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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Jun 07. 2020

성공한 문화예술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기대해도 될까

독일에서 자란 데다가 교회 등의 장소에서 한국인들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면, 그 교집합에서 매우 친숙해지는 집단이 있다. 바로 한국인 음대 유학생들이다. 미국에 비해 저렴한 학비와, 뒤쳐지지 않는 음대 수준 덕분에 모든 전공을 통틀어서 음대생이 제일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음대생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들을 통해서 접한 예술 학도의 세계를 나도 후에 미대에 입학하며 추억할 수 있었고, 영감도 얻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접목한 작품도 몇 번 시도한 걸로 미루어 보면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또 몇 년 후에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파리에 1년 거주하면서, 비교적 높아진 생활 속 언어 장벽을 정말 오랜만에 느끼며, 내 유년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한인 음대 유학생들에게 늦게나마 존경(?)까지 든 적도 있었다. 여담으로, 독일 대학은 학비 자체는 거의 안 들고 생활비도 더 저렴하니, 학원비와 독일어 스트레스를 제외하면 한국 음대를 다니는 것보다 절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어가 난제이기는 하나, 요즘에는 교재와 자료도 풍부해지는 시대인 것 같아서 오히려 이전보다 좋은 기회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미대생으로서 접한 예술계는 복잡 미묘했다. 예술가로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첫 번째 난제이지만, 그보다 배후에 숨었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난제는 메세나 (후원자)이다. 예술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것일수록 후원자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원리는, 사실 이론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오래 일한 예술가가 체험하는 그 원리는 또 다를 것이다. 발만 담갔다가 뺀 나보다는 말이다.


오늘 기사는 비교적 비주류 악기인 비올라 연주자로서 최대 영예를 안은 분이 차이트 주간지와 인터뷰 한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메세나가 중요한 만큼이나 학생 때는 교수가 중요할 수도 있겠다. 심지어 과학의 성향을 띄는 학계에서도 주관적 판단이 큰 영향을 끼치는데, 작품성이나 예술성이란 것은 보다 더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그래서 만약 예체능 교수가 부정부패를 행한다면, 다른 전공보다 더욱더 학생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체능 교수가 평균 시민보다 더욱더 도덕적으로 깐깐해야 하는지, 그 반대보다 이것이 차라리 더 나은지, 생각해보게 되는 기사이다.


기자: 25만 유로 상당의 에른스트-폰-지멘스 음악상은 음악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립니다. 업적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지만, 음악의 미래에 대한 의미도 있을까요?

짐머만: 우선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죠. 그리고 제 악기인 비올라와 현대 클래식을 조명하는 기회도 되죠. 저에게 개인적으로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 상은 제 작업에 대한 응원이자,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지원과 같아요. 제가 누구고 무엇을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발상을 관철할 수 있기 위한 발판이에요.


기자: 무엇이 있을까요?

짐머만: 제 자신 외의 것들이에요. 저는 인생 동안 비올라를 하도 많이 켜서 앞으로 연주회를 늘릴 욕심이 없어요. 그보다는 프로젝트 구상에 집중할 자유를 늘리고 싶어요. 이제는 작곡을 의뢰할 입장도 되고요. 그리고 상금의 일부는 꼭 젊은이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제 자신도 타인의 지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기자: 에른스트-폰-지멘스 음악 재단 의원회는 당신이 "비올라의 매력"을 높였다고 평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할까요? 비올라를 위한 선곡의 폭은 바이올린이나 첼로, 피아노에 비해 작으니까요.

짐머만: 생각보다는 커요. 낭만주의 곡들 중 아직도 새로 발견하는 것들이 있을 정도예요. "어떻게 이런 명곡을 지금에야 알았지?"라고 매번 생각한다니까요. 아직은 여지가 무한해요. 물론 중요한 비올라 콘서트 곡은 모두 20세기에 창작되었죠. 18세기에도 중요한 작곡가들이 있었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것만 다룰 정도로 흥미롭지는 않아요. 제 학생들은 그걸 배워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요. 하지만 다른 악기에 비해 예를 들어 모차르트 콘서트 곡이 단 하나라는 사실은 아쉽죠.


