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속의 할머니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양화 '집으로' OST

by 작은노래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 그리고 코로나가 우리를 가로막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할머니 기일에 모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할머니 사진을 꺼내놓으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새로운 발견을 한 듯, 속으로 웅얼거렸다. 우리 할머니 얼굴이 저러셨구나!

표정 없는 흑백 사진은 평소 내가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 할머니 얼굴과는 조금 다른 듯했다.

내 마음 속의 할머니는 훨씬 곱고 아름다우시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할머니 얼굴은 웃음 가득한 얼굴이고 다정한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뵌 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할머니 무덤에 가본 지도 오래 되었구나.


우리 할머니는 열일곱에 할아버지와 혼인하셨다. 가끔 어린 나에게 시집올 때 이야기를 하셨는데, 혼인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 신랑이 누군가 미리 보려고 애쓰셨는데 끝내 얼굴 한 번 못 보고 시집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를 더 못하고 시집가는 게 억울해서 도망치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나는 얼굴도 안 보고 결혼을 정하는 그 풍속이 신기해서 또 고등학교 다녀야 할 나이에 혼인을 해야 했다는 게 놀랍기도 해서 입을 헤 벌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튼 열일곱에 한 살 어린 신랑과 결혼한 할머니는 5남 5녀를 낳았고, 우리 아버지는 그 5남5녀의 맏이셨다. 맏아들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극진하신 것 같았다. 사랑보다는 믿음과 기대가 컸나보다. 작은아버지는 형인 아버지를 은근히 시샘하셨던 것 같다. 술을 드시면 할머니가 어릴 적에 차별하셨다고 푸념하시곤 했으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월요일이었다.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정신없이 막 우니까 나보다 더 놀란 교감 선생님이 어느 선생님께 나를 데려다 주라고 하셨다. 집에까지 가면서 내내 울었다. 어제까지 버스 타고 친척집에도 가셨던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단 말인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전 날 할머니는 친척집에 다녀오셨다. 그러면서 "이제 어디 다니기가 힘들구나. 네가 차 사서 나좀 태우고 다녀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럼요. 제가 나중에 차 사서 태워드릴게요." 난 아무 생각 없이 큰소리 쳤었다. 다니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더니 이렇게 영원히 잠드신 건가.


문상객들이 들어오는데 우리 집에 자주 들리시던 아주머니가 와서 막 우셨다. 그러면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몸단장 해드렸다고 또 우시는 거였다. 아, 그랬다. 그 전날 아침인가 나는 할머니와 목욕하러 갔었다. 당연히 내가 할머니 등을 밀어드려야 했는데 마침 목욕하러 오신 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부탁도 안했는데 할머니 등도 밀어드리고, 팔 다리도 밀어드리고 깨끗이 씻어드렸다. 젊지만 별로 기운이 없던 나는 내 할 일을 그 아주머니가 더 시원 시원 해주셔서 내심 기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나는 더 눈물이 떨어졌다. 할머니 마지막 몸 단장 내가 정성스럽게 해드렸다면 내 마음에 한 가닥 위안이라도 되었을 것을….


할머니는 그래도 참 편하게 가셨다, 오래 앓지도 않으시고.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정정하셨고, 다니시기에 불편함이 없었고 집안일을 도우셨다. 교사셨던 어머니가 조금 늦게 오는 날에는 밥도 해 주시고 청소도 하셨다. 돌아가시던 그 날도 빨래를 하시려고 마당에 계시다가 머리가 아파 방으로 들어와 누우셨던가 보다. 가끔 옆집에 놀러가셨는데 오시지 않자 옆집 아줌마가 우리집에 들렀다. 할머니 누워계신 게 심상치 않아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셨고, 어머니와 셋째고모, 막내고모부가 오신 뒤 눈을 감으셨단다.


할머니 관이 내려질 때 왜 그렇게 내 가슴도 무너져 내리던지…. 일흔 여섯 해 삶의 아픔과 슬픔이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할머니는 너무 힘든 세월을 사셨다. 질곡의 현대사를 사셨고, 그것은 개인의 삶과 이어지는 거였다. 1919년에 태어나신 할머니. 아현동 상인의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큰살림을 하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다. 우리집은 제약회사였다. 보부상들이 약을 받아 신의주까지 팔러갔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듣곤 했었다. 무슨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민어였나?) 그걸 짝으로 사서 광에 두고 먹었다는 이야기, 명절 때면 손님들 수백 명은 치렀을 거라는 이야기, 모래내 쯤에 증조할아버지 땅이 있었는데 가르쳐주지도 않고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 했던 이야기….

