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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Nov 01. 2020

청소년기와 셀프 언어교육

인터넷, 호기심, 그리고 음악

최소한 인터넷 메신저의 초창기의 창궐을 경험한 세대만 되어도 공감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평행 세상이 열리고 그 안의 수많은 낯선 타인들과 결성되기도 하는 의외의 유대감 등을. 이렇듯 인터넷은 익명과 실시간이라는 마법의 망토를 씌워서 새로운 세상의 면모들을 여행하며 탐구하게 해 준다. 물론 인터넷 세상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본체의 엔진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들이다. 호기심, 사회성, 집단 형성 심리 등.


나도 인터넷이 한창 보편화되던 시절에, 그러니까 모뎀이 통신망에 전화를 거는 소리가 익숙한 시대와 음원 mp3를 매우 불편하게 p2p로 내려받던 시절에 사춘기에 들어섰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지만 그때는 보물섬 같은 신세계였다. 나는 그렇게 또 새로운 면모의 한국과 독일의 문물을 배워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문물의 비중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독일 거주 한인 교포 청소년들끼리 교류하는 게시판 형식의 사이트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창 음악 취향에 눈 뜨던 나에게 모든 정보를 쥐어주던 영어권 인터넷이 있었다. 이 세 가지 루트로 나는 언어를 확장했다. 


한국의 인터넷 문물이 나에게 주요 활동지였던 이유는 아무래도 발 빠르고 적응 빠른 한국인들의 인터넷 세상이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에서 하루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던 나는 그때 글과 그림으로 전달하는 자기표현을 처음 연습한 것 같다. 4차원이라고 불리기 십상인 내용을 준비하고 꾸미고 올리던 나는, 어떤 다른 미니홈피들이 더 많은 방문자와 좋아요를 받는지를 깨달으면서 내 성향이 다소 마이너 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수치화되는 지표가 있으니 그때부터 관심을 받고는 싶지만 대중을 매료시키지는 못한다는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셀카라는 것과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신을 브랜드로 연출하는 사업 모델이 흔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싸이월드가 이런 개념들의 조상 격이었다. 후에 미대를 졸업할 때의 졸업 논문 주제를 셀카로 정한 것도 (결국에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다른 결과물이 나왔지만) 싸이월드 상의 인기 경제의 흐름을 수년간 관찰하며 이해했기 때문이었고, 흥미롭게도 그 당시에는 셀카라는 개념이 서양에는 따로 없었다. 당연히 자신을 연출할 공간은 그때도 영미권 인터넷에 충분히 넘쳐났지만, 셀카(셀피)라는 용어 자체가 생겨나기도 전이었으니, 한국의 인터넷 유저들이 엄청난 선두자였음은 틀림없다.  


이중 언어 인간이 탄생 직후부터 타지에서 1n 년을 살면서 한국의 인터넷 문물에 빠져 산다는 건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다시금, 성향이 매우 중요한 요소를 띤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향성이 강한 어린이였던 데다 이중 언어 인간이었기 때문에 겪게 되던 주변의 저항이 남달랐다. 그리고 주변의 아이들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더욱 기가 세지고 물리적 정치까지 취하게 되니 솔직히 살아남기가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이 잔혹한 청소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나에 대해서 뭐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외부와의 싸움을 매일 하는 나에게 인터넷은 안식처이자 사회 관찰의 현장이자 지식의 우물이 되었다. 유소년 때는 책에 빠졌었다면 청소년 때는 인터넷을 그 연장선으로 간택하고 빠져든 것이다.


사실 인터넷에 유난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정체성의 일부를 그곳에서 영위하는 아이들은 비슷한 성격을 띨 때가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처럼 내향적인 편인 데다 호기심은 많고 또 자기애는 없지 않아서 밖에서 못 받는 관심을 다른 방도로 찾는 데 부단한 에너지를 쏟는 아이들은 거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사회의 현장이자 배움의 장인 셈이다. 바깥의 사회와 마찬가지인, 혹은 여러 방면에서 더 낫고 편안한 장소인 것이다. 거북이를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주는 것처럼 갑자기 활력을 띄고 쌩쌩 휘젓고 다니는 셈이다. 육성보다는 철자가 편하다는 면에서, 혹은 관심 주제를 꼭 집어 자신의 사회 활동 영역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인터넷을 뛰어넘는 공간은 없다. 


한국 문명에 속한 인터넷의 영역에서 나는 언어의 동향을 면밀히 따라갈 수 있었고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다차원 매체에 관한 반응과 상호작용 등에서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적 호응까지 배울 수 있었다. 사회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수줍었으나 사회를 관찰하는 것은 왜 그리 재밌고 흥미로웠는지 모르겠다. 콘텐츠 하나를 보는 것보다 댓글과 각종 상호작용과 얽힌 관계망을 관찰하는 것이 재밌었다. 그런 식으로 정말 인생의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한독 교포 청소년이 교류하는 플랫폼도 그다음으로 자주 사용했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남들의 대화의 타래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기에 바빴다. 어찌 보면 나에게 그건 공감을 향한 여정이기도 했지만 연구 대상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컸다. 나의 생각이나 취향에 대한 공감을 그 무엇보다 갈망했지만 이미 대부분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세상의 보통이자 교화가 잘 된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걸 어떻게 서로 표출하며 조율하며 살아가는지를 현미경 아래 놓고 관찰하던 나에게는, 인터넷 속 사회가 연구대상이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인터넷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았을까 생각도 당연히 해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는 인터넷이 나에게 더 세상 같은 세상이었던 것을. 아무리 노력을 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도 어떤 아이들은 책이나 인터넷처럼 대체 현실에서 위안과 정체성을 찾는다. 그걸 막는다면 발달의 자율성을 막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내향적인 아이라도, 혹은 사람이라도, 본질의 본능은 똑같다. 언어를 배우고 세밀한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만큼의 열정이 어떤 대상을 향하든지 간에 동반되어야 한다. 원색 그 자체의 강렬한 공감과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관심, 문화 코드가 일맥상통할 때의 그 째지는 희열, 촌철살인 같은 유머의 기막힌 핑퐁 같은 순간들은 언어 그 자체다. 사람은 가슴이 뛰어야 산다. 그래서 가슴이 뛰기 위한 언어를 취득한다. 이런 언어 학습의 한계는 무한대이다. 순수하게 자신 만의 것의 이끌림을 따라서 질주하는 사람의 한계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을 위한 언어가 없다면 모국어가 아니다. 인터넷은 가장 예민한 시기에 한국어를 내 모국어로써 시멘트칠 해 주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모국어로서의 기반을 잃었을 것이다. 10, 20, 30년 간의 이중 언어 인간으로서의 실질적, 정서적 타지 생활 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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