기자: 불가피하게 현대 음악을 찾아야 하네요.

짐머만: 네. 20, 21세기에 들어서는 수백 개의 비올라 콘서트 곡들이 있죠.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어요. 초대 공연 이후로 연주하는 사람이 없어요. 작곡가에게도 힘든 상황인 것이, 몇 년간 고심한 작품이 딱 한 번 공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제 희망은 저의 공연과 녹음물들이 후대에게 교재가 되는 것이에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다행히도 비올라 연주자의 수가 늘어나는 중이어서 연주회도 늘고 있습니다.


기자: 과거에 음악이 편향됐던 이유는 뭘까요?

짐머만: 이유가 많아요. 전통의 이유도 있고요. 몇 년 전에 유명 오케스트라와 함께 현대 비올라 콘서트를 연주했는데, 저를 너무나 낯설게 여기는 음악가들을 만났어요. "와, 이런 걸 어떻게 연주해요? 이해가 안 돼요"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저는 순회공연을 할 때 젊은 비올라 연주가들을 많이 만나는데, 학교 과제 중 20세기 작품 중에서 뭘 배우냐고 물어봐요. "아무 작품도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아요.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공연에서 연주하나요?


기자: 주최자들의 역할은 뭔가요?

짐머만: 순수하게 경제적으로 사고하는 주최자들과, 국가 지원을 받는 주최자들을 구분해야 해요. 어느 대형 사립 주최자와는 매우 나쁜 경험을 했어요. "바톡 사중주를 연주하겠다고요? 그러면 저작권료는 직접 지불하세요"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들었어요. 저작권료를 연주자가 부담하게 하더라고요. 국가 산하 주최자는 반면에 작품성을 추구하면서 이윤을 걱정할 필요가 덜하겠죠. 이윤을 따져야 하는 주최자들은 유명 낭만주의 작품들만 고집하고요. 여기서 문제는, 우리 예술가들이 공립 주최자들에 의해 시범적으로 고용된 후에야 사립 주최자들이 위험 부담을 줄인 채로 우리를 고용한다는 거예요. 이미 한번 관객 검증이 된 셈이니까요. 그래서 이미 성공했고 이윤을 보장하는 연주자들만 초청돼요. 그럴 때는 대형 사립 주최자들에 대한 끓는 분노를 느껴요. 책임감을 질려하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청소년에게 할인표를 보장하려 하지 않는다든지요. 아무도 구매하려 하지 않는 표가 생겨야지만 청소년에게 할인표가 생기죠. 당일 저녁에 남는 표요. 그런 것은 사회적 책임에 반하는 태도입니다.


기자: 에른스트-폰-지멘스 음악 재단은 음악 외에도 당신의 공개적 인격을 기렸습니다. 당신은 과거에 클래식 음악계를 "더러운 바닥"이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젊은 음악인은 어떻게 준비해야 방어가 될까요?

짐머만: 이것 저것을 해야 최고가 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쓰여져 있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젊은이는 특정한 자리에 끼어야 올라갈 수 있다는 압박을 느껴요. 원래 그렇죠. 하지만 그럴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라고 물어봐야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더 이상 중국, 사우디, 혹은 러시아 재벌 주최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물론, "돈은 항상 더러우니까 출처를 모르는 것이 낫고, 어딜 가나 음악으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관객이 존재하니까, 그곳에 가서 연주함으로 인해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어요"라고 반론할 수 있죠. 저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요. 우리 연주자들은 점점 더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 매우 까다로워져서, 의심이 갈 시에는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어요.


기자: 하지만 젊은 음악가로서 그럴 만한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요?

