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첫 번째
2번의 비행기, 3개의 공항, 약 20시간의 여행시간 후 도착한 미국 뉴욕주. 처음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길거리에 위태롭게 "널려있던" 신호등이다. 한국과 달리 전선에 달려 있는 신호등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생겼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있자니,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순간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일단 없는 척을 하고는 머리를 굴린다. '뭐라고 해야하지? Hello?'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긴장이 되었었나 보다.
내 첫 미국 룸메이트의 이름은 Bary다. 바리? 여자 이름 치고는 뭔가 생소하네 싶었는데, "배리" 라고 읽는다고 한다. 첫 수업이 있었던 빌딩은 Baldy 였다. 어느 날은 지나가던 학생을 붙잡고 "캠퍼스 내에서 발디 빌딩을 찾고 있다고" 물어보니 "파티 party?" 라고 되묻는다. 나중에야 "아아 벌디!" 한다.
뭐야 phonics 부터 다시 공부해야할 것 같다.
한 편, Beautysun씨와 동생은 프롤로그에서 얘기한 대로 뉴저지에서 우리보다 몇 개월 정도 미국에 먼저 정착한 간호사 동료분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방 3개 짜리 아파트 월세를 같이 내면서 그 분은 미국 학교 간호사로, Beautysun씨는 일을 찾기 전까지 그분들의 자식을 챙겨주고 계셨다.
가족끼리 살아도 힘든 이 세상, 남과 살려니 갈등이 불가피 했다. 같이 장을 보아도 Beautysun씨가 먹고 싶은 것은 못사는 일이 잦아 지고, 그 분의 자식들이 내 동생에게 함부로 하는 일들이 빈번해지자 어느 날 Beautysun씨는 폭발해 버렸다. 그분에게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고 하고 이사를 선언한 Beautysun씨에 그분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맨하탄과의 접근성, 편의성 때문에 가격이 꽤 나가는 아파트에 속했다. Beautysun씨는 이사를 나가더라도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돈을 지불할 생각이셨다. 그러나, Beautysun씨가 그 생각을 얘기하기도 전에 그 분은 당장 부담되는 월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룸메이트를 들일 생각을 하셨고, 그 이유로 우리 가족이 샀던 침대, 책상 등과 같은 모든 가구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밖 그리고 컨시어지에게 나름 협박문을 공시했다. 아마 당시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있던 Beautysun씨가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에 들어와 가구를 가지고 나갈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협박문은 대충 "내가 최근에 우리집을 무단으로 들어오겠다는 협박을 받았으니 누군가 123호에 들어오려고 하면 경찰에게 전화해라" 라는 내용이었고 "Thanks for cooperation (협조해 줘서 고맙다.)" 라는 메시지로 끝이 났다.
Beautysun씨는 인사성이 굉장히 밝은 분이라 대부분 히스패닉계 사람들이었던 아파트 컨시어지 분들도 엄마를 알고 있었다. Beautysun씨가 아파트에 들어서자 당시 근무 중이었던 컨시어지가 그 노티스를 보여주며 "너네 시스터들 아니었어? 이게 무슨 일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콘도 (condominium) 라고 불리는 미국 집 형태 중 한 곳에 계약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콘도에 이사하기까지 한 달의 갭이 생겨서 그 한 달 동안 머물 다른 곳을 또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첫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중이었던 나와 가족은 한국 민박집을 찾아 1달 동안만 거주하기로 계약을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문제는 그 집도 이사를 계획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집은 한 달에 이사를 3번 하게 된 셈이다.
먼저 민박집으로 이사해 짐을 풀고 있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그 분이 엄마에게 나를 가르키며 "딸이에요?" 라고 물으셨다.
나는 한국에 있을 동안 소위 그린벨트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생때까지 자랐다. 즉, 나는 동네분들, 이웃분들과 정감 있는 대화가 익숙한 사람이다. 보통 Beautysun씨와 동네를 거닐다가 아는 분들을 만나면 그 분들이 "딸이에요?" 물어보시고, 그렇다고 하면 예의상이라도 "예쁘네요~" 혹은 "닮았네요~" 등의 반응들을 해주셨었다. 그런데 그 민박집 아주머니는 Beautysun씨가 그렇다고 하자 "근데 왜 추가 요금을 안내셨어요?" 묻는다.
아, 여기서 나는 누군가의 딸로 보여 지기 보다 추가 비용의 대상으로 보여지는 구나.
나는 당시 한국에서 같이 교환학생을 온 친구들과 시카고로 여행 갈 예정이었기에 그 민박집에 머물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렇게 말씀 드린 나는 차가운 이민 생활의 현실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새로 들어간 민박집의 경우 기존에 살던 아파트와 다른 동네였기 때문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버스를 2번 갈아타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Beautysun씨가 과거 막내동생을 차사고로 잃은 트라우마가 있어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우리집 운전은 항상 Huram씨의 몫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도 첫 1년은 차 없이 지냈던 것 같다.
잦은 이사와 기본적인 가구 및 전자제품도 없이 지냈던 시간이 짜증나거나 지칠법도 한데 동생은 "원래 나중에 크게 될 사람들은 다 이런 경험 하는 거야" 라며 기특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은 식탁도 없고 앉을 곳이 없어서 부엌에서 서서 식사를 하는데 동생이 "학교에서 왜 '의식주'에 대해 배우는지 알 것 같아" 라고 했다.
맞아, 한국에만 있었다면, 지낼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이렇게까지 몸소 깨닫지는 못했겠지.
어려움은 우리 가족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이사를 나온 후에도 같은 아파트에 계속 살고 계시던 그 분에 대해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그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도둑은 그 분을 협박해 그 분이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다 가져갔다고 한다.
다행히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그 말을 듣자 아찔했다. '우리 가족이 계속 그 곳에 살았으면 우리 엄마가 피해자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아파트가 보안 및 안전 관리에 실패했다며 아파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 분과 Beautysun씨는 후에 한인 마트 등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데 그 분은 밝게 "어머~ 선생님~" 하며 인사를 걸어왔다고 한다. Beautysun씨의 반응은 "뭔 낯으로 나한테 그렇게 밝게 인사를 한다니?" 였다.
어수선하고 불편한 집에 있기 싫었던 나는 미국에서 첫 인턴십 잡기에 도전하게 되고 브루클린에 위치한 댄스컴퍼니에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근무 후에 멋있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 뉴저지로 넘어오는 상상과 달리 내 주 업무는 담배 심부름이 되어 버렸다.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https://www.instagram.com/sevissavvy.kr/
Abu의 말: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냥!!
Hanna의 질문: 여러분들이 들어보셨던 영어 발음 중, 이게 이거였어? 하셨던 게 있을까요~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