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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Nov 01. 2020

이중언어가 진로에 끼친 영향

학사에서 박사까지

이중 언어의 영향은 정말 지대하고 지속적이다. 적어도 내 지난 기로들의 선택과 진로를 보면 그렇다. 청소년기에야 내적 세계와 외부 환경과의 마찰을 조정하느라 바쁘지만 젊은 어른이 되어서 대학을 진학하는 때부터, 혹은 대학 전공을 정할 때부터 이중 언어 인간은 또 새로운 의미로 바빠진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수업 시간에 열심히 낙서하며 각종 손기술을 터득한 경력과, 미술 시간에 전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학우들의 감탄과 존경을 얻는 능력을 몸소 확인한 확신으로 결국 미대에 진학했다. 형식적인 준비 기간은 길지 않았다. 스케치의 기본이 없었기에 다른 패션 지망생 고교 학우와 함께 또 다른 학우의 어머니가 가르치시던 강좌를 몇 개월 간 성실히 참여한 것이 유일한 학원 교육이었다. 고교시절 후 곧바로 대학을 가지 않고 몇 개월 간 그래픽 디자인 인턴을 한 후, 이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몇 개월 간 한국에서 최종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기간이 있었다. 그때 홍대의 호미화방도 가보고 입시 미술 학원도 밖에서 잠시 보았다. 입시 교육 체제와 사교육에 관해 정말 무지함 그 자체였던 나에게는 같은 주제로 그리도록 시키는 방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는 도저히 이렇게는 못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내 방식대로 합격하지 못하면 갈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반골 감성이 꿈뜰거렸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에 감사한다.


이중 언어 인간으로 시야를 넓혀온 덕에, 그리고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 덕에 학부까지는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권이었다. 결국 나는 독일 디자인 대학과 영국 미대의 순수미술학과에 동시 지원했고 영국 미대의 포트폴리오 준비반에 합격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멋모르는 반항심과 내 감 만을 의지하며 준비한 것 치고는 대성공이었다. 당시에 절친이던 한 한예종 학생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포트폴리오 구성에 작품 선택을 도와주기도 했었다.


이렇게 그동안의 경험 덕에 영어가 꽤 능숙했기에 영미권의 나라로 자신 있게 떠날 수 있었고 전공과의 궁합 또한 크게 나쁘지 않았다.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유학을 떠난 나는 첫 일 년의 포트폴리오 준비과정을 마친 후, 또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학교 이름만을 보면서 정식 순수미술 학사 과정에 지원하고 입학했다. 입학해서 미술활동을 하는데 그 도중에 마음속에 큰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미대를 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식에 대한 갈증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 몸은 미대 학부생이었지만 15분만 더 가면 있는 런던 정경대학을 괜히 기웃기웃하기도 하고, 개방형 강의 같은 프로그램을 알아내서 혼자 참여하곤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터친 국제 금융 위기로 인한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나 뜻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현재 속한 집단과 역할에 대한 불만족이 커져서 나를 또 엇나가게 한 것이다. 어쩌면 이건 이중 인간의 성장 서사의 중심 주제인 것 같다. 현재 있는 곳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서 자신을 확장하는, 오매불망 불편한 자세.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에는 이미 내 속의 이중 세계가 고착화되어가고 있었기에 가능성을 무조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렇듯 시야가 넓으면 선택지가 많아지기는 하는데, 많아지는 것의 역효과도 없지는 않고, 무엇보다 무턱대고 시야가 넓어지면 안 되고 중심추가 단단히 뿌리내려 있어야 마음 편한 결정을 내리고 따를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굳혀가던 나는 학사 졸업 후에 내 배경에 최대한 맞춘 한국 국제대학원 석사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또다시 내 혼합형 학문 교육 배경에 최대한 맞춘 독일 동아시아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박사까지 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현재에는 포닥, 그러니까 박사 후 연구원으로 벌써 4년째 종사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중 인간은 긴 여정과 건축을 거쳐서 꽤나 견고한 세계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결정은 어떤 이중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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