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홉번째
행복만 우리네 삶에서 멀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레전드 빌런도 내 삶에서 멀지 않았다. 나는 현재 총 지하, ground floor (1층이지만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1층), 그리고 2층 이렇게 3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에서 ground floor에 거주하고 있다. 처음 이사했을 당시 내 이웃들은 굉장히 조용하신 분들이었는데, 산지 2년 쯤 되었을 때 이사오신 새 이웃분들은 모두 한 성격 하시는 듯 했다.
일상 생활에서의 소음은 그럭저럭 넘길 만 했는데, 언젠가 부터 그 분들이 새벽에 욕하는 소리에 잠을 깨는 날들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시간을 확인하거나 소리를 녹음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윗집의 소음 때문에 주 중에 자다가 깨는 일이 두세번 반복 되자,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이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빡침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If this happens again, I am going to call the police" 라고 이메일을 마쳤다. 그런데 아파트 매니지먼트에서 답을 하길 "Yes, you should call the police" 라고 하는 것 아닌가. 층간소음 문제는 경찰을 부르기에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국에서 층간소음 문제는 경찰을 불러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날은 잠든지 얼마 안된 자정 쯤 다시 윗집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이 때는 정신을 쉽게 차릴 수 있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핸드폰을 켜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소음의 주 범인은 윗집 아들이었고, 게임을 친구와 함께 통화하며 하는 모양이었다. 게임이 자기 마음 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FUXX!!! Get off!!" 이런식으로 욕으로 그의 좌절스러운 심경을 표현했다. 그렇게 레전드 빌런이 계속 소리를 지르면 다른 방에서 그의 엄마가 소리지르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듯 했다. 물론, 레전드 빌런은 엄마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들었다. 경찰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내 아들이 저러면 어쩌냐 진짜
영상을 충분히 찍은 후, 911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어서 "윗집이 너무 시끄러운데,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얘기하니 911에게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한다" 고 했더니 이름, 핸드폰 번호, 주소를 물어보고, 익명으로 신고할지 물어보았다. '당연히 익명이지, 이 아파트에서 아시안 느낌의 이름을 가진 사람 누가봐도 나 밖에 없는데...'
잠시 후, 생각보다 빨리 경찰 차 한대가 아파트에 도착했다. 나는 침대 바로 옆 창문에 달린 커튼 뒤에 숨어 경찰들이 윗집으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이 그분들과 얘기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자 레전드 빌런의 엄마는 빡침이 폭발한 듯 했고, 레전드 빌런에게 짜증 및 혼을 냈다. 레전드 빌런은 이번에도 귓등으로 듣지 않은 듯 했지만 그래도 이내 잠잠해졌다. 윗집이 잠잠해진 후, 나는 커튼 밖으로 내 손만 내밀어 경찰분들에게 따봉을 선사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게임에 빠진 아들은 경찰도 말리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날도 시끄러운 소음에 뒤척이다가 결국 병가를 낸 적 있다. 새벽에 드디어 잠이 오기 시작해 눈을 감고 조금 눈을 붙였을까, 오토바이 군단의 소리에 잠이 다시 깨고 말았다. 아침부터 들려온 오토바이 군단의 소리는 장장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 날, 장을 보러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더니 차가 흙먼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나의 의문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풀렸다. 바로 그 주가 SUPER DIRK WEEK 이었던 것이다. Super Dirt Week은 미국 사람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진짜 미국 시골에서 즐기는 축제로, 오토바이를 즐기는 라이더들이 흙먼지 위를 달리는 축제이다. 레전드 오토바이 라이더 군단은 금요일, 토요일 모두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정말 "흙먼지 날리도록" 오토바이 라이딩을 즐기셨고, 그들"만"의 축제는 일요일 6시쯤 되어야 겨우 끝이 났다.
