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0. "이민 갈거니까 싼거로 사"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프롤로그

by Hanna

미국에 이민 가는 거 싫지는 않았어?

대학교 4학년, 어쩌면 남들은 취업 준비에 한창일 때,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민에도 적기가 있다면 대학교 졸업반으로 이민은 좀 늦은 편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사실 지금까지 미국에 살면서 주위를 둘러봐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 이민 온 경우는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미국 영주권을 받는 순간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초등학교 때 부터 "이민 갈거니까" 소파 등 집안 가구에 크게 돈 들이지 않는 부모님을 보아왔고, "이민 갈거니까" 비싸지 않은 핸드폰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부터 준비한 이민을 대학교 때 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리 엄마 Beautysun씨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간호사이기 전에 모험가 Beautysun씨

Beatuysun씨는 POWER K-장녀다. 3남 3녀 중 첫 째로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한 가정환경은 Beautysun씨로 하여금 자유로운 삶을 꿈꾸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본 독일 간호사 광고를 본 Beautysun 씨는 망설임 없이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운명의 장난인지 Beautysun씨가 대학을 졸업 할 때쯤 되자 독일로 간호사를 보내는 국가 정책은 종료된다. 그러나 우리의 Beautysun씨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을 포기 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년 동안 간호사로 일한 후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미국, 유럽 등으로 배낭 여행을 하며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했다. Beautysun 씨에 의하면 세계 여행하며 햄버거와 같이 영양은 별로 없지만 가격이 싼 음식만 먹은 탓에 여행 중 똥꼬가 찢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아무튼 배낭 여행 중, 미국이라는 나라에 매료된 Beautysun씨는 미국으로 이주해야 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와 나의 아빠인 Huram씨를 만나 나와 동생을 낳은 후에도 Beautysun씨는 미국 간호사 이민 프로그램 신청 자격을 만족하기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간다.


IELTS Speaking 7.0의 벽

간호사로 미국에 이민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영어 평가 점수인데, IELTS 시험 점수의 경우 스피킹 부분이 9.0 만점에 7.0 이상이 나와야 한다. IELTS 시험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외 연수 경험이 없는 토종 한국인이 스피킹 7.0 넘기 쉽지 않다. Beautysun씨보다 더 체계적인 영어 교육을 받은 나도 6.0를 받았었다.


우리 가족의 이민이 늦어진 데에는 이 IELTS 스피킹 점수가 한 몫, 아니 몇 년의 몫을 했다. Beautysun 씨와 같이 미국 이민을 준비한 간호사 동료들은 스피킹 점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필리핀 어학연수를 가기도 했다. 동생과 나를 낳은 이후로는 해외근무 경험을 살려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며, 워킹맘으로써 영어 공부를 계속 해나간 Beautysun씨는 어느 날 7.0 바로 아래 점수인 6.5 를 받은 IELTS 성적표를 받고 무너져 울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마 이런 기억들이 나 스스로도 "이민 갈거니까" 라는 생각들을 당연하게 하도록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상하게도 Beautysun씨가 드디어 스피킹 7.0을 받은 날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쯤 이었던 것 같다. 그 후, 길고 긴 영주권 비자 인터뷰 대기 기간을 거쳐, 드디어 대학교 4학년 때 쯤 영주권 인터뷰 날짜가 잡히게 된다.


"엄마, 영어 할 줄 아는데 영어로 해"

이민자의 자녀 자격으로 받는 영주권은 만 21세 이전의 자녀에게만 주어진다. 만 21세 이상은 성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영주권 비자 인터뷰 당시, 만 21세가 지난지 2주 후였다. 나까지도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영주권 인터뷰 바로 전 날, Beautysun씨와 동생이 비자 신청시 필수 서류 중 하나인 비자 사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족 이민 계획이 수년 동안 지속되면서 이민과 별개로 내 삶을 꾸려나가는 게 익숙해진 나는 당시 미국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 비자까지 발급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자 사진 규격에 맞는 '진짜' 비자 사진이 준비 된 상황이었다. 한 편, Beautysun씨는 여권 사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영주권 인터뷰가 24시간도 남지 않는 늦은 밤, 달랑 사진 한 장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영주권 인터뷰의 기회가 이렇게 날라가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Beautysun씨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기적처럼 발견한 간이 사진 부스에서 Beautysun씨와 동생은 비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둘 다 지난 밤 내내 맘을 졸인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라 그런지 현상수배범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이 우울하고 불만 가득하게 나왔다. 지금까지도 둘의 비자 사진은 볼 때마다 웃긴 흑역사다.


대사관에 도착해 소지품 검사 등을 거쳐 드디어 진행된 인터뷰, Beautysun씨는 유리창 넘어로 물어보는 질문들에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혹시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영주권 신청이 거절될까봐 내가 옆에서 "엄마, 영어 할 줄 아는데 영어로 해" 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그런 나를 힐끗 본 영사는 오히려 그 뒤로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 인터뷰 몇 분에 우리 가족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아 외워온 "이민 갈거니까"는 현실이 되었다.


네 육체의 만족을 위해 이민 가는 거야?

미국행 비행기 티켓까지 사고 출국 날까지 D-day를 세고 있을 무렵, 이상하게 많은 주변인들이 내 미국 이민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다. 내 지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주변인들이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 모든 분들이 내 남자친구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아니잖아요?


정확히 누구였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같은 신앙을 공유했던 한 분은 "(주님의 뜻이 아닌) 네 육체의 만족을 위해 이민 가는 거냐" 는 질문을 하셨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가족이 약 10년 동안 준비해온 일에 대해 나를 만난지 몇 년 밖에 안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걱정과 축복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드디어 2014년, 미국 JFK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나는 교환학생 비자로 가족 보다 먼저 미국에 도착해 2주일동안 미국에서 수학 후, 가족 영주권 인터뷰 참석을 위해 다시 한국에 돌아갔었다. 그로 부터 2 주 후, 영주권을 발급 받고, 이번에는 학생 비자가 아닌 영주권자로 재입국을 하게 된다.


'학생 비자 취득 2주 후, 영주권 취득' 이라는 나의 비자 기록이 9/11 테러 이후, 공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의심스럽게 보인다는 것, 그 때의 내가 알았을 리 없다. 과거 비자 기록을 지울 수도 없는 나는 지금까지도 공항에서 열에 아홉번은 secondary inspection, 즉, 2차 입국심사를 거친다. 항상 좁은 방으로 인솔되어 한번 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치는 것은 할 때마다 피하고 싶다.


인천 공항에서 기러기 Huram씨와의 이별을 한 나는 JFK 공항에서 다시 한번 Beautysun씨와 동생과 이별하게 된다. 나는 국내선을 타고 뉴욕주 버팔로로 이동 해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마저 참여해야 했고, Beautysun씨와 동생은 뉴저지에 정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Beautysun씨와 동생도 뉴욕주 퀸즈에 정착할 예정이었지만 Beautysun씨가 IELTS 를 공부하며 만난 다른 간호사 분께서 일할 병원을 찾는 동안 뉴저지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해 주셨고, 우리 가족은 고민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남과 사는 것은 쉽지 않고, 그 인연은 악연이 되었다.


20140221_103127.jpg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들고간 캐리어와 이민가방. 이 친구들은 모두 몇 년 후,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 졌다.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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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마이너리티 시리즈 프롤로그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냥! 감사의 의미로 제 (고양이) 사진 보여드려용!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커가는 저의 모습도 기대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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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Abu 입양 당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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