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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03. 2020

독일은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할까?

나도 배운 것들 

고등학교 역사과목은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거의 2차 세계대전만, 특히 그 발단의 과정을 다뤘던 것 같다. 역사 교과서가 빼곡히 그것만 세세히 순차적으로 기술했던 것 같다. 내용과 별개로 역사시간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던 것과 별개로, 이 주제를 빼면 독일은 역사시간에 별로 할 말이 없다. 입시를 향해 공부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과정의 대부분을 전후 계몽 교육에 할애한다는 것은 독일 사회가 지식 시민에게 기대하는 정체성이 여기에서 유래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바라는 것과 실상은 당연히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전후 책임론과 참회를 정상화시키는 교화의 목적은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흡사 교리처럼 형성하는 것이다. 참회가 "절대적인 참"을 주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높이로 교육하고 이성적으로 대변할 만큼 이해하는 여러 장치를 역사 과목뿐만이 아니라, 국어 과목이라던지 추모지로 떠나는 수학여행이라든지를 통해 만들어 놓았다. 이건 우선 내가 체험해서 아는 정도, 즉, 여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국한된 얘기다. 그 이상은 검증할 체험이 부족하다. 게다가 세대차이도 이제는 아주 적지는 않으니 현황이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이 내게도 있다. 


오늘은 두 명의 교사가 현장 체험을 전달하는 기사다


<1953년생 폭스 씨는 2019년 8월 이후로 정년 퇴임했다. 그전까지는 독일 내 직업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예를 들어 요식업 전문인, 농부, 제빵사가 되고자 하는 16-22살의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쳤는데, 교과 과정에는 파시즘에 대한 단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20년간 저는 정기적으로 학급 학생들과 엘자스에 위치한 집중 수용소를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아직도 하는 일입니다. 방문하는 수용소는 노동 수용소로서 그 외에 의학 실험을 수감자에게 실행했습니다. 그 세대를 몸소 체험한 산증인들이 진행하던 가이드 투어를 그대로 인계받았습니다. 그들은 청소년과 접촉하면서 경험했던 바를 매번 새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 일은 극복이기도 했고 간절한 간청이기도 했습니다. 다시는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후대인 저희들은 팩트와 자료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비판에 동감하지 못합니다. 이런 수학여행을 요구하는 것도 학생들이에요. 현장에서 무례한 우스갯소리를 하는 광경도 본 적 없고요. 섣부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른 세대들입니다. 가끔 불평하는 아이들은 있습니다.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이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도착하면 대부분은 충격을 받고 난 후 더 알고자 합니다. 항상 시간을 초과한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죠. 질문이 어찌나 많은지 투어가 예정보다 두 시간 더 길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해요. 


가장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는 시체 소각장입니다. 아직도 탄내가 난다는 말을 학생들이 하곤 해요. 그럴 리가 없는데도요. 의사들의 진료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내 타 수용소에 비해서 그곳에는 많은 장비가 보존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인간 생체 실험, 특히 여자로 실험하기 위한 진료대에 부착된 피 배수구가 있어요. 아니면 이중 전기 울타리라던지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는 학생들이 직접 결정하는 편입니다. 그중 몇 명은 오두막에 손만 대도 충분해해요. 그렇게만 해도 역사와 직접 소통하는 거니까요. 


학생들이 충격받았다는 것은 침묵으로 알 수 있어요.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지죠. 남자아이들이 아주 오래 침묵하고 여자 아이들은 감정을 좀 더 빨리 표현하죠.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죠?"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듣습니다. 옛날에는 수용소를 나와서 함께 간식을 먹으며 대화하기도 했죠. 요즘은 그러면 안돼요. 요식업 수습생들의 경우 야간에 다시 출근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토론이 시작되는 편이죠. 학생들은 질문이 많습니다. "시체는 어떻게 했나요?"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 "1945년 이후에 의사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의사들 중 두 명이 70년대까지 독일 병원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가 굉장히 난감하죠. 


