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마을에 살던 시절, 매일같이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내부순환로의 구불구불한 곡선을 달리다 앞을 바라보면 북한산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건 매일 봐도 볼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게 했다. 가파른 산세 사이로 선명한 바위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버티고 선 봉우리들. 날이 다르게 무성해지던 숲을 지나 쏟아질 것 같던 단풍이 지면 수묵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날리는 눈발, 백에서 흑까지 농담을 달리하던 산. 꾸물꾸물 기어가던 퇴근길임에도 넋 놓고 감탄할 만했다.
이제는 강이다. 이른 출근길과 늦은 퇴근길 모두 강을 끼고 달린다. 운전석 뒤로 비껴드는 아침해 덕에 시야는 붉게 물든다. 강 건너 63빌딩은 홍보영상 속 장면처럼 준엄하게 섰다. 함께 달리는 전철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전철. 몇몇의 다리 아래를 빠르게 달릴 때면 가끔 숨을 멈춘다. 머리 위로 지나는 굉음, 그럴 때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속으로 되뇌인다. 오늘도 무사히. 無事. 별일 없기를.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
무사를 빌기 위해 이른 아침은 분초 단위로 복잡해졌다. 첫 번째 알람이 울리면 누운 채 눈만 껌벅거린다. 오 분 후에도 알람이 울릴 테지만 두 번째 알람까지 간 적은 없다. 몸을 일으켜 연이은 알람들을 끄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얼굴에 바르는 종류는 세 가지를 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기온 덕에 옷도 세 겹쯤 겹쳐 입고서 시계를 본다. 여섯 시 오십 분에서 오십 오분 사이. 꼬마는 곤히 잠들어 있다. 숨소리도 고른 것이 단잠을 자는 중이다. 그 상태로 어제 저녁 미리 꺼내둔 옷을 갈아입힌다. 내복 상의를 벗기고 티셔츠를 입힐 때면 꼬마도 아침이 온 것을 눈치채고 몸을 뒤척인다. 번쩍 안아들면 품을 파고든다. 거실로 나오면 썰렁한 기운에 더더욱 파고드는 작은 몸. 자세를 고쳐 안아주면서도 시계를 본다. 오 분 더 안아줄 수 있겠다. 아기 때 재울 때 그런 것처럼 어정어정 거실을 서성인다. 그러다 싱크대의 얕은 턱에 앉혀 왼팔로 등을 감싼다. 한 손으로 재주껏 치약을 묻힌 다음 양치질을 해준다. 꼬마는 눈 감은 채로도 순순히 양치질에 응한다. 여전히 싱크대에 앉은 채로 입을 헹구게 하고 세수도 시킨다. 이 대목에선 늘 마음이 찌르르하다. 아직 얼굴 가득 묻어있는 잠을 씻어내는 기분이라 그렇다. 그럼에도 꼬마는 버둥거리지 않는다.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도 발라준다. 이제 외투를 입고 신발만 신으면 준비가 다 된다. 대략 십 오분 안에 완성되는 일들이다.
그런 아침에는 오디오 북의 명작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경처럼 틀어놓으려 해도 뇌의 어느 부분이 주인공의 심경을 자꾸 따라가려는 통에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 어지러워진다. 이럴 땐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해석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그저 곡조가 아름다우면 다인 무엇이 필요하다. 그렇게 고른 것은 이탈리아 음악들이다. 만돌린이 쟁쟁쟁쟁 울고 흥겨운 목소리는 오늘을 살라고 말한다. 알아듣지는 못하나 대략 그런 느낌이 드는, 적어도 지금 가드레일을 들이박으라는 느낌의 곡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의 강변북로에서 한참은 동떨어진 이탈리아를 생각한다. 비루한 육신은 핸들을 잡고 있으매, 정신은 더듬더듬 그곳을 찾아간다. 언젠간 그런 날이 오겠지. 메타버스 이전에 매트릭스가 있었으니.
늦은 밤엔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소파에 겨우 눕히고 18년 만의 복수극을 시청했다. 이대로 멈출 수 없는 것은 주인공 뿐 아니었다. 이대로 잠들 수는 없어, 혼곤함 속에서 뭐라도 붙들기를 원했다. 반쯤 눈 감고 보다가도 정신이 번쩍 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강현남' 역을 맡은 염혜란 씨를 보면서는 연기 좀 살살하세요,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시시하게 드라마 보면서 훌쩍이지 않아, 그런 결심을 쉽게 무너뜨린 것은 11화의 읊조림이었다. '당신이 아무리 날 망가뜨려도 난 이제 당신 무섭지 않아. 나 빨간 립스틱 바를 거야. 가죽 잠바도 입을 거야. 그리고 아주 먼 나라의 도로를 끝도 없이 달릴 거야.' 어떻게 여기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먼 나라의 도로를 끝도 없이 달릴 거야. 아주 먼 나라의 도로를 끝도 없이.
출근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날, 한가함 속 두려움이 일렁이던 때. 잠시 한국을 방문했던 민아 언니를 만났다. 옛날 우리들의 동네, 바로 그 산속 마을의 작은 까페에서였다. 언니는 북한산 그늘 아래에서 자라 남산에 기대어 살았고 다시 북한산 아래 집을 지었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산공기 불어오는 그런 동네에 산다. 그 산기슭에서 났다는 허브티를 건네는 언니다. 말 안 해도 유기농일 것이 분명하고, 향만 맡아도 숙면에 최고일 것만 같은 그런 선물이다. 우리의 근황은 짧고 어수선하게 흩어진다. 허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좋다. 자몽티를 마시던 점심. 이제 또 언제 만나지? 다음엔 거기서 보자, 돌로마이트. 언니가 말한 돌로마이트는 아마도 북 이탈리아의 돌로미티일 것이다. 알프스 산맥에 걸친 산속 도시. 언니, 저도 거기 꼭 가 보고 싶었어요. 늘 그렇듯 손쉽게 화합하는 우리다. 이건 인사치레가 아니다. 그간의 많고 많은 작별 인사 때 건넨 말들은 실제 다 이뤄지곤 했으니, 언젠가 우리는 그곳에서 만날 것이다. 들로 산으로 꼬마를 풀어놓고 나는 구슬 같은 맛의 와인을 마시는 상상을 한다. 아주 먼 나라의 도로를 끝도 없이 달려 그곳에 이르리라. 그것이 오늘도 부디 무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