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쌓던 성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권진원 '아버지'

by 작은노래



그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때, 그 여름!


열한 살 무렵,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하시던 제약 회사를 물려받아 사업이란 걸 하시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실직자가 되었다.

연못이 있던, 보리수나무와 배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우리 집의 예쁜 뜰은 삭막한 공장이 되었다가, 아예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빚과 실의 뿐.

우리 식구는 산 기슭에 지어진 작은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방 한칸을 빌려서.

잔디가 심어졌던 정원이며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연못은 갈 수 없는 고향처럼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변두리 산의 땅값은 쌌던가보다. 우리가 살던 곳의 뒷산은 아버지가 사두셨던 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넷째 고모, 작은아버지가 그곳에 집을 지으셨고, 우리식구도 방 한 칸 차지할 수 있었나보다. 집 바로 옆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 밤에 집으로 갈 때면 집 뒤의 컴컴한 산길이 깊은 동굴처럼 느껴져 무서웠다.


여름방학 내내 아버지는 어디에도 출근하지 않으셨다. 길고 무덥던 여름을 우리와 함께 보내셨다.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했던 일중에 하나는 영어공부였다. 아버지는 우리 4남매를 모아 놓고 영어를 가르쳐주셨다. 단어 시험을 보아 순위대로 상을 주기도 했다. 둘째인 나는 늘 2등이었다. 언니를 이겨보려고 머리를 싸매고 단어를 외웠지만 어찌된 일인지 언니가 늘 1등이었다. 바로 아랫동생은 3등, 막내동생은 4등이었다. 나는 억울하고 속이 탔다. 그런데 막내동생은 늘 꼴등인 게 억울해 엉엉 울었다.

산 고개를 넘어 절 있는 데까지 가서 약수를 떠오는 일도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 중의 하나였다.

가끔 아버지는 우리 네 남매를 데리고 산으로 가서 돌을 주어오게 하셨다. 산이라야 바로 집 문을 나서면 되었다.

"돌을 모아서 이곳에 쌓아두자. 이 돌들을 모아 우린 이 산에 멋진 성을 만들 거야."

돌을 모아 쌓는 일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즐거운 놀이였다. 돌을 모아 쌓노라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곤 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그 산기슭 집을 떠나 두 군데쯤 더 이사다니다가 작지만 아담하고 포근한 우리집을 마련해서 20여 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사셨다는 산은 어느 틈엔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 사업 빚을 갚는데 써졌다.

그 여름에 그렇게 열중했던 돌 모으기는 어느 틈엔가 내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더 세월이 흘러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몇 배의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 넘치는 재주와 시대를 앞서는 이상 때문에 또 몇 번의 성취와 좌절을 거듭해야 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나는 아버지 무덤가에서 그 여름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나는 돌을 날랐다.

돌이 차곡차곡 쌓이며

돌탑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보고 웃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 성의

한 귀퉁이가 될 거야.


여름 무더운 날 무료에 지칠

시간도 없이

나는 돌을 날랐다.


-덥니?

-아니오, 즐거워요.


하늘에는 흰 구름이 흘렀다.

구름이 아름다웠다.


돌을 나르며 나는

그 돌이 만들어낼

무수한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그 여름

아버지는 무더웠으리라.

그 분은 그때 실직자였다.


돌탑들은 우리가 살던

한적한 산기슭의 집 근처에

무리지어 세워졌지만

끝내 성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의 몇 곱절이 넘게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돌을 모으며 성을 이야기하던

그의 슬픔을 이해했다.


내게는 고운 꿈이었던 여름날들.

무료함과 불안으로 보내던

그의 아픈 시간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돌탑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가

기억조차 아득한데

내 안에 세워진

이 견고한 성


아버지,

나의 성을 이루는 돌들은

그때 당신과 함께 나른 돌들입니다.

밖에서 허물어진 돌들은

내 꿈으로 들어와 쌓여지고

부서지지 않는 성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픔의 시간

찬란한 내 꿈의 하늘 되어

성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열아홉일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기신 글이 딱 하나 남아 있다. 내 앨범 속지에 써놓으신 글. 열세 살 되는 내 모습이 기특하고 예쁘다고 쓰신.....

아…, 그리운 아버지. 권진원의 노래가 서러운 눈물이 되어 흐른다.


<아버지 -권진원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E7FXi23O7kQ



아주 오랜 봄날 오후

흘러가는 강 물결을 따라 아버지 날 태워주셨죠

자전거엔 노을과 나

아지랑이 들길에는

그날 같은 다정한 목소리 미소도 다 그대로인데

누워 계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 누워 계신 동안에

함께 가꾼 꽃밭 채송화 피고

또지어 피고 또 지어 간 곳 없네

아버지 아버지 내게 다시 한번만 그날처럼 웃어 주시면

이렇게 서런 이렇게 서런 눈물 내게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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