제 학창 시절 때는 엄청 달랐다는 기억이 생생해요. 역사시간은 비스마르크 때에 끝났어요. 나치 시대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역사 전공을 했을 때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배웠습니다. 70년대 말 연수기간 중에도 교관들이 저희에게 학생과 집중 수용소 방문을 하지 말라는 뜻을 강력하게 전했어요.


다행히 그 후에 매우 많은 열정적이고 젊은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야만 역사 수업이 가능합니다. 교사가 주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학생들은 즉각 알아챕니다. 집중 수용소 방문을 한다 쳐도 정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론적 예습과 복습을 병행해야 합니다. 파시즘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투어 도중에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한 가지 항상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의 사전 지식이 극도로 들쑥날쑥하다는 거예요. 통합반을 만났는데 아무것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수용소 방문으로 주제에 입문하는 셈이죠. 반면에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저조차 새로운 배움을 얻어가는 인문계 학생들도 있어요. 또 덧붙여야 하는 것은, 직업학교 학생 중에 극우 사상에 취약한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농부를 준비하는 학생이, 나치 시절에는 농부에게 좋은 점이 많았다고 제게 말하더라고요. 이런 오해에 대항할 때 논리와 팩트는 별 힘이 안돼요. 하지만 노동 수용소 안에 서서 나치가 범행한 범죄를 느낄 때면, 그래도 결국 깨달을 때가 있죠.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에 눈을 맞추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감성적이든, 고집스럽든. 그래서 이 일이 흥미롭습니다. 내일 무엇에 직면할지 모르니까요. 


홀로코스트 추모 장소 방문을 교과과정에 필수로 포함하는 것을 저는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파시즘이란 지속적 위험이기에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파시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영민함을 키우는 것입니다. 참여한 이상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라고 저는 확신해요.  


하지만 요즘 들어 수용소 방문은 지원되기는커녕 침몰되고 있습니다. 개편된 직업학교 커리큘럼은 사회학 같은 과목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수학여행에 하루를 쓰기보다 시험을 위한 족집게 준비에 할애하죠. 


<벨라우 씨는 1974년생이며 20년째 실업계 중,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를 맡는다. 최근에는 교사 협회의 주 대표로 선임됐다.> 


제가 어릴 적에 조부모님과 나치 시절의 생활환경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십 년 후에도 "깨진 수정의 밤"(*나치 세력이 유대인 상점과 회당을 공격한 사건으로 시발점과도 같다)을 생생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이에 대한 대화도 주도했고요. 동급생들이 집에서 들은 얘기들도 수업에서 종종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독일 역사가 우리 모두와 우리 가족들과 연관되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저희 모두는 함께 지고 가는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요즘 보고 듣는 바에 의하면 오늘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정이 다른 것 같아요. 전쟁에 대해 얘기해주는 조부모가 우선 없어요. 독일 분단도, 장벽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존경심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제 체험상 청소년들은 원래 이 주제에 엄청 다양하게 반응해요. 홀로코스트에 대해 질려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학생도 있지만, 학교가 제공하는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애들도 있어요. 


존경심 부족의 인상이 드는 때는 청소년이 적절하지 않은데 웃을 때에요. 추모관 방문 때나 수업 중에 유대인 대학살 얘기를 하는 중에요.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도움이 안 돼요. 개개인의 경우를 살펴봐야 해요. 터부를 깨는 것은 좋은 대화의 돌파구가 되기도 해요. 교사로서 저는 알아내야 해요. 이 웃음은 혹시 아이들이 이 순간 감당치 못하는 강한 당혹감인가? 아니면 실제로 멸시나 반인류적 태도가 도사리고 있나?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하지만 정확히 들여다보는 게 나아요. 그러고서 반인류적인 태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뚜렷이 하죠. 


