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열차는 이제 두 번째 정거장을 지나 세 번째 플랫폼에서 다시 달린다
연애 경험을 재구성한 에세이 형태의 픽션 스토리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도 사건도 모두 경험을 재구성한 허구의 것들입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누구도 모르는 종착지를 향해가는 사랑 열차는 이제 두 번째 정거장을 지나 세 번째 플랫폼에서 다시 달린다. 그렇다. 두 번의 연애가 끝나고 세 번째 연애가 시작됐다. 세 번째 연애를 시작하자니, 불현듯 덮쳐오는 두 번째 연애의 기억.
두 번째 연애는 신기하게도 '말이 씨가 된다'는 한국 고전 속담이 현실이 되는 경험이었다. 정말로 '말이 씨가 되어'버려서 지금은 놀랄 만큼이나 말과 생각을 조심한다. 그때의 사랑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짜릿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딱 내가 바라왔던 연애였다는 것.
이 시대의 연애가 그렇듯. 그이와의 시작은 이렇다. 데이팅 앱으로 만나 인스타그램으로 서로를 파악하고 부풀어 오른 상상력을 기반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순한 얼굴에 큼지막한 피어싱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박혀 있었다. 타고난 큐레이팅 감각으로 인스타그램 속 그의 모습은 항상 매력적이었다.
반대로 그이는 인스타그램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얼굴은 진한 화장이 덥혀 있었고, 매트한 맥 립글로즈를 수시로 덧칠했다. 클렌징 워터를 화장솜에 묻혀 얼굴을 닦아 주면 누런색 파운데이션이 여섯 개의 화장솜에 진하게 빨아져 나왔다.
정사각형 프레임 속 그이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나의 환상동화는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한 네 달에서 다섯 달쯤 정도였으려나. 그이와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천천히 꺼내는 것으로 하자. 헤어질 즈음에는 서로 말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유튜브 게임방송만 보더라. 하루 종일.
그이는 타고난 큐레이터였다. 사실 지금도 문득문득 헷갈릴 때가 있다. 프레임 속의 그이와 내가 겪어낸 그이. 나는 그 사이의 어떤 것을 사랑했을까. 혹은 그 모두를 사랑했던 것일까. 아이구, 사랑도 허영심 때문이었나.
[김한강의 허영]을 연재한 지도 두 주가 넘어갑니다. 주로 제가 허영심에 사들인 제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번외편도 연재할 생각입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kimyoill 입니다. 타 매체 기고 문의는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hanriverb@gmail.com으로 섭외 메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