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다섯번째
Beatuysun씨가 POWER K-장녀로 자랐다면, Huram씨는 1남 3녀 중 독자로 자란 귀한 K-아들내미이다. 어렸을 때 물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무당의 말에 할머니는 혹시나 귀한 아들이 잘못될까 잘 씻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혼자 아들로써 가족의 기대를 알게 모르게 받으며 자란 Huram씨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상당한 편이다. 가족 영주권 인터뷰가 드디어 잡혔을 때도 우리 가족은 원래 모두가 영주권 인터뷰에 임할 계획이었지만, Huram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은 때에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가는 것은 안되겠다고 판단해 기러기 아빠 생활을 자처하게 된다.
그 날은 어느 때와 같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뉴욕주에서 대학원을, 엄마와 동생은 뉴저지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교회를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Huram씨에게 카톡이 왔다. "딸, 엄마랑 은학이 연락이 안되는데 급한 일이니 엄마랑 동생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해 아빠에게 연락하라고 알려줘라." 엄마와 동생 모두 내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시간을 보니 둘 다 교회에 가있을 시간이라 아는 교회 사람들한테 엄마와 동생을 보면 "핸드폰 확인해 달라고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같은 날 저녁, Beautysun씨에게 다시 전화가 왔는데 엄마는 울면서 아빠가 전화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Huram씨는 알 수 없는 발신자로부터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돈을 당장 보내라" 라는 협박을 받았고 이어 수화기 넘어로 동생이 울며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전화 사기로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자식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부모의 마음은 또 다른가 보다. Huram씨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 모아 그들이 요구한 액수를 모 지하철 역 사물함에 넣어 놓고 오게 된다. 엄마와 동생이 어느 때처럼 예배 후에 아빠에게 연락했을 때는 이미 돈이 사기꾼들에게 넘어간 후였다.
미국 이민 후, 이런 저런 일로 지쳐 있던 Beautysun씨는 "하나님이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시니" 라며 착잡한 심경을 표현했고,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 이민 생활의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사건이 되었고 Beautysun씨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엔딩이 다가 오면 이런 사기꾼들이 잡히기도 하고 그러던데, 역시 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도 Huram씨는 수차례 나와 동생을 사칭하는 거짓 자식들에게 돈 혹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메일, 문자 사기 등에 노출 되셨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짜 자식인지 사기꾼들인지 분별하는 방법을 터득한 Huram씨는 두 번 다시 사기를 당하시지는 않게 되셨다.
사기를 당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Huram씨와 Beautysun씨가 함께 살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Huram씨와 Beautysun씨는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마주했고,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두 분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Huram씨는 솔직히 처자식들이 미국에 이민 간 후, 1주일은 좋았다고 한다. 1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기러기 생활은 고독과 그리움, 쓸쓸함 등의 감정을 느끼는 하루 하루 였다. Huram씨와 Beautysun씨는 모두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시는 데, 어느 Huram씨의 음력 생일 날 나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동생과 엄마는 이사를 준비하느라 바빠 생일 축하 메시지를 깜빡 잊고 말았다. 가족 없이 혼자 생일을 보내는 것도 외로운데 가족들에게도 축하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 서운했을 Huram씨는 약 한달 간 우리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너무 미안했던 우리는 Huram씨가 연락을 받을 때까지 매일 손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발 우리에게 돌아와줘...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Huram씨와 마찬가지로 미국 병원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Beautysun씨의 삶도 쉽지 않았다. 첫 근무지로 배정된 병원은 뉴욕 할렘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운전 경험이 없는 Beautysun씨에게 복잡하기로 소문난 맨하탄 출퇴근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운전 뿐 아니라 밤 교대, 익숙하지 않은 기계 사용, 만성적 다리 통증 등의 이유로 Beautysun씨는 요양원으로 이직하게 된다.
Beautysun씨가 근무하게 된 요양원은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곳으로, 요양원을 찾으시는 분들 중 대다수도 한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요양원의 수입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날은 요양원 원장이 Beautysun씨에게 한 할머니가 오지 않았지만 보조금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왔다고 표기할 것을 주문했다. 정의롭지 않은 일은 또 하기 싫어하는Beautysun씨는 못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그 날 이후로 Beautysun씨는 원장의 눈 밖에 나게 되고 Beautysun씨는 요양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이쁨을 받고 있었지만, 결국 요양원에서 잘리게 된다.
Beautysun씨는 앞서 모험가로 소개되었고, 실제로도 당찬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소녀스러운 면모도 지니고 있다. 어느 날 밤, Beautysun씨는 잘 하지 못하는 술을 한잔 마셨다가 굉장히 센치해 지게 되고 당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에게 울며 전화를 했다. 잘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훈계를 늘어놓는 딸에게 짜증난 Beautysun씨는 전화를 끊어 버리곤 다시 받지 않았다. 나는 Beautysun씨가 혹시나 잘못 될까 당시 대학교 기숙사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생에게 급히 전화를 했고, 동생은 밤 기차를 타고 부리나케 올라가 Beautysun씨 옆에 있어주었다. 가족들이 뿔뿔히 떨어져 사는 날들이 계속 될수록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는 내 생각이 더욱더 강해졌다.
엄마, 아빠는 자식들을 위해 떨어져 살았지만, 자식들이 보기에는 부부는 같이 살아야 했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들도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하니까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게 동생과 나의 생각이었다.
다시 전화 사기를 당하던 때로 돌아가서, 그 일로 인해 Beautysun씨는 우리 가족의 재정 상황을 정비하고 Huram씨를 위로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 또한 대학원 졸업일을 마지막으로 뉴욕 주에서 생활을 정리하고 뉴저지로 돌아가 동생과 함께 지내게 된다.
뉴저지에서의 취업 준비를 하며 뉴욕대학교, 코넬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들과 인터뷰를 봤지만, 확실히 대학을 미국에서 나오지 않은 나는 인터뷰 질문들에 대답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특히 제일 어려웠던 질문은 "what would you do" 로 시작하는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할 거냐' 종류의 질문들이었다. 대학 오피스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이럴 때는 여기에 문의해서 이런식으로 등등"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대답 하는데 애를 먹었고, 번번히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참여한 코트라 취업 박람회에서 한국에 본사를 둔 한 회사의 미국 지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그 회사에서 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뉴저지에서 보낸 약 2년의 시간은 내 미국 생활 유일하게 Majority 즉, 대다수에 속해 살아갔던 시간들이다. 사실 뉴저지 주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식당, 카페, 직장, 카센터 등 모든 곳에서 한국말만 해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다. 뉴저지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은 내가 뉴저지를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뉴저지에서의 삶은 편했지만, 나는 대학교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에, 이직을 준비하게 되고 마침내 뉴욕주립대 중 한 캠퍼스에서 내가 원하던 포지션에 합격을 하게 된다.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다시 이사해야 할 때, 마침 동생이 여름 방학 이었기 때문에 동생이 짐을 실은 트럭을 몰고, 나는 차를 운전해 5시간 떨어진 뉴욕 주로 향하게 된다. 뉴욕 주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한 2주쯤 흘렀을까, 동생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 지게 된다. 급기야는 새 포지션에 적응하기도 전, 그러니까 병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동생은 1분 이상을 걷지 못하게 되고, 음식 섭취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아니 이건 또 무슨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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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전화사기? 아니 무슨일이냥...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 라이킷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