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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Nov 01. 2020

사춘기와 이중문화

문제와 위험, 그리고 기회

앞서 기술했듯이, 사춘기는 이중 언어 인간에게 위태로운 기간이다. 모든 사춘기가 위태롭다는 가정 하에 좀 더 고유의 특징을 짚어내자면, 이중의 정체성을 조율하는 와중에 한쪽을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업신여길 수 있다는 위험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정체성을 모두 가족처럼 그리고 제 자신만큼 사랑한다고 해도, 나에게 이걸 이전과 변함없는 당연함으로 지니고 다님으로써 이익의 손해뿐만이 아닌 실질적 해가 임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내 경험에 기반해서 설명하자면, 이성적인 손익분기점을 판단하는 시점으로 한쪽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거부감이 생긴다. 나 자신의 일부분인데도. 


이런 현상은 아마 대부분의 이중 언어 인간들을 포함해서 이주민 및 교포 혹은 다문화 인간들이 여러 다양한 언어로 어느 정도까지는 공감할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넘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넘고 나면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갈등이었노라고 고백하게 될 부분이기도 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 기간 동안에 아무래도 자신뿐 아니라 주변과의 갈등 또한 생길 여지가 흥건한데, 이때 이중 언어 인간의 고유의 갈등의 특징 상 가족에게 불똥이 다소 튀게 된다. 이중 언어의 한 면, 그러니까 주로 물리적으로 더 멀리 떠나온 언어의 형상화된 대상이 대부분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핍박하는 모국어 쪽을 대표하는 가장 가까운 인물이 가족 내지 부모님이 되는 것이고, 자기 제어와 판별력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미숙한 이중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힘듦의 탓을 엉뚱한 외부로 돌리게 된다. 


그래서 만약 이중 언어 인간을 키우는 중이거나 키울 예정이라면, 아마 피할 수 없을 이 기간을 인식하고는 있어야 한다. 사실 인식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요점은 이중 언어 인간의 생리 상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장엄한 그림으로 상상해보자. 연대기 영화 같은 그런 비주얼로. 주변에서 주어진 이중의 자신의 모습으로 나름 평화롭게 살던 어린 인간은, 자신만이 이해하는 이중의 세계를 얻는다. 하지만 몸집이 커지면서 이 세계도 확장되어야 한다. 확장하는 방법은 근육을 증강할 때처럼 경미한 파열을 일으키면서 면적과 두께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중 세계의 천장의 대리석이 깨지고 날카로운 돌이 굴러 떨어지는 참사가 한 동안은 밥 먹듯이 일어나기도 하고 간혹 주변 사람들이 파편에 맞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이중 인간이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세계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확장 공사의 철부지 관리인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수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이어서 변덕이 끓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여기서 가장 애간장이 타는 점은, 사회적 외부 세상의 접촉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는 세계 확장을 몸소 돕고 대신해 주기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으로 한 발자국 딛는 순간부터는 이중 세계의 최종 모습의 도안을 그 아무도 모른다. 남이 대신 봐준 적도 없고 자신도 상상이 안된다. 그래서 그렇게 삐그덕 대고 파편이 튀고 요란한 공사가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 이유가 있고, 끝난 후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것은 정말 그만할 가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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