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nzlerin Nov 01. 2020

이중언어와 사고방식의 영향

나를 강하게 이끈 것들

어쩌면 이 짧은 챕터를 쓰기 위해 앞의 8편의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중 언어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확실히 내 진로 선택에 영향을 준 사고방식의 양상을 정리하자면 항상 안정성을 최우선 하는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아주 다급하지는 않았고 또 그동안 생계를 같이 챙겨야 하는 배우자나 자녀도 아직 없었다는 조건도 한몫을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성 등의 기준보다 다른 것을 열심히 쫒아온 것 같다.


나는 이제껏 기술했듯이 이중 문화와 언어를 지니며 정성껏 가꾸고 살아온 양상을 축약해서 "이중 언어 인간"이라고 불렀다. 이때껏 나의 자아실현이나 재능 사용 최적화를 꾀하는 결정들은 전부, 확실한 객체와 확실한 객체가 중첩되는 그 미세한 겹침의 영역, 어쩌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그런 영역들을 귀신같이 포착하고 참 열정적으로도 한 땀 한 땀씩 찾아서 따라갔다. 


석사 때는 한국에서 유럽을 공부하고, 박사 때는 독일에서 한국을 공부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박사 학위 논문 때 대학원 동기들도, 스승들도 전혀 연관이 없는 계량 텍스트 분석 방법을 적용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굳이 나는 전공하지도 않은 컴퓨터 공학의 기술 발전을 접목해야 한다는 집념에 강하게 이끌려서 독일과 한국의 컴퓨터 공학과를 뻔뻔하게 넘나들었다. 그래서 박사 졸업 후에는 프랑스의 한국학 연구소에서도 일할 수 있었고 독일의 사회과학 연구소에서도 일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급기야 컴퓨터 공학 학과에 취직해서 2년째 일하고 있다. 순수한 사회과학 배경을 가지고 컴퓨터 공학 부서에서 홀로 일하는 사례는 많이 없는데, 그건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많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적어도 사회과학에서는 그 분야에서 착실히 직선으로 실적을 쌓아야 교수가 되니까.


이런 식으로 이중 언어의 세계를 평생 구축한 사람은 선택의 기준도 좀 특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의 지론이다. 고양이처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상자나 가구 사이의 칸을 보면 굳이 들어가서 편하게, 남이 보기에는 다소 불편하게 앉아 있는데 자신은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점이 닮았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준이 나에게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지는 나이의 한계점에 다다렀다. 이 또한 내 세계관의 큰 확장을 뜻했다. 게다가 올해인 2020년의 국제적 변혁은 또 추가적인 생각의 전환을 우리 모두에게 발생시켰다. 어쩌면 이제는 모두가 이중 언어 인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세계의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나를 위한 구석을 찾아서, 그 안에서 자리를 틀고 나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어쩌면 이제는 이래야만 하고 나를 위해 이제는 그래도 된다는 세상사의 계시를 우리 모두는 받았기에 말이다. 구석이라고 해서, 작은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일수도 있다. 온전히 나의 것인 구석이라면 그것으로 세상도 제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아무리 안정성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이중 언어 인간의 이중성을 행복하게 따라갈 예정이라고 본다. 나름의 신념에 확고한 채로, 내 이중성으로 꽉 채워서 빈틈없이 그려서 꾸밀 수 있는 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전 08화 이중언어가 진로에 끼친 영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