지. 정말 딱 거의 죽음이었다. 화장은 아무리 해도 먹지 않았고, 매일이 폐인 같았지만 영화도 열심히 봤다. 내 인생에 1년 동안 그렇게 많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취미생활까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의 내가 좋았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고 슬프지 않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리고 내가 인정받고 있다면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다 해내고 싶구나. 내게는 정말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 정신에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자신감’이 충만한 내가 되었으니까. 너무나 다양한 일을 했기에 그 어떤 것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누구도 나를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이라고 보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경험이 많은 만큼 취업할 때도 좀 더 쉬운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는 내가 좋았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수많은 ‘거절’들과 마주해야하는 때가 왔다. 그 말로만 듣던 취준생이 이제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고3이라는 시간이 왔었듯이 지금 내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았던 ‘학생’이 끝나고 취준생이 되었다. ‘거절’은 몇 번을 경험했는가와는 상관없이 매번 마음이 아프고, 매번 허탈하고, 매번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나보다. 이제 진짜 시작이겠구나 하며 패기 넘쳤던 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다시 움츠러드는 나를 보며 눈물이 났다. 이제는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마주한 거절 앞에서는 하염없이 약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는 내 꿈도 거절 당할까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너무 내 욕심을 부렸던 것일까. 낯선 사회 앞에, 무서운 사회 앞에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걸까. 다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내 꿈보다는 사회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우기고 있는 걸까.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그 어떤 문장에도 온점이 찍어지지 않는다. 너는 잘하고 있다. ....? 그것은 욕심이 아니다. ....? 나는 멋진 사람이다. ....? 그 어느 문장에도 온점으로 마무리되기에는 힘든 일이다.


TV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말한다.


저도 힘들었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잖아요?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입니다.


많은 문장들을 보고, 들으면서 눈물지었다. 위로가 되면서도 상처가 된다. 위로가 되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문장들인 것만 같다. 정말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내가 정말 정말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진짜 정말 너무나도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걸까. 가끔은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끝나지 않는 꼬리처럼 달라붙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진다. 다시 눈물짓게 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았던 고3의 생활이 결국 끝이 났듯이 지금 영원히 날 괴롭힐 거 같은 취업이라는 높은 산도 결국 넘게 되겠지. 넘게 될 거야. 그럴 거야. 그 때가 돼서는 ‘거절’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덜 아프게 느껴질까.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내 눈물 때문에 나도 미칠 노릇이었다. 원체 눈물이 많기도 하지만 요즘엔 정말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봐도 조금만 감동적인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시울은 붉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3. 내가 '나'로 사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