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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Jan 23. 2020

독일의 교원 단체는 서로 대립할까?

한국은 교총과 전교조라면, 독일은?

알다시피 한국에는 교총과 전교조로 대표되는 여러 교원 단체가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딱딱한 주제일 수 있지만, 어린이에서 청소년 교육까지 걸린 문제이다 보니 대립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상 해석이 갈리는 정치적 인물과 사건이 독일보다 더 많고 불협화음이 더 심하다.


독일의 교원 단체의 경우, 한국에 비해서 역사 해석의 갈등은 없다. 1,2차 대전에 관련된 역사적 과오를 대하는 온전한 일치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80만 명의 교원이 있고, 그중 크게 3개의 단체가 독일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학교의 계열 내지 이념에 의해 나눠진다.

A단체: 모든 계열, 28만 명 (좌에 가까움) 

B단체: 초등학교 및 비인문계, 16만 4천 명

C단체: 인문계, 8만 명(보수파)

   + 실업계, 2만 5천 명

   + 가톨릭 교원, 1만 명   

C 단체에 해당하는 독일의 보수파 계열의 교원 단체의 대표는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교육자라고 한다. 한국의 예를 들고 난 후 슬쩍 걱정이 앞서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독일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어떤 종류의 영향력을 독일 교원 단체의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기 위해 대표적 인물 한 명을 조명하는 신문기사를 선택했고, 아래에 자유롭게 번역해봤다. 덜 중요한 단락은 알아서 생략했다. 


그의 이름은 마이딩어 씨. 그는 요즘 하루 종일 언론의 연락을 받고 수시로 출연한다. 중국 뉴스 통신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어떻게 알고 전화를 걸었냐고 궁금해하니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거라고 한다. 검색창에 "선생님" "독일"만 입력해도 그가 나온다. 학부모의 치맛바람이든, 지나친 학구열이든, 성적의 인플레든, 독일의 학교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때 (그냥 항상 아닐까) 그의 고견은 감초처럼 반드시 등장한다. 


학교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보다 권위 높은 자는 없다. 언론 상의 출현으로만 따지만 어느 문화장관 부럽지 않다. 교육장관도 마찬가지. 그가 피하는 마이크는 없다.


도대체 누구를 대변하는 것인지? 본인의 의견을 왜 사방에 전파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토록 끊임없이 언론에 오를 수 있는지? 그는 전담 팀도 없고 따로 시급을 받지도 않는다. 그가 로비이스트로 전환할 때는 운전할 때,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1교시 전 등이다. 본업은 교장이다.


그가 이끄는 학교는 바이에른 주의 북쪽에 있다. 큰 건물의 학교는 최첨단 디지털 장비로 채워졌으며 고급 소재로 이루어졌고, 보기에 아름답다. 현재 유럽의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금요일마다 벌이는 온난화 반대 집회에 참여해도 되냐는 두 학생의 질문은 거절했다. 어차피 수업 내용은 보충해야 할 것이기에. 마이딩어는 교사의 학생 감독 의무 등의 문제 때문에 학생을 정치적 집회에 보낼 수는 없다고 한다. 학생들도 순한 편이라 학교의 강경한 태도에 반항하지 않는다.


그보다 논란이 된 것은 이 주제에 대해 마이딩어가 했던 발언들이다. 정확한 규정을 내리지 않은 탓에, 땡땡이 허락의 유무를 학교 수장들에게 떠넘기는 문화장관들이 비겁하다고 말하고, 정작 환경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이면서 데모하는 청소년들을 향해 공감을 표했던 메르켈 총리가 가식적이라고 발언한 그다.


이런 말을 할 때면 영락없는 바이에른 출신 교감 선생님이다. 정치를 향해 독설을 날리고 보수의 날을 세우며, 성취형 교육을 지향하고 쓸데없는 개혁을 배제한 학교를 원한다. 학생 간 격차 통합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여기며,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증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연말에는 특별히 강한 한 방을 날렸다. 교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준비가 덜 된 전공 변경자를 임용하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범죄라는 발언이 모든 채널에서 널리 인용되었다.


그는 적절히 과장할 줄 알며, 그것을 즐기고, 잘한다. 그를 훈련시킨 건 70년대 대학교 시절, 보수 학생 연합을 대표해서 중도 좌파를 상대로 몇 번이나 우승을 거머쥐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동료 중 한 명은 오늘날 보수정당 소속으로 바이에른 주 내무 장관을 지내고 있다. 마이딩어 자신도 보수정당 일원이지만, 본인은 있으나 마나 한 유령회원이라고 한다.


실제로 마이딩어는 보수 꼴통 불편쟁이가 아니다. 실제로 그를 만나면 인상부터 그렇지 않은 것이, 그는 살짝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사적 대화를 나눌 때 여유 있는 친절함을 보인다. 그가 얘기해 주는 것들은 바이에른 출신의 엄격한 교장 이미지에 썩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낙제한 적 있으며, 학교 졸업 후에 군입대를 거부하고, 현재 온난화 문제에 열성인 청소년들을 향해 친밀감과 존경까지 느낀다고 한다. "많은 학생들이 매우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무척 이성적이에요. 상대하려면 정말 열심히 토론해야 돼요."


그가 직설화법을 쓸 때는 공공 발언을 할 때이다. 쉴 새 없이 지껄여대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본인의 말을 들어주기 원한다면, 인물이 잘 알려져야 하고 항시 연락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에게 질문하면 빠르게 명확한 답변을 받습니다." 그의 이전 전임자였던 자는 본인의 의견을 주로 보수 언론을 통해 전달하기 일쑤였다. 마이딩어는 그 누구와도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해당하는) 보수 신문이든, (*경향일보에 해당하는) 좌파 신문이든, TV든, 온라인 포털이든 말이다. 


