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코시국에 나만 5일 나오라고?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일곱번째

by Hanna

꿈에서 사람들이 막 끌려 나갔어

나는 국제교류처에서 유학생 및 방문 교수 담당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말, 새로오시는 중국 방문 교수님께서 당장 지낼 기숙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집의 빈 방을 하나 내어드리게 된다. 교수님은 팬데믹이 시작하기 전 12월 말~ 1월 초에 우리 집에 도착하셨다. 교수님이 미국에 도착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우한에서 뒤숭숭한 소식들이 들려오게 되고 2월 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기하 급수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게 된다.


당시 교수님은 남편과 딸,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두 우한에 계셨기 때문에 매일 밤 가족들과 통화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나에게 생생히 전달해 주셨다. 어느 날 아침에는 대학 캠퍼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젯밤 꿈에서 사람들이 경찰들에 의해 막 끌려 나갔어" 라며 지워지지 않는 악몽의 기억들을 나누기도 하셨다.


2020년 2월만 해도 미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감기 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때 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오피스는 국제교류처라는 특성 상, 세계의 유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매 년 출장을 가게 되는데 나 또한 4월 부터 베트남, 대만 그리고 한국 방문을 계획 중이었다. 해외 출장 계획은 계속 미뤄지다가 3월에 미국이 셧다운 되고 나서야 캔슬되었다. 즉, 당시에는 그 누구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전세계에 팬데믹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팬데믹 초기에는 중국 교수님들이 생각하는 사태의 심각성과 학교가 생각하는 사태의 심각성 사이에는 갭이 존재했다.


월마트로 장을 보러 간 교수님은 자신과 같이 우한에서 온 친구들이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돌아다닌 것에 놀라 나에게 오피스 차원에서 학생들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할 수 없는지 물어보셨다. 곧 머지 않아 학생 뿐 아니라 모두에게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밖에 운동을 나갔다가 가벼운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게 되셨고, 그런 스스로가 나보다 더 신경이 쓰이셨던지 결국 이사를 나가시게 된다.


교수님은 6개월 후 프로그램이 끝나 중국으로 돌아갈 때도 구해지지 않는 비행기 표 때문에 애를 먹으셨다. 당시 모든 비행기 표가 취소되었었기 때문에 중국행 비행기 표를 다시 끊으셔야 했는데, 구매 가능한 비행기 표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교수님은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놓으셨고, 예상 귀국일로 부터 몇 주 후에나 겨우 중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산 가족 되는 거 아냐?

교수님이 이사를 나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이 봄방학 동안 우리집에 머물기 위해 올라왔다. 그런데, 봄방학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했고, 학생들이 더 이상 기숙사에서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짐을 빼기 위해 출발하는 동생을 배웅하고 유투브를 켰는데, 뉴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 (state) 간 이동을 금지 할 수도 있다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동생이 뉴저지로 내려간 사이 주 간 이동이 금지 된다면, 동생은 내가 있는 뉴욕 주로 넘어 올 수 없다는 뜻이고, 우리는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미국에서 이산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떨린 내 손들이 무색하게 '주 간 이동 금지'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더 찾아보니 뉴욕 주지사 뿐 아니라 뉴욕 주와 인접해 있는 뉴저지 주지사, 코네티컷 주지사 등 모두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아...?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하면 되는 거였어...?


다행히 '주 간 이동 금지' 행정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고, 동생은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기 전 까지 나와 함께 미국 시골에서 무사히 있다가 돌아갈 수 있었다. 주 중에 나는 재택근무, 동생은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는 1시간 거리에 있는 한국 음식점 및 베이커리에 가서 특식을 즐기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이 우리 삶의 낙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시안 혐오'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처음에는 집 밖을 나가기가 살짝 무섭긴 했다. 뉴저지에 거주 중이던 중국 친구는 이웃을 거닐다가 "Go back to China" 등의 소리를 듣긴 했지만, 동생과 나에게는 다행히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코시국에 나만 5일 나오라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는 동안 나와 다른 동료 2명은 자원해서 우편 픽업을 맡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오피스로 출근해 오피스에서만 할 수 있는 업무를 처리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팬데믹이 선포된 후 첫 학기가 지나고 새로운 학기에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졌다. 각 부서의 메인 오피스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부서의 메인 오피스는 2곳 이었고, 내가 근무하고 있는 오피스도 메인오피스로 간주되었다. 우리 팀에는 3명이 있기 때문에 나는 '3명의 직원들이 돌아가며 오피스 업무를 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나는 상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일주일에 두 번정도 오피스로 출근하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우리 부서 모두에게 보내진 이메일에는 우리 팀에서는 나 혼자 주중 5일을 출근하라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같은 부서에 속한 다른 팀들도 돌아가며 출근하는데 10명이 넘는 교직원 중에 나만 5일 동안 출근하게 된 것이다. 이미 사전에 고지가 된 일이라면 괜찮을 텐데, 사전에 얘기한 것과 이야기가 다르다 보니 더 열이 받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 Hanna 다. 나는 프로답게 문제를 해결한다.

먼저는 다른 미국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한국인 언니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내 얘기를 들은 언니는 "좀 더 큰 오피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이었다. 더 큰 오피스일 수록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여러 눈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원해서 본인이 5일을 나오는 경우가 있어도, 한 명만 지목해 5일 모두 출근하라는 통보 하는 상황은 벌어지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언니의 조언을 빌려 나는 프로 답게 5일 나갈 경우 예상되는 합당한 어려움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의 프로다운 변명 아닌 변명은 다행히 받아들여졌고, 주 3회 출근으로 결정이 났다. 그 이후로도 한국에서는 수도권 전역에서 하루에 몇 백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위험 단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지만, 미국에서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매일 확진자가 몇 십명씩이 될때도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 코로나 때 외에도 미국 대학에서 일하면서 "내가 예민한건가? 아니면 이건 차별인가?" 싶은 상황들이 없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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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작년에는 엄마가 집에만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다시 일을 가서 심심하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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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재택 근무를 그 누구보다 즐긴 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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