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와 <아주 환한 날들>
그걸 어디에서 봤더라. 하다 떠올랐다. 핸드폰 카메라 렌즈에 작은 반점이 생겨 수리를 맡기러 간 참이었다. 렌즈 교체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매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꽤 큰 책장에 여러 종류의 잡지들이 꽂혀있었고, 놀랍게도 모두 최신호였다. 팔랑팔랑 장을 넘겨보다 박세회 작가님의 짧은 코멘트를 읽었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곳의 모든 잡지를 다 섭렵했을 무렵, 수리를 마쳤다는 부름이 있었고 함께 카메라 성능을 테스트한 결과 이전과 다른 자리에 같은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다시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젠 더 읽을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래 앉아있어 허리도 뻐근했다. 얼마쯤 걸리나요? 내 목소리는 조금 뾰족해졌다. 두 시간 정도 후에 방문해 주세요. 수리를 마쳐도 마쳤다고 받을 연락처가 없으니 꼬박 두 시간 후에 다시 와야 할 판이었다. 퉁명스럽게 매장을 나서고도 기억에 남는 것은 <올리브 키터리지>였다.
그래서 HBO에서 제작한 미니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이미 대출 중이라 예약을 해야 했다. 받아든 책은 낡고 묵직했다.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그다음에 나온 <다시 올리브>도 빌려 읽었다. 역시 낡고 묵직한 책이었다.
드라마를 먼저 봤기에 책을 읽는 동안 풍경들이 자꾸 떠올랐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를 마주한 작은 집. 진입로의 튤립 화분, 작은 도시의 병원과 약국,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인물들. 드라마보다 책이 좋았던 건, 여러 인물들이 나고 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서였다. 괴팍하고 무뚝뚝한 그리고 솔직한 올리브가 성큼성큼 이야기 속에 끼어들었다. 올리브는 지혜와 현명으로 무장한 노인도 아니고, 사랑과 훈기로 가득한 할머니도 아니어서 나는 때때로 올리브!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싫어할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꼬장꼬장함과 더불어 거짓 없이 일렁이는 인간다움 때문에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이를 테면, 마음에 영 들지 않는 며느리의 귀걸이를 하나 숨기는 것, 이어 스웨터와 신발 한 짝도 가방에 숨겨 나오는 것. 그날은 날씨도 화창한 아들의 결혼식날임에도 올리브는 그렇게 했다.
<다시 올리브>를 읽으며 나는 노인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아직 내게 너무 피상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음식을 질질 흘리게 되고, 몸을 마음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눈물과 응석이 많아지고 무서움과 겁도 많아지는 때. 그건 꼬마의 아기 시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곁에서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온전히 쏟아가며 돌봐주는 이가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때. 아기 돌봄과 노인 돌봄의 차이는 무엇일까. 언젠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차이겠지. 눈치껏 원하는 바를 알아주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침을 닦아주고, 먹는 것부터 시작해 목욕이나 대소변 처리까지 힘들여 하지만 언젠가 혼자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 키도 크고 생각도 자라서 서서히 독립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반면 노인은 그렇지 않으니까. 좋아질 날보다 나빠질 날이 더 많으니까. 애써 공들인 보람도 없이.
<2022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마지막 편, 백수린 작가의 <아주 환한 날들>을 읽으며 다시 올리브를 떠올렸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삶. 올리브가 아들을 생각한 것처럼 옥미 할머니도 딸을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의 딸, 훌쩍 커버린 딸. 그리고 이제는 내 마음 같지 않아 자주 서운함을 주는 딸. 사위가 잠깐 맡겨놓고 간 앵무새가 할머니의 잔잔한 일상을 흐트러놓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별 말도 없이 사위만 보내 앵무새를 맡긴 딸에게는 서운하다. 그 서운함이 무엇인지 할머니 나이가 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할머니에겐 응석이 필요하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털어놓고 때론 떼를 부려 늘 자신의 쓸모를 자각하게 만들어줄 이가 그립다. 먹고 사느라 힘겨워 그땐 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고.
그럼 늙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나. 가까운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말만 하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 이다음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나는 정말 많이 슬플 것 같아. 아주 많이 울 것 같아. 미안한 일들만 떠오를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 때 슬픔을 예견하고 미리 상심하는 대신 전화 한 번이라도 더 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름의 삶을 꾸려보겠다고 꿈틀거리지만 진리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고, 그건 사랑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부모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아이가 나를 원하고 반길 때 더 많이 사랑을 나눠줘야 한다고. 언젠가 분명 모두 이별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거다. 올리브처럼, 옥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