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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ver Jan 15. 2020

[김한강의 허영] 월급이 오른날, 난 이솝 샴푸를 샀다

월급이 오른 날 이솝 샴푸를 샀다. 그리고 다짐했다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지난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월급이 꽤 올랐다. 나이에 비해 적진 않은 금액이 통장에 꽂히기 시작한 것이다. 첫 월급이 들어온 날 나는 회사 근처 여의도 IFC몰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이솝 매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자취를 한지 어언 5년 차다. 프로 자취러가 되는 과정에서 터득한 사소한 행복들이 있다. 매일 쓰는 물건들의 중요성이다. 그런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칫솔, 샴푸, 핸드워시, 패브릭, 배게 등이다. 이것들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면서 점점 몸에 직접적으로 닿는 제품들을 바꿔나갔다. 가장 먼저 배게를 바꿨다. 아직도 잘 쓰고 있는 무인양품의 '물새 깃털 배게'.


그런데 아차! 점점 이런 것들에 관심이 생기니 눈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 게 아닌가.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사고 싶은 제품들의 가격은 점점 높아져갔다. 그렇게 나는 '나중에 살 제품'들을 하나씩 리스팅 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솝의 샴푸다.



이솝의 샴푸는 그래도 이솝 제품 중에 만만한 녀석이다. 무려 5만 5천 원 정도지만 이솝 제품 중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페이셜 라인은 적은 양인데 비해 가격대가 6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들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고, 바디로션은 500ml에 12만 원 정도다. 이솝 샴푸를 산 동기는 내가 평소 이솝 향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향수는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오랫동안 쓸 수 있기 때문에 내겐 만족스러운 제품 중 하나다.


이솝은 호주의 헤어살롱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한 제품을 새로 런칭하기 까지 10년의 시간을 연구하는 브랜드다. 공간건축과도 조예가 깊은데, 각 나라에 스토어를 오픈할 땐 그 나라의 건축가와 협업을 통해 오픈한다. 이솝의 핸드워시 거치대를 구매하려면 그 공간에 대한 이솝 본사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살 수 있다고 하니 그 디테일 정도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샴푸는  5종류가 있다. 클래식, 너처링, 카밍, 볼류마이징, 이퀄라이징이다. 영어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너처링은 두피 케어에 신경을 썼고, 이퀄라이징은 유분을 제거하고 유수분 밸런스를 잡아준다. 내가 사용한 제품은 이퀄라이징인데 유분기가 많아 매일 머리를 감아야 하는 내겐 꽤나 좋은 제품이다. 200ml와 500ml 제품이 있다, 나처럼 집에 두고 마음 편히 쓰길 원하는 이들에겐 500ml 제품을 사길 추천 한다.


이솝 샴푸가 배치된 욕실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장담한다. 사운즈 한남, 플레이스 캠프 제주 화장실에 배치된 핸드워시는 모두 이솝 제품이다. 제주 포도호텔의 어매니티도 전부 이솝 제품이다. 이솝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그 공간의 기획자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을 살펴볼 수 있는 나름의 지표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이솝 샴푸를 쓴다. 그때마다 난 내 정체성을 확인한다. 라이프스타일리스트, 미니멀리스트. '그렇지 난 샴푸마저도 디테일함에 목매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렇게 월급이 오른 날 난 이솝 매장에서 샴푸를 샀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더 벌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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