레전드 빌런 및 레전드 흙먼지 오토바이 군단 이야기를 우리 가족에게 하자 Huram 씨는 나의 정신적 및 육체적 건강과 안전을 위해 더 이상 행동을 취하지 말고, 그 아파트에서 나올 것을 권하셨다. 마침 렌트가 끝나가던 나는 이사를 마음 먹고 동네 및 주변 지역의 아파트에게 빈 방이 있는지 문의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2020년 이후 전국적으로 부동산 값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한국 분들도 들으셨겠지만 미국도 2020년 팬데믹 이후, 부동산 값이 전국적으로 약 20% 정도 올랐다. 또한 공급량도 많지 않다보니 집을 소유하지 않고 달마다 렌트를 낼 수 있는 아파트 물량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그러다보니 현재 상황은 처음 이 동네에 이사왔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현재 머물고 있는 지역에서 삼십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들은 모두 이사 가능한 방이 없는 상태이고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현재 아파트 렌트비도 아주 시~원하게 올랐다. 팬데믹 이후로 내가 매월 내야 하는 금액은 23%가 올랐으며, 3년 사이 처음 렌트비와 비교했을 때는 30%인 $230불 (한화 25만원 정도)이 올랐다. 저렴한 아파트의 경우에는 또 저렴한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러 갔던 아파트의 경우에는 도착하자마자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Police Notice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노티스에 의하면 그 아파트의 이웃은 마약을 하고 시끄러운 것으로 경찰에 신고되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아파트 담당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새 이웃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설명해 줬지만, 이미 떠나간 내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넓은 미국 땅에 내 몸뚱아리 하나 뉘일 곳이 없다니...
현 근무지에서 40분~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는 그나마 이사 가능한 아파트가 있긴 한데 겨울에 눈이 워낙 많이 오는 지역이다 보니 출퇴근이 걱정이 되었다. 나는 미국에 이민 온 첫 날 부터 지금까지 눈이 많이 오고 춥기로 유명한 동부에서만 살았지만, 눈 운전 실력은 어째 잘 늘지 않고 있다. 사실, 나는 매 겨울 마다 경찰 분들을 한번씩 뵙거나 법원에 매년 출석하는 나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뉴저지에 살 때 였다. 뉴저지는 뉴욕 윗 지역보다 눈이 훨씬 덜 오는 편이지만 그래서 더 폭설에 취약하다. 반대로 현재 살고 있는 Upstate NY/Central NY (북부 뉴욕/ 중부 뉴욕) 지역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그래서 제설 차량들이 더 자주, 그리고 더 빨리 제설 작업을 마치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 폭설 경보가 뜬 날에 뉴저지 도로들은 거의 마비가 되었다. 원래 10분이면 가는 집을 40분째 도로에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구글 맵을 켜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구글은 알고리즘에 충실하게 차가 많이 없는 도로로 내 차를 이끌었고, 눈 오는 날 차량이 많이 없는 도로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동네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 었던 것이다. 내 차는 그 언덕을 다 올라가지 못하고, 나는 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차를 옆으로 돌려 겨우 정차시켰다. 길을 막은 나 때문에 내 뒤 차량들도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엔진과 브레이크 외에 차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시피했던 나는 엔진을 끈 상태에서 히터를 켜놓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차 배터리 까지 방전되었다. 당시 나는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다행히(?) 이 도로가 왜 막혔는지 확인하러 온 경찰차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경찰은 배터리도 방전된 차 상태, 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내 상태, 아수라장이 된 도로 상태 등 모든 것을 확인 후 눈을 질끈 감고 경찰서로 다시 돌아갔다. 그 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덩치가 큰 경찰차를 몰고 와서 내 차의 배터리를 충전해 준 후, 뒤에서 밀어줄 테니 엔진을 조금씩 밟아 눈에서 나오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는 뒤에서 도와준 다는 것이 그렇게 도와준다는 것인지 그 때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찰이 "1, 2, 3!" 를 외치면 나는 엔진을 밟았고, 경찰은 그 큰 경찰차로 내 차 뒷 범퍼를 박았다. 물론 살짝 박았지만, 그렇게 여러번 한 후에야 겨우 눈에서 타이어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내 뒷범퍼는 영광의 상처를 갖게 되었다. 드디어 집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감격한 나에게는 뒷범퍼에 난 기스 따위 아랑곳 하지 않은채 그 경찰에게도 따봉을 날려주었다.
