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와 <놉>
아주 예전부터 그를 좋아해 왔다. 박해일, 이름마저 아름다운 사람.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하는 이름이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넷플릭스에 올라왔기에 다시 보기로 했다. (물론 영화관에서 2번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한산>도 보았다) 그의 얼굴은 아직 고왔으나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라 마음 한 구석이 뻐근해졌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남한산성>의 맥없는 인조를 보았다가 <인어공주>의 청년 김진국을 보기로. 그러고 보니 그렇다. <미드나잇 인 파리>이전에 <인어공주>가 있었다. 파리의 클래식카 대신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면 시작되는 시간 여행.
젊은 우체부를 다시금 보는 데는, 무능한 군주와 비참한 조국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서사를 익히 알고 있으므로,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는 딸의 이야기를 마냥 웃으며 볼 수 없었다. '아주 그냥 다 지긋지긋해.' 딸 나영의 말은 새로울 것도 없이 콕 박혔다. 물질하는 섬 아가씨 연순과 섬을 누비는 우체부 진국. 두 사람이 차차 가까워지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은 참으로 어여뻤다. 우편배달 자전거를 타고 돌담길을 돌아오는 진국과 몰래 그 모습 바라보며 설레는 연순. 그럴 때마다 서정적인 아코디언 연주가 울려 퍼졌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던 나는 화면 속 연순에게 외치고 싶었다. '언니,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처럼, 맥아리 없으나 마음만은 애절하게.
그건 젊은 날의 엄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인 걸까. 엄마는 엄마 삶을 살아, 나는 내 삶을 살 테니. 엄마가 엄마 삶을 살았다면, 나는 내 삶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을 테지만. 많은 수의 K-장녀들 마음에 이런 울분 한 자락쯤은 남아있지 않을까. 푸른 바다, 검은 돌담, 파릇파릇한 풀들. 흰 저고리에 검은 바지를 입은 해녀들이 자맥질하는 모습 사이로 노이즈가 끼고 선명한 먼지가 찍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인물들의 배경으로 '코닥필름' 광고가 또렷하던 시절이니까. 일회용 카메라는 물론 필름도 슈퍼에서 흔히 살 수 있던 때였으니. 문득 고개 돌려 바라보면 작은 창 너머로 돌돌돌 돌아가던 영사기가 떠올랐다. 영사기가 뿜어내는 빛 사이로 부유하는 먼지, 해진 의자의 눅눅한 냄새. 그런 그 시절의 영화관이 생각났다.
젊은 박해일도 안 나오고 중년 박해일도 안 나오는데 느닷없이 <놉>을 본 이유는 나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이끈 것일까. 무서운 장면 나오면 중간에 꺼버려야지, 내 손에 쥔 리모콘만 믿고 자리에 앉았다. 달리는 말에 올라탄 흑인 기수를 담은 짧은 필름. 영화는 여기에서 시작해 여기에서 끝난다. 미 서부의 외딴 마을, 아니 마을도 아니다. 외딴집의 남매가 겪는 기묘한 며칠의 이야기다. 몇 번의 사건들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외계 괴물과 한판 사투를 벌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인데, 나는 홀려들고 말았다. 구름 속에 숨어있다 배가 고파질 때면 나타나 야들야들한 살만 취하는 하늘 위 괴물. 괴물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대로 하늘로 들려올려 잡아먹히게 된다. 절대로 눈을 마주쳐선 안 돼, 역시 금기가 있어야 괴물은 괴물다워지고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봐서는 안 될 괴물을 촬영해, 미디어에 팔아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그렇게 싹이 튼다. 끝없는 미혹에 시달리다 기지를 발휘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 사랑하는 이를 지키게끔 만든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이 머리 위로 도달했음을 알리는 징후가 있다. 괴물이 근접하면 강한 자기장으로 주변의 전자제품이 모두 멈춰버린다. 야심차게 단 씨씨티비도, 성능 좋은 4k 캠코더도 맥을 추지 못한다. 생생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선 수동으로 촬영하는 필름이 필요하다. 그리하야 공포에 떨면서도 쉼 없이 레버를 돌리며 아무도 믿지 않을 장면을 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떨리는 것은 팔 뿐만이 아니다. 두려움과 흥분, 일확천금이 코앞이라는 전율까지 생생하다. 무언가를 담고 남기고 간직하려는 원초적인 욕망에 관해 돌아보게 만든다. 괴물은 마치 플래시를 터뜨리듯 팡팡 입을 벌리고, 하늘 높이 나는 풍선은 <Up>의 그것과는 다른 절정을 선사한다. 강렬한 색감, 중반 이후 빠르게 전개되는 흐름, 적절한 음악 모두가 몰아치며 긴 여운을 남겼다. '태양광이 마법을 부릴 시간' 이란 명대사 앞에서 역시 필름이 최고시다, 라는 이상한 감상과 함께.
그래서일까, 똑딱이 두 대에 담긴 필름을 꺼냈다. 꼬마 손에 들어갈 때마다 한껏 열어젖혀진 터라 결과물은 절대 장담할 수 없는 필름 두 롤을 일단 잘 챙겼다. 그리고 귀하고 소중한 새 필름을 새로 감았다. 필름을 끼우고 돌리고 뚜껑을 덮어 첫 번째 셔터를 누르는 그 감각. 뷰파인더로 보이는 상이 제대로 담길지 알 수 없지만 기대를 담아 누르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다분히 감상에 젖어 다음으로 볼 영화를 고르다 그래, 이번엔 주성치지. 하며 <서유기>를 시작했으나 장벽이 높아 자꾸 멈추게 된다. 취향도 삶도 이렇게나 이상하게 굴러간다. 2월도 절반 이상이 흘렀다. 공기는 매캐하고 시야도 흐릿하나 시간을 쪼개어 보는 영화는 귀하고 아름답다. 해일박의 싱그러운 미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