그러나 식민지 조선 땅에서 이른바 민족자본이라 할 만한 할아버지 제약회사는 몰락에 몰락을 거듭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걸 물려받을 때쯤인 60년대는 대기업과 재벌이 형성되던 시기 아닌가. 할머니는 또한 6.25전쟁으로 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잃으셨다.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셨고, 큰아들, 작은아들도 연거푸 병으로 먼저 보내시지 않았던가. 정말 험한 한평생 사셨다.


할머니…. 한없이 그리운 할머니. 응암동의 커다란 뒷방에서 잘 때면 나는 천장의 네모난 벽지 무늬 하나하나에서 구렁이가 내려오는 환영을 자주 보았다. 몸이 허해서 그랬나보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옆에서 주무시는 할머니를 힘겹게 힘겹게 불러 깨웠다. 할머니가 일어나 불을 켜시면 그 구렁이는 무늬 속으로 도망가곤 했다.


할머니는 천식 때문에 기침 잘 하는 손녀딸을 위해 어디선가 겨를 한 섬 가져다가 약재 넣은 호박을 겨 속에 넣고 태우셨다. 이틀이나 연기를 내며 타오른 뒤에 호박을 꺼내 짜서, 그걸 나에게 먹이셨다. 행여 덜 짜질까봐 베보자기를 손으로 짜시느라 손이 벌겋게 되시기도 했었다. 열 살 무렵 그 호박즙을 몇 번이나 챙겨먹고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보냈다. 그렇게 정성이 가는 약을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 해주시려고 돔 같은 뚜껑이 달린 프라이팬이며 이상한 요리 기구들도 많이 사시고, 나 시집갈 때 가져가라고 냄비도 사 놓으시고, 색색가지 조각 헝겁들을 잇고 이어 밥상보도 여러 개 만드셨다. (내가 결혼할 때쯤 그 냄비는 참으로 시대에 뒤진 냄비가 되어 있었지만 결국 나를 따라왔다.)


어린 손녀딸도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집에는 돈을 안내놔도 좋으니까 할머니 용돈은 꼭 드리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가끔 '이번 달 얼마 더 줄 수 있니?'라고 힘들게 물어보시곤 했었다. 어려운 친척 조금씩 도와주시느라 용돈이 모자라셨던 것 같다. 용돈을 풍족하게 못드리면서도 나중에 돈을 더 많이 벌면 할머니 방에 멋진 장롱을 사드리고 옥비녀며 옥반지 사드리려야지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할머니가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몇 해전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잘 때였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옆에서 무서움을 달래던 손녀는 이제 거꾸로 그렁그렁 거친 숨을 내쉬기도 하는 할머니 숨결을 헤아리고 있었다. 거친 할머니 손을 잡아보았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할머니의 이 숨결 헤아리지 못할까봐 두렵다'는 글을 끄적거렸었는데,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아, 할머니. 할머니의 흰 머리칼…. 나를 보고 웃으시던 그 모습…. 손자 손녀에게 역정을 내신 적이 없던 할머니.….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시던 그 정성….

식구들이 다 모여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사진 속의 할머니가 문득 웃으며 나오실 것만 같다.


오래 전 일기장을 뒤지다 보니 이런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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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아파 먼 길을 잘 다니지 않는 어머니가 나에게 말씀하신다. "할머니 산소에 간 지 오래됐다. 할머니가 정말 엄마를 아끼셨는데...언제 네 차로 할머니 산소에 한 번 데려갈래?"

아... 지금 타고 다니는 내 차는 내가 산 차가 아니다. 엄마가 사준 차다. 엄마, 어머니, 힘들어 못 다니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난 갑자기 오래 전 그날 차에 태워 다녀라고 하셨던 할머니 생각이 나서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 주 일요일쯤엔 엄마를 모시고 할머니 무덤가에서 오래 전 할머니의 숨결을 헤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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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걷는 것조차 힘드신 엄마의 곁에서 그 옛날 할머니 그렁거리던 숨결 헤아리듯, 엄마의 숨결을 또 헤아린다.


<집으로> 영화 OST https://www.youtube.com/watch?v=pSmkwpBRwj4


영화 [집으로]를 볼 때 나는 우리 할머니와 공통점이 거의 없는 영화 속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사랑 때문에 가슴이 아려지는 꼬마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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