다음 해 나의 겨울 전통은 미국 추수감사절이 끝나갈 무렵에 지켜졌다. 당시 나는 동생과 버몬트 지역에서 추수감사절 기념 식사 및 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버몬트에서 집으로 출발하는 날, 폭설 경보가 내려졌다. 눈은 오후 1시쯤 부터 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다. 최대한 빨리 가려다가 일단 버몬트 경찰을 만나 뵙고 포인트를 받게 된다. 사실 버몬트에서 받은 포인트는 뉴욕에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이 후에 열심히 마저 달렸지만, 집 도착을 1시간 30분 정도 남긴 상태에서 폭설에 갖히게 된다.
와이퍼가 가장 빨리 움직이도록 해도 계속 쌓이는 눈 때문에 앞을 보기가 쉽지 않았고, 차 안과 밖의 온도 차이로 생기는 앞 창문의 김을 없애기 위에 차 안은 히터를 세게 틀어야 해 숨 쉬기가 어려웠다. 또한, 와이퍼에도 얼음 결정이 생겨 창문을 닦아도 물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운전 중, 앞 차가 속도를 급히 줄였고, 나는 그 차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핸들을 급히 틀었다. 내 차는 그 대로 눈길에서 뱅뱅 돌아 내 차선 옆 차선, 즉 반대 차선에 있는 우편함을 치고 다시 내 차선으로 돌아와 멈추게 된다. 차 안에서 뱅뱅 돌면서 또 한 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 째로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량이 없었다는 것. 만약 그랬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만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둘 째로, 뒷 범퍼로 우편함을 쳤다는 것. 그래서 차량 수리비가 천만원에 그치게 되었다. 물론, 우편함 수리 비용 및 뒷 범퍼 수리 비용은 보험을 통해 처리 할 수 있었다.
경찰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은 프로토콜에 의해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봤다. 안 괜찮은데 괜찮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니까 나중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경찰은 나에게 우편함을 친 것에 대한 티켓을 발행했고, 견인 차량을 불러 내 차를 견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나는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에 갈 곳이 없었고, 폭설로 인해 우버나 택시 등을 부르기가 어려웠던 상황이라 견인 차량 운전자는 나를 근처 카지노 리조트에 내려주었다.
이로써 갑자기 분위기는 카지노. 추수감사절 휴일을 맞아 카지노에서 가족 단위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방금 차사고를 낸 나의 처지와 대비대게 그들은 더욱 즐거워 보였다. 리조트 카운터에서 택시 리스트를 전해받아 택시 회사에 일일이 전화해 드디어 한 곳과 통화가 되었고, 평소보다 비싼 택시비를 내긴 했지만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글에 다 담진 못했지만 몇 년의 걸친 나의 겨울 전통은 다행히 팬데믹 때 처음으로 지키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재택 근무를 하면서 밖에 나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친구가 내가 차사고를 내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주고 배려를 해주어서 차 사고 없이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스노우 타이어에서 일반 타이어로 다시 갈아 끼우는 날, 우리는 타이어 모양을 한 흑임자 갸또 케익을 만들어 축하했다.
이처럼 내 주변에는 내가 어려워 하는 것은 잘 할 수 있도록 응원 및 배려해 주고, 내가 잘하는 것은 "You are dope" 이라고 칭찬해주며 자존감을 뿜뿜 올려 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나도 다른 마이너리티들한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려준, 그리고 내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써야 겠다고 마음 먹게 한 친구들을 다음 편에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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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층간 소음 싫어요!!!!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