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생이 루퍼스에 걸렸다고요?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여섯번째

by Hanna

너 자꾸 이러면 누나 다시 올라가

동생이 처음으로 다리가 아프다고 하기 시작한 것은 여름 방학 동안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여행 중에 왼쪽 발 복숭아 뼈에 상처가 생겼는데 그 때 이후로 다리가 살짝씩 아프다고 했다. 초기에는 항상 아픈 것이 아니라 가끔 아픈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다 괜찮아 지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름 비가 대차게 쏟아지던 이삿날에도 동생은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5시간 넘게 운전했기 때문에 동생이 급격하게 아프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의 다리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초록색 혹은 보라색의 반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복숭아뼈 부근에서 시작된 반점은 점차 다리를 타고 올라가 허벅지까지 퍼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입 안에도 구내염 같은 것들이 많이 생겨 음식을 입에 머금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동생의 건강이 악화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기 전, 결국 동생은 다리를 절뚝거릴 뿐 아니라, 1분 이상 서있기에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먼저는 나의 직장 근처 응급실에 가보았지만, 의사는 원인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방학 이후에 동생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학교 근처에 위치한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나는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있는 병가가 아예 없었지만, 직장 측의 배려로 3일간의 무급 휴가를 받아 이사한지 1달 만에 다시 뉴저지로 내려가게 되었다. 다행히도 당시 뉴저지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응급실로 바로 향했다. 그러나, 뉴저지 응급실에서도 정확히 진단을 내리지 못했고, 피부과를 가보라는 제안을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알 수 없는 병명을 찾기 위해 미국 병원 투어를 시작했다. 응급실, 피부과, 내과 등 가장 빨리 예약 가능한 병원을 찾아 하루에 한 두 곳씩 진단을 받으러 다녔다. 병원에 다니는 동안에도 동생의 상황은 더 안좋아져서 어느 날은 열이 심하게 올랐고, 나는 해열제와 온도계를 사러 급하게 나갔다 오기도 했다.


한 편, 원래 동생은 구내염이 잘 나곤 했기 때문에 다리의 반점들과 구내염 사이에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병원 투어 리스트를 고르는 데 이견이 있었다. 당시 2주에 한 번씩, 왕복 10시간 이상을 운전해 뉴저지로 내려가 병원 투어를 하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동생이 잘 따라와 주지 않는게 속상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눈에 힘을 빡 주고 얘기했다.


"너 자꾸 이러면 누나 그냥 올라가"


'너네 엄마 말 안들으면 여기 버리고 간다' 와 같은 유치한 말이었지만, 힘을 빡 준 내 눈을 본 동생은 고객을 끄덕였고 이후로 평화로운 병원 투어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피부과에서는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조직검사 결과 자가 면역 질환 중 하나인 Lupus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의사분은 동생의 복숭아 뼈에 난 상처를 통해 들어온 바이러스가 계기가 되어 몸의 면역 체계가 공격을 받게 된 것같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대부분 자가 면역 질환의 경우에는 완치되는 경우가 잘 없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소식을 들은 Beautysun씨와 Huram 씨는 밤잠을 못 이루곤 하셨다.


그 해 말, 동생과 나는 5년만에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고 동생의 첫 스케쥴은 한국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동생은 자가면역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검진 결과가 나왔다. 미국 병원의 오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족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그 날이 지나서야 Beautysun 씨는 그녀의 긴 다리를 뻗고 주무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 피부과, 내과 등 여러 병원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진료를 예약하고 검사를 진행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특히나 마이너리티들이 의료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의료시스템

한국에서는 여행 중에 아파도 근처에 위치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면 그만이지만, 미국에서는 근처에 있는 병원에 아무때나 갈 수 없다. 미국에는 먼저 자신의 주거주지 근처에 Primary doctor, family doctor 를 찾아 등록을 하고, 그 의사가 나의 건강 관련 히스토리 및 가족의 히스토리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후에야 갑자기 몸이 아프더라도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즉, primary doctor 가 없는 곳에서 아프다면, 병원이 아니라 근처 응급실에 가야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미국의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은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는 한국 분들도 익히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원래도 안좋았던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더 안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이 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얘기다.