역으로 누구든 그와 대화할 수 있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는 교원 단체 홈페이지에 떡하니 적혀 있다. 지인들은 그가 2017년 6월에 취임할 시에 지나친 공적 노출을 삼가라고 충고하곤 했다. 어느 미친놈이 연락할 줄 알고. 가끔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럴 때 그냥 끊어버린다고 한다. 그보다 빈도가 훨씬 높은 건 언론인의 전화다. 연락처를 인터넷에서 찾아 급하게 인용할 발언을 구할 경우다.


타 교원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들은 장관의 공고를 내보낸다. 마이딩어에게 이런 것들은 거추장스럽다. 그는 그저 휴대전화가 울리길 기다리면 된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딩어는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신속하게,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항상 최상으로 정보를 갖춘 상태에서.


그가 대표가 된지는 2년 반이지만 그 직전에 13년간 단체 내의 인문계열 조직을 대표했었다. 그는 그 자체로 독일 교육의 일부분인 셈이다. 이 정도의 위치에 다다르지 못한 자들이 많다. 교육 정책에 막강한 문화장관들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그들의 후임들은 빠르게 교체되거나 본인의 주에서 벌어지는 교육 정치만으로도 버거워한다. 베를린에서 재직 중인 교육장관은 취임되자마자 정치적 수명이 끝날까 봐 고군분투 중이다.


학교 연구의 중요성은 공공의 의미를 잃었다. 같은 의미로, 오늘날의 교원 단체 간부들은 한낱 대리인 정도로 전락한 탓에 교육 문제를 두 개의 원인으로만 귀결하려고 용을 쓰는데, 하나는 독일의 교사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독일의 교사들이 너무 적게 번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언론은 차라리 마이딩어 씨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는 현역으로서 교육의 현실을 알뿐더러 깊숙이 들어가 있다. 현재 가장 위상이 높을 법한 교원 단체의 대표라는 것도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마이딩어는 말한다.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단체는 그다지 크지도, 막강하지도 않다. 엄격히 따지면 구성원은 네 개의 조직뿐이다. 이 단체는 로비 연합으로서 여러 학교 계열을 대표하는 하위 단체들이 모인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학교 계열 간의 통합이다.


단체의 본사는 베를린 어딘가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다. 가구는 60년대 유물인 듯하다. 타 교원 단체들은 여러 명의 전담 직원도 있는 반면에 본 단체는 비서 한 명과 부장 한 명뿐이다. 재정은 15만 유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이상을 사들일 사정이 못 된다. 실세인 본부는 휴대전화를 든 대표님인 셈이다. 그에게 빈약한 조직은 오히려 장점이 된다. 힘든 토론을 통한 의견 정리도 필요 없고, 이견이 있다고 불평하는 일원도 없기 때문이다.


단체 대표 마이딩어가 유일하게 조심해야 할 것은 교장 마이딩어가 본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공개 토론, 강의, 전문가 토론 같은 공식 스케줄은 매주 한두 번 독일 어딘가에서 소화한다. 언론 출현도 당연히 하고 말이다. 새벽비행으로 뮌헨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아침 종이 울릴 때 학교에 도착할 때가 드문 대신에 저녁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으며 밤에도 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곤 한다. "마이딩어는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위급 상황만 되면 어김없이 지원군이 돼주죠."


허나 실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마이딩어가 공적으로 지적하는 많은 문제는 수업 감축, 디지털화의 부재, 열악한 가정환경 등을 포함하지만, 머나먼 바이에른 숲과는 다소 먼 문제들이다. 이곳의 학교는 아직 평화롭다. 본 학교는 교사 부족이 뭔지 모른다. 학생 간 격차의 완화와 관련이 그나마 있을법한 것은 휠체어를 탄 단 한 명의 여학생이다. 심지어 사춘기 청소년들까지 정면의 물리 교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관찰한다. 이 학교에 문제 같은 게 있기는 한가요?라고 질문하니 직원 담장자가 골똘히 고민할 정도다.


"네, 그렇죠. 학부모, 학생, 교사가 아직 이토록 서로 협력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것이 기쁩니다."라고 마이딩어는 말한다. 65세인 그는 올해 여름 은퇴한다. 교원 단체와 사회를 당장 떠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에 견줄 실력을 갖춘 후임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이딩어는 커리어의 황혼에서 최대의 영향력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민당 교육장관들조차 달갑지 않은 공고를 발표하기 전에 그에게 전화를 건단다. 듣고 바로 불같이 혼내지 말라고. 그는 독일의 학교와 교육 정책에 대해서 긍정적인 발언도 더 자주 하고 싶은데 말이다. 즐겁게 학교에 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해서, 자녀의 학교를 남에게 추천하는 학부모에 대해서, 다시 태어나도 같은 직업을 택하겠다는 확신에 찬 교사들에 대해서. 이런 건 모두 연구로 인해 증빙된 사실들이다. 마이딩어는 다 읽어봤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언론에 좀차 실리지 않죠. 원래 그런 거죠."


한국과 크게 다른 부분도, 똑같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되는 기사이지 않은가?


여기 묘사되는 교원 단체 대표는 미디어 이해가 높은 사람이다. 그걸 무기로 교원 단체로서 전례 없는 영향력을 얻었다. 이런 스타일의 교원 단체 대표가 한국에 있다면 긍정적 반향을 일으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역사 갈등에 기초한 이념 차이가 극심하기에 양쪽 중 한 명이 막강하다면, 반대편의 저항으로 인해 역효과가 나도 단단히 날 것 같다. 


주요 지지 정당과 경제 기반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만큼, 다음에는 베를린처럼 비교적 가난하고 이민자 비율이 월등히 높은 도시의 학교 문제에 대한 기사도 들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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