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s own Seoul

Votes for Women

by 한량

<먼 북소리>의 하루키는 말한다. 그리스에선 선거날 술을 팔지 못한다고. 안 그래도 옥신각신 과열된 분위기에 술이 기름을 부을까 우려해서라고 한다. 과연 그리스는 아테네며 아고라며 도편 정치며 하는 유서 깊은 이름값을 하는 것일까. 하루키가 본 거리의 자동차들은 각각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마크를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붐비는 사거리에 서면 대략 어느 편이 우세한지 분위기가 보이는 셈이다. 그가 실제 목도한 선거 결과도 그와 비슷했다고 한다.


술 한 잔 없이, 마신 차 한 잔 없이 나는 어제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이루었다. 처음엔 개표방송을 틀었다가 이리저리 산만한 진행에 눈 둘 곳이 없어 그만 꺼버렸다. 대신 이리저리 인터넷을 누볐다. 몇 분에 한 번 꼴로 네이버에 들어가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개표율과 득표율, 두 후보의 표차를 나타내는 그래픽이 계속 바뀌었다.


내 마음은 두근두근했을까? 두근두근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을까? 조마조마했다. 승세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이 나도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개표율과 득표율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나에겐 간절한 것이 있었다.


지역, 세대, 그리고 젠더.


아마도 이번 선거의 방점은 마지막에 찍힌 듯하다. 새로운 민심을 얻겠다고 나선 후보들이니만큼 기존의 관행을 철폐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는 마땅하다. 이 분야에도 유권자가 존재하고, 저 분야에도 유권자가 존재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대척점에 선 후보들의 공약들도 엇비슷해지기 마련이다. '저 악습을 뿌리 뽑겠습니다!' 혹은 '이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는 소리들은 은근히 겹쳐진다. 그러나 본선 투표를 앞둔 마지막 일주일은 새로운 물꼬를 틔운 듯 보였다. 2030 여성의 표, 2030 남성의 표에 관한 분석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각 후보들도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게 결국 새로운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평상시엔 결코 화합되지 않았을 그룹들이 같은 후보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통합과 분열이 예상 못한 지점들에서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이건 한 발짝 나아간 걸음일까?


어느 해부터였을까. 선거에 임하는 나의 태도는 간명해졌다. 여성을 위해 여성을 뽑는다. 여성 후보가 하나도 없을 때는 투표지 위에 '여성 후보자를 원한다' 고 써 무효표를 만들었다. 이런 발언을 공공연히 한다면 여기저기서 날 선 질문이 날아올 것을 안다. '그럼 ㅇㅇㅇ 같은 여성도 뽑을 거야?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기 'ㅇㅇㅇ'에 실명이 아닌 그 어떤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탄과 세이렌과 창녀와 성녀, 비혼 여성과 기혼여성, 무자녀 여성이나 유자녀 여성,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 어떤 나이나 어떤 직업이 등장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생물학적 여성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지금껏 투표를 거른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꼭꼭 참여할 내 환심을 사려거든 그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여성을 위해 투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여성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줘, 여성에게 발언권을 줘, 여성의 파이를 더욱 키워줘, 여성이 차별받고 위협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줘. 내 손으로 홍보하고 추대한 남성 후보에게 약속을 애원 혹은 강요하는 대신 더 가능성 높은 방법은 여성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를 앞둔 마음은 한없이 간결했다. 14명의 공보물을 받았고, 14명의 얼굴이 걸린 현수막을 보았으나 내가 깊이 살펴볼 것은 오직 2명뿐이었으니까. 2명 후보의 경력과 공약을 읽어본 후 마음을 정하면 되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백 명, 천 명, 만 명, 십만 명, 백만 명이 된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각 당에선 일단 여성 후보들을 공천하려 애를 쓸 것이다. 있는 인재를 다듬어 내보낼 것이고, 앞으로 후보가 될 만한 이를 물색하고 키우려 노력할 것이다. 그 와중엔 엉겁결에 후보가 된 이도 있고, 야심차게 준비한 이도 있고, 몹시 믿음직스러운 이도 있을 것이며, 어쩌다 요행으로 얻어걸린 이도 있을 것이다. 뒷배경이 수상스러운 이도 있고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각각의 사연들이 복잡한 만큼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는 여성후보들을 만나고 싶다. 14명의 공보물에서 12명의 후보를 견주느라 애를 쓰고 싶다. 선인도 악인도 영웅도 악당도 모두 여기 있어야 한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소리치고 기자회견에 단일화에 모든 소란과 논의와 화합과 야합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왕 선출이 아니라 왕을 선출할 거니까.


그래서 나의 한 표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저기의 협박과 강요, 비아냥과 회의론 모두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굳건히 행사한 이 표는 사표가 아닌, 미래를 예견하며 뿌린 씨앗이다. 아, 예전 소설 모임의 일원 한 분이 이번 선거에 출마하였다. 모임 최고의 아웃풋이라며 속닥거렸으나 아쉽게도 남성 후보인지라 표를 주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없다. 다음 생을 기약하는 수밖에. 아무렴 모두가 기약하며 기억해야 한다. 여성이 단두대에 설 수 있다면 연단에도 설 수 있다는 올랭프 드 구주의 말. 그게 1789년이다. 이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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