나는 직장을 옮긴 지 7개월 쯤 되었을 때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병원에서 새로운 환자등록을 받지 않게 되었다. 즉, 나같이 팬데믹 전후에 거처를 옮겨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primary doctor 혹은 family doctor 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닫겨 버린 것이다.


나도 미국에서 몸이 갑자기 아팠던 적이 있다. 다행히 그 때는 이미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받은 후 였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새로운 환자를 받는 곳이 극히 드물었다. 새로운 환자 등록을 받는 병원이라 하더라도 대기 기간이 몇 개월 이상으로 길었다. 아파 죽겠는데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고 짜증이 났던 나는 애꿎은 동료에게 전화로 화풀이를 했고 내 동료는 "알아... 근데 어쩌겠어 그게 여기 방식이야" 라고 위로해주었다.


I know I know... but that's how it works here...


결국 나는 응급실로 향했지만, 응급실에서 진행한 검사에서도 왜 열이 났는지, 왜 목이 부었는지 진단을 내리지 못해 해열제 하나 처방 받지 못했다. 결국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목 부었을 때 먹는 캔디만 주구장창 먹고 휴식을 취하며 자연 치료가 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내 몸이 아픈 것은 그래도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내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믿어볼 수 있겠는데, 문제는 동물 병원에서도 새로운 환자 등록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나는 새 직장으로 옮기면서 Abu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입양한지 2년 쯤 되었을 무렵 정기 검진 및 필수 주사 접종 등을 꼭 해야 했다. 예약을 하기 위해 알아본 근처 동물 병원에서는 새로운 환자를 전혀 받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1시간 떨어진 곳의 동물 병원과 예약을 진행할 수 있었고, 나는 왕복 2시간 내내 "애옹" 소리를 들으며 나의 귀 건강은 포기하고 Abu님의 건강을 지켜드렸다.

KakaoTalk_20211007_102312575.jpg ◆이동장 안에서 이동 내내 애옹 거린 Abu씨

아니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면 어떻게 해요?

사실 병원에 가는 것은 내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 대기 기간이 길더라도 예약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 가는 것을 시도라도 할 텐데 뭔가 지금까지 경험한 미국 병원 진료는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눈에 다래끼가 나서 안과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안과 진료 예약 대기 기간도 1달이 넘었지만, 간곡히 부탁한 끝에 취소된 진료 날 중 하나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나는 빨리 낫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해 주기 원했지만, 문화 차이인지 미국 안과의사는 항생제를 잘 처방해 주지 않았다. 대신 눈에 넣는 드랍, 눈에 바르는 연고, 눈물샘을 터주는 시술 등을 권했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받았지만 다 효과적이지 않았다. 항생제를 처방 받기도 전, 다시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해당 안과에 전화했을 때는 "우리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1시간 거리에 있는 특별 전문의에게 가보라"는 대답을 받았다.


다래끼가...환자를 포기하고 특별 전문의에게...보낼 일인가...?


1시간을 달려 보러간 안과 전문의에게는 드디어 항생제를 처방 받을 수 있었으나 내 눈이 완치되기도 전에 처방 받은 약이 다 떨어졌다. 당시 안과에서 의사를 보는 시간은 5분 정도로 짧았던 것에 비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보험이 있어도 저렴한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진료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나는 7개월이 넘도록 다래끼가 왼쪽 눈에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재발했다가, 오른쪽으로 옮겨갔다가, 터졌다가, 재발했다가, 가라앉았지만 아예 없어지는 'with Corona (위드 코로나)' 시대에 '위드 다래끼'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내 룸메이트는 중국 우한 사람

다시 동생 얘기로 돌아가서 동생이 한국에서 자가 면역 질환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긴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한국에 처음나오기 시작할 무렵 나는 당시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던 동생에게 마스크를 사주며 꼭 쓰고 다닐 것을 당부했다. 내가 아마존에서 마스크를 주문한지 1주일도 채 안돼 아마존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몇 달 동안 마스크를 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때 마스크를 사 놓은 것이 너무 다행이었다.


내가 팬데믹 시대에 그나마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시 내 룸메이트가 중국 우한에서 온지 1달도 안된 교수님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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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의 말: 이번 글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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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가 싫어하는 것들: 머리에 뭐 씌우는 것, 천둥 소리 (무서워서 요가 매트 사이에 들어감), 목욕, 차 이동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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