학생이 "이 유대인아!"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하면 저희 교사들은 당연히 개입해야 하죠. 그럴 때는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니?"라고 물어봐야 해요. 분명한 건, 저희 때는 "젠장할"같은 단어로 충분히 도발이 가능했다면, 요즘 청소년은 더 강한 고조를 택해요. 그런 욕은 아무리 장난 이래도 용납될 수 있는 한계를 분명히 넘었음에 아무런 의심도 남기지 않는 것이에요. 만약 반유대적 사상이 그 뒤에 숨어있음이 유추된다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죠. 극우 파별들에게 청소년이 영향받고 있을 수 있거든요. 이럴 경우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해요. 대화할, 토론할 시간이요. 그리고 시간이란 자원은 학교에서 항상 부족한 것이죠. 


홀로코스트라는 주제에 감성적 교감을 일깨우는 것은 항상 의미 있어요. 그래야 저희 역사의 이 부분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청소년도 느낄 수 있어요. 저희 교사는 그래서 산 증인들을 교실로 초청하곤 했죠. 하지만 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죠. 곧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만회하기 위해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를 함께 시청해요. 혹은 피난 경험이 있는 학생이 전쟁 속에 살거나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삶이 어떤지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는 시간을 갖죠. 


특히 중요한 것은 범죄가 이루어진 장소에 가는 거예요. 잘 기획한 집중 수용소 방문처럼요. 하지만 바로 근처에 있는 작은 장소들도 똑같이 좋다고 저는 피력하곤 해요. 예를 들어 본인이 거주하는 시내를 거닐며 기념 문구가 적힌 비석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당하고, 추방당하거나, 살인되었는지 인식하는 거죠. 그러면 아우슈비츠뿐만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벌어진 일이구나,라고 깨닫죠. 이렇게 역사를 아이들의 생태계로 끌어옵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부분은 항상 이성적인 부분을 동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호소로는 불충분해요. 오히려 청소년에게 거부감을 심을 수 있어요. 증조할아버지의 죄를 더 이상 본인의 죄로 여기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민자 배경의 아이들은, 이건 내 역사가 아니라고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양심의 가책을 발생시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훈련을 시켜야 해요. 그리고 홀로코스트는 우리 모두의 주제임을 이해시키고요. 


그래서 수업을 통해 항상 분석하는 것이, 편견과 따돌림이 어떻게 이토록 전무후무한 범죄를 초래할 수 있었는지입니다. 저희는 묻습니다: 우리들이 직접 체험한 따돌림은 무엇이 있으며, 유대인 핍박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민주주의적 장치는 어떤 것이 있는가? 내가 직접 차별에 대항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다룬다는 것만으로 반쯤은 이긴 겁니다.


번역하는 와중에 학창 시절 기억이 아련 거릴락 말락 하는 걸 보면 그때와 지금은 비슷한 것 같다. 이 기사에서도 학교 계열 간의 차이는 극명한 편이지만 기본적인 과제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모든 직업을 사명감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러기에는 인생의 상황이 너무 다양하다) 교사는 사명감으로 하지 않으면 적어도 전후 관련 교육은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의 현장의 목소리를 읽으면 말이다. 


감성 위주로 양심을 공략하는 접근은 해롭기까지 하다. 현재와 미래의 주요 문제인 인터넷 상의 오보 확산이 딱 이런 기제를 띄기 때문에 이게 정치 정당의 저급한 담론이 낳은 결과인지, 공과교육의 한계인지, 인간의 본성인지 구분이 안된다. 이성을 제치고 양심의 가책만을 아는 논리는 불특정 타인을 쉽게 탓하고 집단 광기에 취약해진다. 위 기사에 언급된, 양심의 가책의 일방적 주입에 대한 거부감 조성도 같은 맥락의 역효과다. 그래서 양심의 논리로 유권자를 동원하려 애쓰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도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데 당최 내가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를 보고 배운다. 자녀는 부모와 교사를 보고 시민은 정치인과 언론과 동료 등을 보며 비슷한 형상을 띄어간다. 나도 누군가 볼지 모르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마찬가지로 나부터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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