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네번째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proactive," 적극적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이너리티에게까지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대학원 프로그램 학생들을 대상으로 버팔로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인턴을 구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그 포지션은 되지 않았지만 혹시 다른 오피스에서도 인턴을 구하고 있으면 알려달라고 물어물어 학점을 받는 댓가로 Dean of Students (학과장 오피스)에서 첫 인턴십을 진행하게 되었다. 주 업무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의 학위 완료 및 졸업 비율을 (retention rate & graduation rate) 계산해서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학생그룹과 비교하는 것 이었다. 계산에 필요한 함수만 잘 알고 있으면 큰 시간이 걸리지 않는 문제라 일을 비교적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사실 대학원 첫 학기를 막 마무리한 햇병아리에게 학과장 오피스에서 인턴을 한다는 것은 업무 외에도 학교의 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필요한 정보는 어떤 오피스에 문의해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학과장님도 나에게 커뮤니티 칼리지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시다며 어느 날은 학기 초마다 진행되는 모든 교직원 미팅에 나를 데려가셨다. 그 학교의 빠진 사람 빼고 모든 교수 및 교직원이 모인 자리였는데, 교수 측에 동양인 한 분이 앉아계셨고 교직원 중에는 인턴 나 하나만 동양인이었다.
전혀 모르는 분이고, 국적도 모르고, Asian American일 수 있지만 혼자 동지애를 느끼며 괜히 눈웃음 한 번 날려드렸다 ^.~
참고로, 2017년 American Council on Education 자료에 의하면 미국 대학교에서 근무 중인 동양인 (교수를 제외한) 교직원은 약 3%이다. 한 편, 미국 2018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미국 대학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는 동양인 학생들은 약 8.4% 이다. 큰 도시에 위치하거나, 명문대의 경우 동양인 학생 및 교직원의 비율이 미국 평균보다 더 높다. 반대로, 도심 외곽 지역에 위치하거나 커뮤니티 칼리지 같이 크게 선호하지 않는 대학에서는 동양인을 찾기 어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인턴으로 일하며 업무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출퇴근이었다. 오피스로 가기 위해서는 캠퍼스로 부터 약 30분, 집으로 부터는 약 40분 가량을 운전 해야 했는데, 겨울에는 눈 때문에 운전 하기가 위험한 적이 많았다. Upstate New York이라고 불리는 뉴욕 주 북쪽에 위치한 도시들은 실제로 기상 예보에 따라 눈보라를 피해 조기 퇴근을 하기도 한다.
웃긴 점은 눈이 원래 많이 오는 도시이다 보니 웬만해서는 눈이 많이 오더라도 수업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 때문에 앞이 안보이는 'white out' 이 진행된 상황에는 수업을 취소하지 않고, 그 다음 날 안되겠다 싶었는지 수업을 취소 하는 날이라면 그 때는 날씨가 또 험하지 않아 항상 누군지 모를 학교의 의사 결정권자는 늘 욕을 먹곤 했다.
당시 나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중국인 3명, 한국인 1명 그리고 인도인 1명, 나까지 포함해 총 6명과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눈이 오는 날이면 2명씩 한 조를 이뤄서 집 앞 부터 도로까지 이어진 길을 일컫는 drive way에 눈이 안 쌓이도록 치우곤 했다. 드라이브 웨이를 미리 치우지 않으면 눈이 쌓일 수록 치우기가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적당히 치워주는 게 중요하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2명씩 3조가 각 2번이 넘도록 하루 종일 치워야 할 정도로 겨울에 눈이 많이 왔다. 한 10분까지는 재밌게 치울 수 있는데 그 다음 부터는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그 다음 날에는 온 몸에 근육통을 호소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날도 업무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눈보라가 온다는 기상 예보를 확인 하고 퇴근 시간 보다 일찍 퇴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 할 수록 눈이 더 많이 왔다. 위험한 상황이 었기 때문에 모든 차선이 일차선으로 변경 되었고, 모든 차들이 깜빡이를 켜고 조심히 운전하고 있었다. 눈이 정말 많이 올 때는 도로 표지판들에게도 눈에 가려지기 때문에 어디 쯤 왔는지, 출구가 어디 인지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나가기 위해 구글 맵만 의존해서 운전하는 중,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을 넘어 '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을 보니 어떤 사람들은 차를 도로에 두고 걸어서 나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언 와이퍼를 손보기도 했다.
그 때, 엄살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하나님. 괜찮은 삶이었습니다. 곧 뵈요." 아직 볼 준비가 안되셨는지 나는 무사히 살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몇 시간에 걸쳐 운전한 끝에 집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인턴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학기에 나는 유급 포지션인 Graduate Assistant (GA)에 도전했다. 흔히 조교라고 번역될 수 있는 GA포지션은 오피스에 따라 학생의 등록금을 전부 혹은 부분을 내주기도 하고, stipend라는 2주에 1번씩 급여를 주기도 한다. 여러 인터뷰 끝에 나는 문과 대학 안에 속한 The Office of Philanthropy and Alumni Engagement 오피스에서 GA로 일을 하게 되었다.
주 업무는 졸업생들을 위한 이벤트 준비, SNS 에 콘텐츠 올리기, 학생들이 쉽게 기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벤트 구성하기, College Ambassador이라는 학생들 관리하기 등이었다. 듣기만 해도 재밌을 것 같은 GA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타운에서 제일 큰 맥주 공장에 가서 맥주 양조 과정을 보기도 했고, 와인을 마시며 미국 연금 프로그램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버팔로 뉴욕주립대 졸업생이자 트위터 커뮤니케이션 부서의 부회장으로 있었던 분을 캠퍼스로 모시고 와 학생들에게 강의 하는 것을 보조하기도 했다. 또 유람선을 타며 졸업생들끼리 네트워킹하는 이벤트에서 체크인을 담당하기도 했고, 60~ 70년대 졸업생 분들까지 포함한 졸업생들을 위한 이벤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뻘 되는 분들과 춤췄던 날도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졸업식 때 학생들의 트위터 맨션이 경기장 스크린에 나오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고, 장학금 수혜자와 기부자가 서로 만나는 갈라의 밤에서는 사진기사가 모든 그룹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두를 신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했다.
