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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Jan 20. 2022

모든 프로가 프로답지는 않다.

프로 직장인을 기대하며

"이 기사는 회사와 에버랜드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

엔지니어로 현장 배치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수였던 신 대리님이 물었다.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이렇게 정리해 주셨다.


에버랜드는 내 돈 주고 즐거움을 얻는 곳이지만, 회사는 돈 받고 일하는 곳이야. 그러니 네 월급 이상의 가치를 회사에 제공해야 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나는 장면이니 당시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스스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신 대리님이 가르쳐 준 것은 프로 정신이었다.




  돈 값을 하라는 프로 정신은 나의 성장을 자극했다. 책임감과 전문성을 높이는 바탕이 되었다. 내 분야에 자신감이 생기고, 회사가 주는 보수에 떳떳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회사나 상사 앞에서 겸손하되 프로답게 대등한 위치에 서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서로의 이해에 맞게 일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니 수직 관계의 억압에서 벗어날 용기가 생겼다.


  모든 직장인은 프로지만, 모든 프로가 프로답지는 않다. 회사에서 돈을 받으면서 아마추어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다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현역 시절 매 시즌 연봉 Top 5에 올랐던 프로 축구 김병지 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선수 계약(연봉 결정)은 지난 시즌 활약을 전제로 한 미래에 대한 베팅입니다. 후불제인 셈이죠. 선 활약이 우선입니다.


아마추어는 앞으로 잘할 가능성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프로는 어제의 성과로 보상을 받는다. 김 선수의 말대로 먼저 성과를 내야


  지난 시즌 성적이 좋은 프로 선수일수록 구단과 맞설 힘이 크다. 자신의 권리를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 성적이 낮은 선수가 내년에 잘할 테니 연봉을 올려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어느 팀장이 당일 결과물이 꼭 필요한 일을 팀원에게 맡겼다. 저녁 6시가 되자 그 팀원이 보고도 없이 퇴근하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노동의 대가를 시간만으로 계산하는 거다. 8시간 있었으니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이다. 틀렸다. 어떤 프로 선수가 운동장에 있는 시간으로 보수를 주장하는가? 퇴근은 권리고, 결과를 만드는 것은 책임이다. 민주 사회에서 책임과 권리 둘 다 중요하다.


  물론 자신의 능력과 수준에 맞게 일을 정하고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일이 100인데 200을 요구받는다면 조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프로는 지속적인 자기 연마로 실력을 쌓아 더 많은 성과를 낸다. 그리고 더 많이 받는다. 자신과 조직에 바람직하다.


  내가 가치 있는 프로인지, 프로인척 하는 아마추어인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사표를 내 보면 안다. 사표를 냈을 때 상사가 극구 만류하면 프로다. 내심 반가워하는 것 같으면 함량 미달이다.


  현실적으로 진짜 사표를 내기에는 위험 부담이 따르니 이렇게 자문해 보자. 내가 사장이라면 이 연봉 주고 나를 데리고 있을 것인가? 마음속으로 바로 옆 동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내 잣대에 내가 당당하면 그것으로 좋다. 


   남사스러운 기억이지만 나는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세 번의 사직서를 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 사직 의사는 절대 번복하지 않으리라 단단히 결심하고 며칠 잠수까지 탔다. 막판에 그룹사 회장님이 찾으셔서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말려주신 회장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의 가치는 내가 주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 기여하고 가치를 더하면 남들이 알아서 프로로 인정해 준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프로 정신을 강조하며 성과제일주의를 외치는 것 아니다. 궁극적으로 성과는 여러 사람과 조직의 다양한 기여로 만들어진다. 어떤 이는 정보를 모으고, 다른 이는 용접을 한다. 고객을 만나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런 활동들이 모여 열매로 맺어진다. 내가 성과 창출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몰입하는 사람이 프로다.


  2021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중 일에 몰입하는 사람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전 세계 평균 20%, 미국 34%에 한참 못 미친다. 프로답게 일하면서 회사 앞에서도 어깨를 펴는 주인공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프로 직장인에 대한 생각을 썼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은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 중 하나라고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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