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 이렇게 쓰면 '표절' 이야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번째

by Hanna

복학생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대학원 진학 전, 학사 학위 마무리를 위해 잠시 한국에 돌아갔을 때는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대부분의 건물들이 너무 높아서 어딜 둘러봐도 탁 트인 곳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 시야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는 스키니진이 유행했을 때라 남자들도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당시 졸업하기 위해 꼭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9학점만 남은 상태였다. 모든 수업을 월요일로 몰아 아침 9시부터 저녁 5~ 6시 까지 수업만 들었다. 동기들도 여기저기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가끔 동아리방에 가도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아져 어차피 학교에 자주 나가도 재미가 없었다. 복학생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주말에는 1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느라 고생한 Huram씨와 바다를 보러가기도 했다. Huram씨는 나중에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지만 한 때 오토바이 라이딩이 취미셨다. 외모적으로는 앞뒤로 굴러 보아도 회사원이시지만 가죽자켓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날 만큼은 라이더 Huram씨였다. 어느 날 Huram씨는 식사를 하시며 최근에 보게 된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밥먹고 바로 후식을 먹는 경우 혈당이 급증하는 것을 알게되었는 데 그 정도가 너무 충격적이셨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영상 봤다고 대답하며 우리는 베스킨라빈스로 후식을 먹으러 갔다. 둘 다 안먹겠다는 얘기는 안했으니까.


엉망진창의 대학원 진학

Huram씨는 커리어의 99%를 대기업에서 보냈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등록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석사 학위도 받으셨다. 그런 Huram씨에게 장학금, 펀딩 등 재정적 지원이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은 내 대학원 등록금 비용은 부담 그 자체였다. 내게 대학원 진학 비용을 들으신 Huram씨는 나를 앉혀 두고 대학원 진학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을 하나씩 짚어주셨다.


한 편, Beautysun씨는 내 대학원 진학 자체를 말린 것은 아니었으나 합격한 대학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Beautysun씨는 내가 뉴저지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뉴욕시티 (맨하탄)의 대학 중 한 곳에서 석사 공부를 하길 원하셨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2년의 석사 프로그램 기간은 새로운 학교, 새로운 커뮤니티에 다시 익숙해 지기에 짧은 시간이라 판단했다. 게다가 가족끼리 붙어 있으면 영어 실력이 빨리 늘지 않을 것 같았고, 대학원 시절 동안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에 석사까지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나에게 Beautysun씨는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셨다.

너는 어떻게 엄마를 혼자 두고 갈 생각을 하니?

가족들만 내 대학원 진학에 회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냈고 당시 버팔로 뉴욕주립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도 출국 날까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더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나를 말렸다. 그 친구 말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교환학생을 같이 갔던 친구들도 대학원은 더 좋은 대학으로 간 경우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버팔로에서 만난 한 목사님은 버팔로에 집을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당시 목사님은 교회 여자 학생들끼리 같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고,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때 당시 구매가 가능한 집들을 캡처해 내게 보내주시면서 내가 집을 사서 교회 여학생들과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이민자 신분이니 버팔로에 집을 사놓으면 부모님이 은퇴 후에 집 관리 하시면서 돈을 받으실 수 있고, 그동안 나는 교회 친구들과 같이 살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는 취지셨다. 해야 하는 많은 선택들 중에 이것만큼은 결정이 어렵지 않아 '저희 가족은 집을 살 돈이 없어 불가능할 것 같다' 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목사님이 살 테니 2년 동안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는 게 어떻겠냐는 다른 제안을 주셨다.

그 돈도 없어요...대학원 진학도 못할 판에...


나 왜 대학원 생활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

결국 나는 대학원 입학을 한 학기 미뤘다가 나중에 극적으로 다시 진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원 시작이 몇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 프로그램 오픈하우스에 참여해 대학원 교수님들과 재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오픈 하우스에 참여해 교수님들이 기대하는 작문 과제 수준, 졸업 요건 등을 들으니 갑자기 깊게 현실 자각이 되었다.


