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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Jul 19. 2020

미해결과제가 발목을 잡을 때

LET IT GO!

꿈속에서 일했다. 20년 전 회사에서 한참 고민하고 노력했지만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붙잡고 이리저리 애썼다. 나는 회로 기판의 내층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여러 층을 조합하고 하나의 기판으로 성형하는 과정에서 층간 교합이 틀어지거나 외층 규격과 어긋나는 문제가 있었다. 마이크론 단위의 싸움이었다. 고객이 요구하는 규격은 점점 어려워지고 경우의 수는 너무 많아서 품질을 맞추는 일에 늘 허덕였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공정의 품질이 완벽하지 않고, 결국 일부는 불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채로 제품을 만드니 부끄러웠다. 늘 불안했다. 회사를 떠난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불현듯 그 생각이 나고 자책감을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성장할 때 여러 단계를 거치며, 그 단계별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한다. 각 단계에서 필요한 성장을 하지 못한 경우 미해결과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때 해결하지 못한 것을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든, 대개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을 할 때 어린 시절을 탐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각 성장 단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어떤 미해결과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여러 남성을 전전하며 한 사람에게 안주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진 여성의 경우, 알고보니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 사랑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주위의 남성에게 사랑을 갈구한다는 스토리를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미해결과제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묶여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한다는 거다. 과거의 수치심이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자격이 없어. 더 열심히 일해야 해. 사랑받아야 해. 이대로는 안 돼. 인정받아야 해.... 이런 잡음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행복, 만족감은 앞을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완전했던 그들, 원하지 않았던 그 상황,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 나는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한 사람이야. 그들도 불완전한 인간이야. 부족한 사람들이 만나니 힘든 일이 생겼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잖아. 이제는 떠나보내자. 오늘을 살자.

내가 해결하지 못한 그 품질 이슈는 어찌 되었을까? 후배 엔지니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문제를 해결했을까? 어쨌든 회사는 망하지 않고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들의 몫이다. 사실 내가 해낸 일도 많았다. 하하.

나는 이제 내 밭을 갈아야겠다. 꿈속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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