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학 교직원은 미국에서도 신의 직장일까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여덟번째

by Hanna

I cannot help you

앞서 마이너리티 리포트 네번째 이야기에서도 나눴듯, 미국 생활을 하며 만난 아메리칸 에인젤들은 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에인젤들이 있는 곳에는 빌런들도 있는 법. 나에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동양인 여자가 아니었다면 혹은 내가 우리 오피스 보스처럼 덩치가 있는 남자 미국인이 었다면 나를 이렇게 대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빌런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며 '나를 왜 이렇게 대하지? 내가 예민한건가?'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불편한 빌런들'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빌런들과 내가 미국 대학에서 일하며 불편했던 상황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먼저, 교직원으로 일을 갓 시작했을 때, HR 담당 직원을 만나 '새직원 오리엔테이션' 을 받고 혜택 및 은퇴연금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문제는 그 HR 담당 직원이 일처리를 잘못해서 나의 뉴욕주 (state) 직원 ID가 2개나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즉, 내 연봉 정보가 두 ID 에 저장되어 은퇴자금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 상황이었고, 은퇴 자금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나에게는 민감한 이슈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그분의 일처리는 굉장히 느려 나의 은퇴 프로그램 신청 기간이 지나기도 했다. 오피스 에인젤 중 한 분이 나를 대신해 HR에 전화해서 클레임을 거시는 등 도움을 많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은 쉽사리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HR 직원분이 내 이메일에는 답장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은퇴연금, 보험 등은 이민자인 내가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한 용어와 개념이라 HR 직원 분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지만, 그 후로도 그 분과는 잘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학교 직원 뿐 아니라 유학생 부모님들 중에도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신 분들도 있었다. 팬데믹 전에는 학기 시작 전에 대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대학교의 가장 큰 연례 행사 중 하나였다. 매 학기 대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 할 때면, 많지는 않지만 한 학기에 5분 내외로 유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자녀와 같이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시곤 했다. 그 중, 한 분은 본인을 그 분의 국가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셨는데, 본국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미국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자신이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하신 후, 나에게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셨다.

앞으로 ABC (예명)는 너의 딸이야.


그 뿐 아니다. 나에게 어디 사는지 물어보신 후, 운전해서 출퇴근 한다는 것을 알게된 그 분은 나를 택시 혹은 비서처럼 사용하고 싶어 하셨다. 구체적으로 그분은 나에게 퇴근 후에 딸이 핸드폰을 계통 하고 월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도록 운전해 달라고 하셨다. 없는 선약을 만들어 안된다고 하자 주말까지 시간을 내달라고 요구하셨다. 당시 그 학생이 사는 기숙사 1층에서 통신사 및 은행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서 유학생들이 기숙사 내에서 핸드폰을 계통 하거나 은행 계좌를 오픈 할 수 있었다. 또한, 기숙사부터 월마트까지 운행 중인 무료 셔틀버스를 통해 유학생들 누구나 월마트에서 생필품들을 사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 드렸음에도 그 분은 막무가내로 내가 운전해 줄것을 밀어부치셨다.


게다가 신용카드를 줄 테니 자신이 뉴욕 공항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버스 티켓까지 나에게 구매해달라고 요청하셨다. 그 날은 몇 가지 버스 시간을 찾아드렸지만, "그 시간은 이래서 안돼고 저 시간은 저래서 안돼" 라고 하시며 진상을 떠시더니 결국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셨다. 그 분께 내일도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도와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고, 자세한 버스 티켓 구매 방법을 메신저로 전달 드렸다. 그러나 그 분은 다음날 오피스를 다시 한 번 찾으셨다.


그 분 덕에 몸의 피가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었던 나는 이번에는 그 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I cannot help you today, sorry please check your messenger to book the ticket" 이라고 말씀드리고 미팅에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오피스에는 나 말고 2명의 팀원들이 같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를 떠난 후에 그 분은 내 동료들에게는 버스 티켓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으시고 자리를 떠나셨다고 한다. 즉, 그 분은 나만 불편하게 하셨고 이를 본 동료들은 너가 어려보여서 그렇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안경점에 가서 제일 나이들어보이는 안경테를 샀다.


내가 이래서 함수를 안써

나를 불편하게 한 일들 외에도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동료들과 업무 방식이 달라 맞춰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첫 회사 경험을 한국 회사에서 시작한 나는 처음 미국 대학에서 업무를 인수 받았을 때 살짝 당황했다. 엑셀의 아주 기본적인 함수를 제외하고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학생들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유학생들이 비행기 티켓 정보를 구글 form에 작성하면 나는 vlookup 함수를 사용해 자동으로 비행기 정보를 가져올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들은 일일이 데이터베이스에서 학생을 찾아 일일이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다. 또한, 학교측에서 학위별, 비자 타입 별, 나라별 등 학생의 수를 달라고 하면, 나는 피봇 테이블을 사용할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동료들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일이 필터를 걸어 수를 세고 있었다.