나 왜 대학원 생활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


더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들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버팔로 대학원 공부는 쉬울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수업 별 실라버스에 수많은 리딩 리스트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시간도 아까웠다. 리딩에 기반해 수업 중 무조건 토론에 참여해야 할 뿐 아니라 2~3주에 한번씩 작문 과제도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 중에는 리딩, 다 먹은 후에는 라이팅을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계속 되었다. 읽어야 하는 양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조금씩 계속 먹는 특이한 식습관도 생겼다. 그냥 읽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 마카다미아, 요거트, 그린티 라떼 등 지루하지 않게 먹을 거를 옆에 두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산 21년 동안 스타벅스에 간 날은 손에 꼽는 내가 대학원 진학 후 1달 안에 골드 멤버십을 딸 수 있었다.

"엄마, 우리 분명히 등록금 냈지?"
"응 냈지 왜, 등록금 더 내야 한대?"
"아니, 스타벅스에도 돈 갖다 바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등학교 수험생 때는 엄마가 입에 떠 먹여줘서 겨우 먹었던 홍삼도 대학원 때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내가 알아서 챙겨먹었다. 뉴저지에서 가져 온 홍삼이 다 떨어졌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알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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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채 구매해 먹은 마우나 로아 마카다미아. 지금도 오피스에 대용량으로 사놓고 먹고 있다. (당연히 광고 아님)

너 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니?

대학원 1학년 때 가장 애를 먹었던 수업은 "History of Higher Education," 즉, "대학교의 역사" 이다. 대학교 역사에 관련된 글 주제를 교수님이 몇 가지 주시면 그 중 한 가지를 정해 APA (인용하는 방식 중 하나) 스타일에 맞게 라이팅 (writing) 과제를 3주에 한 번씩 제출 해야 했다. 첫 라이팅 과제 제출 후, 교수님이 나를 오피스로 부르셨다.

"너는 어떻게 미국에서 오게 됐니?"
"이러저러 해서 오게 됐어요."
"이 공부가 왜 하고 싶니?"
"이러저러 해서 하고 싶어요."
"그런데 너 이렇게 작문 하면 '표절'에 걸려"
"...?"

그 날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나에게 책을 인용하는 경우 어떻게 표기를 해야 하는지 등 학문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알려주셨다. 오피스를 나오며 나는 '이대로는 졸업 못하겠다' 싶었다. 그 때 부터 리딩 과제들을 읽으며 자주 나오는 표현들을 노트에 따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라이팅 과제를 하기 위해 실라버스에는 3개의 리딩 리스트가 추천되어 있다면 나는 도서관에서 그 토픽과 관련해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정도로 읽으니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겠다는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Grammarly등 글쓴이 스스로도 영어 맞춤법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 않을 때라 라이팅 과제 제출 최소 3일 전에는 과제를 마감해야 캠퍼스 내에 위치한 Writing Services를 이용해 틀린 맞춤법까지 교정 후에 제출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열에 두세번은 교수님들로부터 '맞춤법 확인하고 제출해라'라는 코멘트를 받았었고, 그 코멘트가 그렇게 속상할 수 없었다.


치열한 대학원 첫 학기를 마칠 즈음 "대학교의 역사" 수업 교수님은 마지막 페이퍼에 이런 내용의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네 첫 라이팅 과제 점수 때문에 그 다음 과제 점수들을 다 더해도 A를 받을 수 없는 성적이지만, 너의 라이팅 실력들이 눈에 띄게 향상 되었다는 점에서 A를 주기로 했다.


그 코멘트가 나에겐 굉장한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 이렇게 해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용기도 되었다. 그렇게 미국 대학원의 리딩 및 라이팅 과제들에 점차 익숙해 져 갈 즈음 또 다른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학 행정' 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취업시 좋은 성적보다도 관련 경험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미국에서 대학도 안나오고 이제 겨우 갓 대학원 1학기를 끝낸 나 같은 햇병아리가 미국 대학교 내에서 인턴십 혹은 어시스턴십, 구할 수 있을까?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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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오늘도 어김없이 끝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냥! 라이킷 해주시는 분들은 더더 감사드립니냥!


Hanna의 질문: 역사 수업 저만 고생한 거 아니죠...영작문 저만 고생한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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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는 아부 특집입니다. 독자님들 모두 젤리 사진 통해 은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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