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열어라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제는 익숙한 유 코치의 바리톤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바쁘긴 했지만 특별히 큰 일은 없었네요.”강일이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지난주에 경청에 대해 몇 가지 시도해 보기로 하셨죠. 그건 어땠나요?”
“가만있자. 그래요.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 회의할 때 의식적으로 기다렸네요. 처음에는 제가 말을 안 하고 있으니 모두 저만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넉살 좋은 김 과장이 먼저 말을 꺼내니까 상당히 활발한 토의가 벌어졌어요. 물론 중간에 주제에서 벗어난 대화도 있었지만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시 돌아오고 결론까지 내더라고요. 의외였어요.”
“아, 무엇이 의외셨나요?”
“평소 회의 때는 주로 저 혼자 떠들고 결론을 냈어요. 워낙 바쁘잖아요. 물어도 뾰족한 대답도 안 하고. 그래서 지시사항 위주로 전달하고 말았죠. 그런데 멍석을 깔아 주니까 이 친구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아이디어도 내고, 말도 잘하더라고요. 제일 의외였던 것은 소심한 이 대리가 상당히 참신한 의견을 낸 겁니다. 평소에 말이 워낙 없어서 아이디어가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네,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셨군요. 이 대리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셨고요. 어떻게 그렇게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회의를 운영하실 수 있으셨나요?”
“지난주에 경청에 대해 얘기 나눴잖아요. 그래서 직원들 말을 끊지 않아 보기로 했었죠. 물론 직원들 얘기 듣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코치님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한 번 해봤습니다. 또 말을 끊고 싶을 때마다 우리 할머니를 떠 올렸어요. 육순 할머니도 초등학생 제 얘기를 잘 들어주셨는데 나라고 못하겠어요? 어쩌면 이 친구들 얘기 안에도 내가 참고해야 할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중간에 말을 안 끊으니 평소에 20분 이상 걸리던 설명이 10분도 채 안 걸리고 끝나더라고요. 전에는 제가 보고 받을 때 뭔가 틀린 점이나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끼어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오히려 대화를 방해했던 것 같아요.”
“아, 정말 경청을 잘 실천하셨군요. 역시 김 팀장님이십니다.”
“하, 뭐. 매번 그런 건 아닙니다.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얘기 끊고 들어가고, 야단치고 한 것도 많아요.”
“그래도 일주일 만에 그렇게 경청을 의식하고 시도하신 것은 큰 변화죠.”
“사실 한 가지 더 사건이 있었는데요.”
“네, 말씀하시죠. 궁금하네요.”
“저희 팀 막내 선아 씨라고 있어요. 그저께 제게 결재 서류를 들고 왔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앉으라고 하고 뭔 일 있냐고 물어봤죠. 처음에는 주저하는 것 같더니 제가 눈을 맞추고 기다려 주니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배운 대로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읽어 보려 했죠.
‘선아 씨, 마음이 뭔가 힘든 게 있나 보다.’ 그랬더니 갑자기 울먹울먹 하는 겁니다. 속으로 덜컥 겁도 나고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좀 기다려 봤어요.
듣고 보니 영업관리팀의 선배 사원에게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었나 봐요. 업무적으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좀 심한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고, 선아 씨가 정말 억울했겠구먼.’ 했더니 빙긋 웃으면서 이제 괜찮아졌다고 고맙다고 하네요. 저는 별로 해 준 것도 없고, 문제 해결도 안 됐는데 편안해진 얼굴이 되더라고요.”
“네, 경청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 주셔서 그것이 큰 힘이 되었나 봅니다. 사실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겪는 문제의 69%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다루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코칭에서는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에 집중해서 그 사람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의 효과성을 더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 팀장님께서는 선아 씨에게 좋은 코치 역할을 해 주셨어요.”
“그런데 코치님, 경청이 좋기는 한 것 같은데, 저로서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잖아요.”
“네, 그렇죠.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정말 필요하죠. 그럼 김 팀장님께서는 평소에 어떻게 문제 해결을 돕고 계신가요?”
“글쎄요. 만일 선아 씨 같은 경우라면 ‘앞으로 신경 쓰지 마라’라든지 ‘그 선배와 터놓고 얘기해 봐라’ 정도 조언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조언도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김 팀장님 혹시 제가 첫 시간 자료로 드린 ‘사람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나시는지요?
“네? 뭐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사람을 보는 새로운 시각은 우리 프로그램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 다시 상기시켜 드릴게요.