재밌었던 일 만큼이나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유쾌하고 한국에서 온 햇병아리를 잘 보살펴 주셔서 내가 "에-인젤," 천사들이라고 불렀다. 어느날은 일하고 있는데 에인젤들이 내 오피스로 들어와 내 오피스 문을 가로막았다. 나는 '뭐지?' 싶었고,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카페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 화장실에 가도 누가 손대지 않는 나라인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보낸 나는 어느 날 학교 건물 안 화장실 앞 소파에 가방을 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햇병아리 시절 그랬던 것이고,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볼 일을 보고 나오니 한 남자가 가방을 이렇게 두면 도둑맞을 수 있다고 내게 알려줬다. 고맙다고 하고 가려는 데, 그 남자가 말을 이어 갔다.
"By the way, where are you from? Your English is good."
"Oh thank you, I am from Korea."
"Oh yeah? I am from Greece so I know how it feels like to study in the U.S."
"Cool!"
"OK here's my number, if you like to go to a gallery, come to the one this Saturday."
'Greek guy' 에게 받은 번호는 바로 버려졌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그와 캠퍼스 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마주치곤 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라이팅 과제가 많을 때 스타벅스 그린티 라떼의 힘을 빌리곤 했는데, Greek guy는 나의 초집중한 모습에도 말을 걸어와 그는 나의 대학원 시절 내내 마주 치고 싶지 않은 사람 1위를 차지했다. 특히, Greek guy 특유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뒤를 돌아 보지 않고도 내 주변에 그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살고 있던 하우스메이트들과 수다를 떨다가 어쩌다 Greek guy 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중국인 룸메이트도 수년 전,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그 친구도 갤러리에 초대를 받았으며, 캠퍼스 내에서 그와 마주칠 때면 불편했다고 한다. 즉, 그 Greek guy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은 레퍼토리로 동양인 여학생들에게 집적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에인젤 오피스 동료들과 스타벅스에서 줄을 기다리던 중, Greek guy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나를 보고 에인젤들이 괜찮냐고 물어밨고 나는 그의 집적 history를 나누게 되었다. 나의 얘기를 들은 에이젤들은 다같이 그를 향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 Greek guy가 어느 날은 우리 오피스가 있는 층에서 배회하고 있었고, 그를 본 나의 에인젤 동료들은 바로 내 오피스로 들어와 나의 신변 보호를 위해 마치 보디가드 처럼 팔짱을 끼고 오피스 문을 막은 것이다. "I am going to report to the police if I see him next time," 역시 든든한 내 에인젤들이었다!
또 다른 에인젤은 자신도 과거에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더 잘해 주곤 했다. 스타벅스에 같이 가면 열에 아홉번은 커피를 사주었고, 발렌타인 데이 등에는 스페셜로 나온 케익팝도 사주며 내 가족은 잘 있는지 물어봐주곤 했다. 당시 나는 내 한국 이름 Haeun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은' 발음을 잘하지 못했다. 어떤 교수님들은 "해운" 이라고 발음하셨고 어떤 분들은 "미스리"라고 부르셨다.
스타벅스처럼 음료만 픽업하면 되는 곳에서는 이름이 불리기 쉽게 한국에서 다니던 영어 학원에서 지어준 이름인 Evelyn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와 스타벅스에 자주간 그 에인젤은 나를 Haeun a.k.a. Evelyn 이라고 불렀다. 후에, 나는 미국 대학 교직원으로 일을 시작 하며 미국 사람들도 발음 하기 쉽게 Hanna 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에인젤은 내 연락처를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Haeun a.k.a. Evelyn a.k.a. Hanna
마이너리티로 살면서 이름 문제 겪는 거는 국룰 아니고 세계룰, 지구룰 이잖아요?
물론, 어디든 완벽한 곳은 없다고 오피스 안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나 오피스 직원 간의 갈등이 눈에 안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럴 때 만큼은 마이너리티 인 것이 장점으로 작용해 '아무것도 몰라요' 스킬을 시전하며 슬기로운 GA생활을 해나갔다.
대학원 시절 만난 고마우신 분들 중, 내 담당 교수님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내 담당 교수님은 나라는 햇병아리를 중간 크기의 닭으로 만들어 주신 은사님이시다. 교수님은 연구나 발표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 감도 잡지 못했던 나를 바쁘신 와중에도 저녁 4시 부터 새벽 2시까지 앉혀놓고 발표문과 연구를 봐주셨다.
교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열심히 하는 내가 기특하셨던지 여름에는 연구 보조 (Research Assistant)로 고용해 주셨고, 매 해 교육대학원 리서치 컨퍼런스 발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2년의 대학원 시절을 마칠 때 즈음, 교수님은 내게 졸업 후에 버팔로에 남아서 같이 연구 및 논문 작성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박사 프로그램도 아닌 석사 프로그램을 갓 마친 나에게 교수님과의 논문 작성은 귀가 솔깃해 지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기회를 잡을 새도 없이, 대학원에서 이룬 성취를 맘껏 즐기기도 전에 집에 큰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던 Huram씨가 전화 사기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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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항상 끝까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