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elona 27 dias> 출간에 부쳐
지난 주말은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열리는 홍대 무신사 테라스에 줄곧 머물렀다. 페어 하루 전엔 캐리어 가득 책과 부스 설치를 위한 준비물을 담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여러 번 크고 작은 북페어에 참가한 짬이 이럴 때 나오는 걸까. 축제의 부스다운 느낌을 주되 되도록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도록 여러 번 머리를 굴린 다음, 홀로 2미터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케이블타이와 클립, 그리고 핀이 날카로운 거실 커튼을 짊어진 채였다. 무사히 커튼을 걸고 가져온 스탠드를 켜고 작은 화분을 그 앞에 두었다. 광목천으로 만든 식탁보 위엔 이번에 나온 신간 <Barcelona 27 dias>와 4종의 엽서북과 포스터 그리고 이제껏 만들어 온 책들을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신간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그 옛날책들이 꽂힌 자리였다. 나는 수줍은 목소리로 '그건 예전에 낸 책들이에요.' 말했고, 손가락으로 책등을 더듬던 이들은 '저 전에 이 책 샀었어요!' 라고 답하곤 했다. 서울숲에서(아마도 작년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일 것이다), 서울역에서(예전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일 것이다), 한남동에서(더 예전의 퍼블리셔스 테이블일 것이다) 책을 샀었다는 이들은 '집에 있는 것 가져와서 싸인 받을 걸 그랬어요!' 하며 아쉬워했다. 나 역시 아쉬운 마음에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 냅다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쌀과자를 들이밀면서 '이거라도 드세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 마스크 안에서 웃음이 번졌다. '와, 계속 책을 내고 계시네요.' 같은 말을 들을 때면 '꾸역꾸역 끈질기죠?' 란 답을 하며 같이 웃곤 했지만, 그건 돌아와 내 가슴에 속속 박혔다.
처음 책을 만든 것이 2014년이니, 올해로 9년 차에 이르는 셈이다. 나는 충분히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고인 물'인 것일까. 아니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쳐 줄 만한 생존자인 것일까.
그때의 독립출판 동료들을 떠올리면 제각각 다른 행보들을 걷고 있다. 출판물과 관련한 자신의 사업을 개척한 경우들도 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발돋움해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름이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있는 게 아니라 많다. 그때의 그 멋진 책들, 하고 내 마음속에서 남은 이름들을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3일 내내 홀로 부스를 지킨 탓에 끼니는 허술하고 정신은 산만했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면 콧물과 기침으로 범벅된 달과 꼬마가 나를 맞이했다. 나는 대강 씻은 뒤 꼬마를 데리고 누웠다. 자장자장, 흥얼거리며 작은 등을 두드리는 사이 많고 많은 생각들이 나를 스쳤다.
언제 어떤 곳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쓰겠노라고 말해왔다. 그 답은 어떻게 굳건할 수 있을까. 이제껏 원고를 쓰고 책을 팔아 번 돈을 소중히 간직해 두었다가 다음 작업을 위한 비용으로 쓰곤 했다. 아주 소박한 종류의 자급자족, 그건 조그맣게 돌아가는 물레방아 같았다. 그런 자기만족의 고장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런 고민은 나를 조금 더 견인할 수 있을까. 고양시킬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은 잠이 그렇듯 나는 뻣뻣한 몸으로 기상하곤 했다. 부스의 좁은 간격 사이 웅크리고 있던 몸은 금토일 각도가 다르게 굽어갔다. 일요일 저녁 8시, 홀의 중앙에선 박수갈채와 함께 행사의 피날레가 있었지만 나는 커튼을 철거하느라 바빴다. 엉치뼈에 미미한 통증이 느껴지고 한쪽 다리에서 불쾌한 감각이 흐를지언정 이 모두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무사히 사다리에서 내려와 흐린 정신으로 짐을 정리하고, 페어에서 잡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몇 군데 서점에 입고를 마치고 나니 목요일이 되었다. 깊숙하게 매몰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선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이 필요했다. 랩핑과 택배 작업 말고, 책과 관련된 정보 찾기 말고, 입고 문의 메일 쓰기 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칼을 들어 잘 씻은 무를 썰었다.
