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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Feb 13. 2021

새벽,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익숙한 풍경 @ 낯선 시각

새벽 4시. 털모자에 회색 재킷을 걸치고 현관을 나선다. 마스크를 잊었다. 들어가 검은 천 마스크를 챙기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삐비빅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뒤로 울린다.


  101호 앞에 조선일보가 삐뚤게 던져져 있다. 공동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건너편 아파트 입구 상가 이레교회 간판과 십자가가 눈에 띈다.


  아파트 입구로 향한다. 군데군데 눈이 굳은 길이 미끄럽다. 흰색 택배 차량이 들어온다.


  아까 현관에서 본 상가 앞이다. 3층 외벽 교회 간판만 불이 켜져 있다. 요새 모이지도 못해 재정이 어려울 텐데 밤새 불이 환하네. 공연한 남 걱정이다.


  검은색 SUV가 아파트에서 나와 도로를 탄다. 나도 큰길로 나간다. 작은 삼거리 약국 옆에 우리 동네 유일한 카페가 있다. 가끔 미팅이 있을 때 이용한다. 처음엔 음료만 있었는데 요새는 와플도 굽고 맥주도 판다. 어두운 바 안쪽 파랑 LED가 은은하다.


  아직 버스 운행 전이지만, 정류장은 환하다. 상가 입구에 불이 켜져 있어 현관문을 밀어 본다.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이 긴장된다.


  입구에 우편함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103호 함에 우편물이 가득 껴있다. 빵굼터. 작년에 폐업한 빵 가게 앞으로 온 거다. 주인 없는 편지들은 어디로 갈까.


  계단 반 층 아래 있는 남자 화장실이 환하다. 터치식 자물쇠가 있는데 밀어 보니 열린다. 작은 일을 보고 나왔다. 이 시간에 밖에서 안전하게 일을 볼 수 있다니 럭키다.


  상가를 나서는데 천장 CCD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아까 우편물 함을 기웃거리던 내 모습도 찍혔겠지. 뒤통수가 간지럽다.


  사거리다. 아까 우리 아파트에서 봤던 택배차가 길 건너 단지로 들어간다. 전광판이 번쩍이며 글자를 돌린다. 두피 예민하신 분 천연 염색 벤토나이트 미네랄...


  삼십 분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향한다. 마스크가 답답해서 벗는다. 사람도 없는데 진작 벗을걸.


  도로가 있고, 상가가 있고, 아파트가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아직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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