짐머만: 현재의 코로나 위기 상,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음악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뭐든 다 해야 한다는 압박을 넘어서는 용기예요. 일찍부터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 영향을 끼치고 무엇이 아닐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권력과 영향력을 지닌 자가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아무리 공연 하나가 줄어든다 해도 나는 거리를 두어야 해요. 이런 이유로 베르비에 페스티벌도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아요. 그곳에서는 러시아 재벌의 자본의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어요. 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너희가 특정한 행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수록 나는 오히려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아 진다"라는 결론까지 내렸죠.


기자: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계속 확장 중이에요. 페스티벌 의장은 라트비아에서 이미 다음 페스티벌을 창단했고, 자신의 자본으로 현재 발틱 국가들의 예술문화계를 압박하고 있어요.

짐머만: 그곳뿐만이 아니에요! 조지아에도 같은 주최자의 페스티벌이 있어요. 저는 몇 주간 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이 모든 행사들이 같은 러시아 재벌에 의해 지원되고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요. 아직까지는 증거를 찾지 못했어요.


기자: 다른 경우에 또 목소리를 내셨죠. 지크프리트 마우저가 이미 성범죄로 기소됐을 때 베토벤 축제에 초청되자, 입장을 표명하셨죠.

짐머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어요. 아직 판결 전이었지만, 그럴수록 조심해야 하기도 하고요. 또 저는 그분과 아는 사이여서 개인적으로 내린 판단도 한몫했고요. 판결이 난 지금, 저는 더 확고하죠. 이제는 죗값을 치르고 피해자인 척은 그만하길 바라요. 피해자 시늉은 실제 피해자에 대한 조롱이예요. 아주 기분 나빠요. 그를 보호하러 나선 단체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러니까 음악계의 여성들의 처우가 이 모양이죠.


기자: 그래도 결국은 열정적으로 음악을 하시죠? 슬럼프를 어떻게 예방하시나요?

짐머만: 음악은 저를 강하게 하고 원동력이에요. 음악을 안 하면 오히려 지쳐요. 그래서 휴가도 짧게 보내요. 며칠 간의 휴식은 좋지만, 오래 쉰 후 재시작은 힘에도 부쳐요. 길게 출장한 후 돌아오면 우선 대학으로 돌아가서 제자들과 음악 얘기를 해요. 그러면 저녁에 퇴근 때 기분이, 출근 때보다 좋아요. 뭐라 설명은 안되지만 음악에서 엄청난 힘을 얻어요. 그게 없다면 이렇게 많이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죠. 일벌레이기는 해요. 상담사와 의논해야겠네요 (웃음). 너무 즐거워서 전혀 지치지 않아요.


기사를 읽고 드는 생각은, 독일의 소위 엘리트 중 모두는 아니지만 반 자본주의적 신념을 따르고 실천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이 보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실제 삶 속에서 선택을 내린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 실력이 출중한데도 소셜 미디어 대기업을 혐오해서 절대로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실제로 공기업에 취직한다든지. 혹은 본문의 음대 교수처럼 주최자의 은밀한 내력을 알려하고 초청을 거부한다던지 말이다. 그걸 보는 나의 심정은 조금 섞여 있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에 이득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나라면 하겠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내 전문성으로 악의 소굴에 들어가서 내부적으로 작은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편에 나는 가깝다.


결국에는 자신이 알아서 내려야 할 결정이다. 신념이란 공식화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교수가 신념으로 인해 나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에는 학생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겠다. 반면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학생과 젊은 예술인의 미래에 득이 되는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거나 교수라는 공직자가, 그리고 성공한 문화예술인이라는 영예의 자리가,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는 계속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문화예술의 수준도, 세계적인 위상도, 예체능의 다양성도 계속 높아질 테니까. 


시장 구조와 자본의 두터운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야 하는 예체능의 젊은 세대는, 연약한 새싹처럼 정성 어린 이해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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