함수 및 피봇 테이블을 사용할 경우 한 프로젝트를 마치는 데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 외에도 수작업으로 정보를 관리할 때 보다 실수할 확률이 적다는 점에서 난 당연히 업무 프로세스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수 등 엑셀의 기능을 모두가 사용하지 않았다 보니,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 및 함수 작업 결과를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달랐다. 예를 들어, 내 상사에게 의도를 말씀드리고 함수 작업을 마친 후, 어떤 값에 변수가 생겨서 틀린 값이 나왔을 때가 있었다. 나의 관점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변수가 있나보다, 찾아서 수정하면 되겠네' 였지만, 내 상사의 반응은 "내가 이래서 일일이 하는 것을 선호하는 거야, 이래서 함수를 안써" 였다. 그 말은 좀 과장해서 충격적이었다.


굴하지 않고 "Our time is too precious not to use Excel functions" 라고 말씀드리며 함수를 수정 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드렸다. 해당 오피스에서 일한지 한 2년쯤 되었을 때 내 동료들도 vlookup, concatenate 등 기본 함수 및 피봇 테이블 활용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고, 내 동료들도 엑셀과 친하게 일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상사의 반응도 "이 값이 안보이는 거 보니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 혹시 봐줄 수 있어" 라는 식으로 엑셀에 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본 엑셀 전도사 Hanna 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며' 굉장히 속으로 뿌듯해 하고 있다.


KakaoTalk_20211007_153137351.jpg ◆ 미국 대학에서는 출장이나 긴 휴가를 다녀온 동료를 위해 웰컴 메시지를 적는 문화가 있다.


미국 대학 교직원은 신의 직장인가

반대로 내가 바뀔 법도 한데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되는 오피스의 문화가 하나 있다. 바로 '유연함'이다. 첫 직장 경험을 한국 회사에서 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다 받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유연한 미국 학교 근무 환경이 적응이 안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뉴저지에서 한국 회사에 재직시, 출근하다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정비소에 맞긴 후, 당시 상사에게 "타이어 정비 중이라 30분 늦게 출근할 수 있을까요?" 라고 여쭤보았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지금 택시타고 시간 맞춰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픽업하라"는 답변을 받았었다. 또한, 점심시간도 12시부터 1시까지 딱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했기 때문에 카페를 갔다가 늦어질 경우 뛰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웃거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 시 다른 오피스에서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나는 그 때 일한다는 건 다 이런건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 대학교에서 일하면서, 차에 문제가 있거나,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거나, 어디를 들려야 한다거나 할 때 "이래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상사에게 "이런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출근/ 일찍 퇴근 해야 할 것 같다" 라고 말하면 백이면 백 "오케이" 이다. 점심 시간도 자신이 쓰고 싶을 때 사용하면 되고, 1시간으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누구도 점심 시간을 재지 않는다. 가끔 다른 미국 대학에서 일하는 한국 언니와 얘기를 하다 보면, 조깅하면서 미팅에 참여하는 동료, 정해진 출근 시간 보다 항상 늦게 출근하지만 아무도 신경 안쓰는 분위기 등을 웃으며 나눈다. 또한, 오피스에서 동료들과 대화하거나 웃는 소리가 다른 오피스에까지 들리면 다른 오피스에서는 "Isn't it beautiful?" 이라며 오피스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미국 대학, 부서 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오피스의 경우에 일반적인 업무 강도는 회사 업무와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편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퇴근 후에는 저녁 먹고 잘 시간 이었다면, 지금은 퇴근 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다. 또 다른 체감 가능한 차이점 중 하나는 미국 대학은 업무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국, 미국의 문화 차이라기 보다는 업무 종류 (회사 vs 주립 대학)에서 오는 차이같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실수한 경우, 진지한 표정을 한 상사와 마주해야 했고 해당 실수가 반복된 경우에는 '내 말을 진지하게 안듣나' 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한 편, 미국 대학에서 실수한 경우, "It's not a big deal and we all make mistakes but please double check this one moving forward" 정도로 '앞으로 신경써 달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 경우에도 '상사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보다 단순히 실수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회사 재직시에는 연 휴가 사용 가능일 수를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는데, 미국 대학의 경우 휴가도 충분하게 주어지고, 병가도 언제 다 쓸 수 있을려나 하는 정도로 주어진다. 학교 마다 차이가 있지만, 연 말에 크리스마스 전후로 연 초까지 아예 학교를 닫아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도 유급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립 대학교가 아닌 주립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경우,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도 잘릴 걱정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렇지만 완벽한 직장은 없듯이 교직원으로 일하는 것의 단점도 존재한다. 대학교는 회사와 달리 직책이 딱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승진의 기회가 적은 편이다. 매년 샐러리가 인상되긴 하지만 내 몸 값을 크게 높히고 싶다면 보통 다른 학교로 이직 하는 편이 빠르다. 또한, 스타트업 회사처럼 프로젝트가 빨리 진행되지 않고 일의 결과를 짧은 시간 내에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금융업, IT 업계에 비하면 교육계의 연봉이 낮은 점도 단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서 일하며 유학생들을 돕는 다는 점에서 업무 만족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나의 삶 만족도를 굉장히 떨어트리는 레전드 빌런이 있었으니 바로 층간소음의 주범 내 윗집 이웃들이었다.



혹시 독자분들 중 미국 유학생 분들이 있으실까요? 미국 대학 유학생 담당 교직원으로서 비자 등 전문 정보 및 공부 꿀팁을 한국말로 쉽게 풀어 놓은 제 웹사이트가 도움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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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오늘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냥! 모두 인생에서 에인젤들만 만나시길 바랍니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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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고양이 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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