1. 사람은 누구나 조건 없이 사랑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2.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3. 자신에게 가장 좋은 해답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4. 모든 행동에는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
어때요. 이제 기억이 나시죠?”
“아, 그러네요. 이제 생각이 납니다.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죠.”
“맞습니다. 그럼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새로운 시각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라. 음, 사람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해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까요?”
“바로 그렇습니다. 코칭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방을 돕는 방법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허, 신기하네. 저도 지금 코치님이 물어보시는 대로 생각하고 대답을 했더니 답이 나오네요.
“네, 코치는 상대 안에 무한한 가능성과 가장 좋은 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조언이나 자기 의견을 말하는 대신 질문으로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습니다. 회사에서는 질문을 어느 정도 활용하시나요?”
“글쎄요. 회사에서는 제가 내용을 확인해야 할 때나, 진도를 체크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 같네요. 일 할 때 질문하면 보통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닌 딴소리를 듣게 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질문보다는 지시를 많이 하죠.”
“네, 보통 일의 확인을 위해 질문을 활용하시네요. 만일 상사가 질문하지 않고 지시만 많이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후우, 지시만 하면 시키는 일만 하겠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나 창의적인 생각도 안 하겠네요. 일이 잘못되면 지시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겠고. 그러고 보니 결국 상사만 힘들게 되는군요.”
강일은 얼마 전 식후 커피를 마실 때 들은 인사팀 황 팀장의 푸념이 떠올랐다. ‘요즘 신세대 직원들은 도무지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력서의 스펙은 화려한데 노력하지도 않고 근성도 없고,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우리 젊었을 땐 정말 밤 새 가며 헌신적으로 일 했는데.’
“그렇군요. 지시를 할 때도 있지만, 부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네요.” 유 코치가 말했다.
“그런데 이게 잘 될지 모르겠어요. 어떤 친구는 정말 답이 없어 보이거든요.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고요.”
“정말 답이 없어 보이는 친구도 있어 보인다는 말씀이시죠. 혹시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유 코치가 물었다.
“일단 우리 아들 민기 있잖아요. 민기가 요새 사춘기고 하니 사실 저도 많이 참고 잔소리를 안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뭘 물어봐도 아뇨, 그냥요, 몰라요 이런 대답만 하니 속이 터지죠.”
“아드님이 그렇게 짧게 대답해 버리면 정말 답답하시겠네요.”
“왜 아니겠습니까? 어떨 땐 정말 미워 죽겠다니까요. 휴.”
“그럴 땐 미워 보이기까지 하시네요. 허. 그런데 민기에게 주로 어떤 질문을 하시나요?”
강일은 유 코치의 질문을 받고 자신이 민기에게 과연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음, 그러니까…… 밥 먹었냐? 시험 잘 봤냐? 등수는 올랐냐? 숙제했어? 참,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좀 그렇네요.”
“뭐가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니까 별로 대화에 도움이 될만한 질문이 아닌 것 같아서요.”
“만일 팀장님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묻지?라는 생각도 들고, 귀찮을 것 같아요.”
“그럼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요?” 오늘 아주 작정한 듯한 유 코치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어렵네요. 뭔가 상대에게 중요한 것에 대한 것이나, 어쨌든 상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질문하는 게 좋겠어요.”
“역시 팀장님이시네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내셨어요. 우리가 경청을 할 때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하듯이 질문을 할 때도 상대방에 초점이 있어야 한답니다.”
“들을 때나 말할 때나 오로지 상대방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정말 그렇게 대화한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무튼 오늘은 계속 질문하시네요. 그래요. 상대방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상대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코치님과의 시간에는 주로 제가 말을 많이 하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도 제가 한 말이 가끔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한 번 더 참게 되고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질문은 상대방이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행동하게 한답니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일방적인 지시보다 훨씬 강력하죠.
“그럴 것 같네요. 그래도 아직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네, 평소 쓰던 언어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질문을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도움이 될 자료를 보내 드릴게요. 그걸 참고하셔서 좋은 질문을 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좋아요. 보내 주시는 자료가 상당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저와의 세션을 한번 정리해 주시겠어요?”
“아, 벌써 끝날 시간이 됐나요? 우선 경청을 실천했던 것에 대해 말씀드렸고.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죠. 대화할 때 경청이나 질문 모두 상대방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뵐 때까지 꼭 실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 좋은 질문을 좀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 사용해 보겠습니다. 코치님도 좋은 질문 예시를 보내 주시면 좋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은 한 번 한다면 하시는 분이니 어떤 경험을 배움으로 이끄실지 기대가 되네요. 다음 이 시간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