생강 한 톨을 다지기 시작했고, 쪽파를 손가락만큼의 길이로 가지런히 모아 썰었다. 마늘은 편으로 썰고 고추는 꼭지만 떼어 다듬었다. 소금과 설탕의 양을 계량하고 매실청은 손 가는 대로 휘휘 부었다. 난생처음 만들어 보는 동치미였다. 늦가을을 맞이한 무가 그 역량을 다 해줄 것을 믿으며 얼기설기 엉성한 레시피를 따랐다. 칼질을 하다 적막한 실내를 채우고자 엔리오 모리꼬네를 틀었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발효된다는 된장들처럼 너희들도 모리꼬네 선생님과 함께 소금물 아래서 편안한 시간 보내렴. 마지막 국물을 붓고 락앤락 뚜껑을 닫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이다.
처음 뵙는 독자분들께 적당한 너스레와 함께 책 소개도 하고 함께 사진이나 여행 이야기도 나누며 내가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그래, 북페어에선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지. 하며. 시간이 흐를 수록 공간은 더욱 붐비기 시작했다. 희박한 산소, 마스크 속 짧은 호흡 속에서도 원서동, 구기동, 삼청동의 독자들의 방문 장면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사이 우리는 이직도 하고 유학도 다녀오고 애도 낳고 그랬네! 하며 손 붙들고 반가워했다. 잘 지내고 있었지요! 하 수상한 시절 속에서 건강히 잘 지낸다는 안부만큼 귀한 것이 또 있을까. 헌팅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다가올 만남을 기약한다. 수줍게 전해준 선물들 속에 귀한 술들이 반짝이는 통에 우리의 출간 파티를 아니 떠올릴 수 없었다. 좋았지. 참 좋았더랬지. 마스크 없이 처음 만난 얼굴끼리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연신 제비를 뽑아제끼던 날들. 어째 나는 자꾸만 시절을 회상하는 어르신 같아진다. 옛날 책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고맙고, 신간을 반겨주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뭐라고, 내 이야기가 뭐라고. 아직도 안 죽고 계속 글 쓰고 있네? 어쨌든 저는 할 말이 있다고요. 아직 남았다고요.
나는 나를 종종 타석에 선 타자나, 파도 위 항해사처럼 여기곤 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심기일전의 자세로 배트를 휘두르거나, 바람과 해와 싸우며 뱃머리를 돌리곤 했다. 그건 어떤 큰 어려움들을 헤쳐나가는 표상 같아서 뭔가 그럴싸해 보였다. 실제 경기에 임한 적도, 키를 잡아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잡아본 것은 고작 볼펜, 아니면 식칼 같은 것뿐.
어떤 명인과 장인들은 아주 오래전 담가놓은 장과 발효음식들로 요리를 한다던데. 그건 깊은 항아리에 담겨 더 깊은 굴 속에서 오래도록 썩지 않고 익어간다는데. 설핏 물러지지 않고 퀴퀴하게 변하지 않고, 은근하고 매력적으로 감칠맛을 뿜어낸다는데. 내가 8년 전 꺼내어 담근 것들도 어딘가의 책장 속에서 그렇게 남아있을까. 신간을 입고하려 꼬마의 손을 잡고 스페인책방을 찾았다. 그곳의 업라이트 피아노 위에서 8년 전의 쿠바 책을 보았다. 노란색의 책등은 이미 하얗게 변한 지 오래. 나는 얼마간 뭉클해져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는 꼬마의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다. 나머진 시간이 할 일, 적당한 소금과 설탕, 생강과 쪽파와 고추, 사과와 양파가 어우러져 무에 맛을 더하길 기다려야 한다.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그리고 잦아든 거품 아래의 국물이 시원해지기를 인내해야 한다. 나중에 열어보면 시퍼런 무대신 동치미 비스무리한 뭐라도 되어있겠지 하는 작디작은 희망을 가지고 고대해야 한다. 정말이지 그럼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어있겠지, 하여 이런 글을 남겨둔다.
<Barcelona 27 dias> 입고 서점 목록
*스토리지북앤필름 로터리점 (서울 용산구)
*스토리지북앤필름 해방촌점 (서울 용산구)
*스페인책방 (서울 중구)
*다시서점 (서울 강서구)
*주책공사 (부산 중구)
*책빵소 (강원 원주)
*조용한흥분색 (전북 군산)
*스타더스트 (서울 종로구)
*구월서가 (경기 구리)
*낫저스트북스 (서울 성동구)
*부비프 (서울 성북구)
*책방연희 (서울 마포구)
*살림책방 (전북 전주)
*책방이올시다 (서울 마포구)
*라바북스 (제주 서귀포)
*무엇보다책방 (서울 송파구)
*에이커북스토어 (전북 전주)
*책봄 (경북 구미)
*누군가의책방 (경북 경주)
추가되는대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