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두번째
미국에서 첫 인턴십을 하게 된 곳은 브루클린에 위치한 댄스 컴퍼니였다. 당시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 이었기 때문에, 마케팅, PR, 브랜딩 관련한 일을 해보고 싶었고 마침 마케팅 인턴을 구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배울 게 있겠는가'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댄스 컴퍼니의 설립자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오기 훨씬 더 이전에, 그러니까 미국 땅에 한국인이 훨씬 더 마이너리티 일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셔서 지금의 댄스 컴퍼니를 설립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그래서 난 그런 분과 일하면 정말 배울 게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까이서 본 그 분은 삶에 지쳐 보였다. 댄스 컴퍼니의 재정 운영 방식은 후원금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주중 낮에는 댄스 수업, 공연 연습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갈라쇼 같은 것을 진행해서 후원금 모금 시간을 가졌다. 인턴으로 한 달 가량 일하며 몇 가지 공연 홍보를 진행하긴 했지만, 그 분의 담배 및 점심 심부름을 하는 날이 계속되며 '배울 게 없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분도 나같은 인턴이 한 둘이 아니었던지 '한국에 급하게 가게 되서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는 나의 뻔한 변명에 그 분은 컴퓨터 스크린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리지도 않으셨다.
그래도 역시 남는 건 사람이었다. 나와 같이 인턴으로 일했던 한 언니도 이민자라는 공통점에 친하게 지내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언니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책 한 권 나올 수 있을 만큼 여러 일을 겪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영주권 수속 및 발급 까지 완료된 후 미국에 건너왔지만, 언니네 가족은 선 이주후, 후 영주권 수속을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언니네 가족의 영주권 신청을 담당한 변호사가 일을 잘못 처리해 언니네는 결국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니는 중,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도 유창하게 했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미국에서 고용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흘렀지만 합법적 신분은 얻지 못한 이민자 가정이 지금까지도 주변에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턴십 종료 후, 남은 여름 방학 동안에는 드디어 민박집에서 나와 계약을 해 둔 집에 이사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집이 대로변 바로 옆이었는데 밤에는 밖에서 창문을 통해 집 안을 훤히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커튼을 설치할 기본적인 공구도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불을 끄고 생활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소식을 들은 당시 부동산 중개인 (한국인) 아저씨가 커튼 다는 것을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좋아했지만 댓가로 100불,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 돈을 요구하셔서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 맞다. 미국, 자본주의 사회지...
여름 방학이 지나 나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마무리 하러 다시 뉴욕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같이 지낼 룸메이트들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세 명이 한 방을 쓰는 구조의 기숙사였는데 나를 제외한 두 명은 이미 전 학기에도 룸메이트로 지낸 친구 사이였다. 그 둘은 학기가 시작하기 전이었음에도 나에게 "우리 주말에는 술 마시러 가자" 는 등 왠지 모르게 신나있었다. 그 정도는 웃음 이모티콘 정도 보내줄 수 있었는데, "Do you smoke pot?" 이라는 메시지에 내 촉이 건드려 졌다. 당시 캠퍼스 기숙사 내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멘토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니 내 멘토가 "oh no that's not good" 하며 당장 기숙사 변경 신청을 하라고 조언해줬다.
Smoking pot 은 마리화나 등을 피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그보다 큰 문제는 내 멘토가 내 룸메이트의 이름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멘토는 기숙사 내 트러블 메이커들의 사건을 다루는 일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오피스로 불려온 그 친구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기숙사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져 나는 '스모킹 팟'의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변경된 기숙사에서는 또 다른 문제들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19금의 문제들이다.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나는 19세는 훨씬 지나있었지만, 자유로운 룸메이트들의 행동은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 룸메이트의 남자친구는 금요일 밤 정도에 놀러와 기숙사에서 주말을 보내다 갔는데 굉장히 좁은 방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같이 있다는 거 자체가 너무 싫었다. 나중에는 절이 싫은 중이 절을 떠나 친구네서 잤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학기를 보낸 기숙사는 방 2개가 한 개의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여서 옆 방 친구들도 화장실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고 있는 데 이상한 소리 같은 것이 이어폰을 뚫고 내 귀에 꽂혔다. 이어폰을 빼고 방을 둘러 봐도 나 밖에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 온 신경을 곤두 세워 소리에 집중해 보니 화장실 안 조그마한 샤워부스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옆 방 친구가 남자친구와 같이 샤워를 19금 수준으로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시간에 둘 다 공강이었는지 한 두번 그런게 아니어서 그 때도 절이 싫은 중이 떠났다.
야한 얘기를 하다 보니 대학원 시절 내 얘기를 안할 수 없다. 때는 대학원 시절, 나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으로 1년을 보냈던 바로 그 학교에 대학원까지 진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 학기 중 4개월 동안은 생리를 거의 안하고 방학 때만 생리를 하는 몸의 이상 증상이 생겼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여자들만 있는 그룹에 기도를 부탁했는데, 흑인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문자를 주셨다. "You may want to see me (잠시 만나자)." 그래서 그 분의 집으로 갔더니 그 분이 진지하게 나의 남자 관계 문제에 대해 물으셨다. '아니 뭐, 임신해서 생리안 할 수 있는 건 과학적 팩트니까" 라고 쿨하게 생각해 보았지만 어이가 없었다. 그랬으면 교회에서 그렇게 대놓고 기도제목을 나눴을리가... 문화 차이인가...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내 진로를 변경하고 있었다. 치열한 한국의 입시를 거쳐 대학교 졸업까지 얼마 안남았지만, 거주 나라가 바뀌었다 보니 한국 대학 학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느껴졌다.
미주 한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 거리며 알게 된 것은 네일 살롱에서 네일 아트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제일 많이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잠깐이지만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미국에서 누가 성대생을 받아주겠어...네일 아트를 배울까...
그러던 중, Higher Education Administration이라는 한국에는 없는 전공인 '고등 교육 행정' 프로그램에 진학한 언니와 우연히 둘만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고등 교육' 이라는 단어도 생소하고 '행정'도 생소했지만 언니와 얘기를 나눈 후, 나는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보통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장학금, 교수진, 프로그램 등 모든 것을 고려해서 여러 대학교에 지원한 후, 제일 좋은 기회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언니와 대화 후, 원서 마감일까지 한 달도 안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교수님들께 급히 추천서를 부탁드리고 에세이 작성에 집중했다. 급하게 부탁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께서 감사하게도 추천서를 기한 내에 보내주셨다. 그렇게 원서 마감일 날, 마지막 추천서를 받아 접수하고 최종적으로는 그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원 진학 비용, 누가 내?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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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 모두모두 정말정말 감사합니냥~!
Hanna의 질문: 저처럼 생각보다 별로였던 인턴십이나 직장 등 열정페이 당하셨던 분들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