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s own Seoul

볼륨의 문제

생활인으로서의 창작

by 한량

그저 팔다리 휘두르며 버둥거리던 게 고작이었던 시절, 아기띠로 품에 안고 자주 집을 나섰다. 한여름에도 꼭꼭 양말과 손싸개를 씌우던 때니 백일 남짓 무렵이었다. 나는 나대로 잊지 않고 현관 앞에서 꼭꼭 마스크를 썼다. 이천이십이 년 여름. 언제까지 이런 세상이 계속 되겠어? 금방 모든 게 끝나겠지. 생각하던 때였다. 줄줄 흐르는 땀에 마스크 안은 금세 젖었다. 어디 씌울 만한 구석도 없는 아기는 품 안에 숨기고서 동네를 맴돌았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적당히 걷는 리듬에 그리고 땀에 젖은 내 살냄새에 아기는 잘도 잤다. 삼청공원, 광화문 교보, 종각의 영풍. 숲이든 서가든 어딜 좀 거닐어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을 나섰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해가 뜨거우면 양산을 쓰고.


외딴섬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옆에는 뿌애앵 소리 내며 울고 웃는 아기가 있다. 모든 게 서툴고 낯설어 진땀이 났다. 도움을 청할 이는 보이지 않고, 마음을 나눌 이는 멀리 있었다. 궁금한 것은 인터넷에 의지할 수 있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엔 어려웠다. 사방에서 앓고 죽어나가던 때, 낯선 이들을 경계해야 하던 때. 젖먹이를 품고서는 더더욱 그래야 했다. 친구들이 찾아와 준 밤은 그래서 또렷하다. 종로구청 뒤 맥주집에서 열심히 맥주를 마시고, 파리바게뜨에서 빙수를 먹었다. 캐나다까지 영상 통화를 걸어댔으니 조금은 취한 게 분명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거울을 들여다보면 푸석하니 붓기가 가시지 않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얼굴이 서 있었다.


두 시간마다 젖을 먹던 아기는 이제 네 시간마다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아기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 외에 매달릴 것이 필요했다. 잠들었다고 눕히다가 깨울까 봐 등에 업은 채로 원고를 뒤적거렸다. 깨지 않는다면야 얼마든지 업어줄 수 있었다. 그래, 네가 깨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그런 마음으로 절박하게 매달렸다. 뒤를 돌아보니 세 권의 책, 두 권의 엽서북, 한 권의 포스터북이 남아있었다. 지금껏 뭔가를 쓰고 만들면서의 시간을 훑어보아도 이렇게 매진한 때는 없었다. 매달려도 너무 매달린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이제야 스친다.


가치, 생산성, 정체성, 그리고 증명. 아기가 꼬마로 자라기까지 몇 년의 시간은 이렇게 수렴한다. 창작의 기쁨이나 영감의 분출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나를 입증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고, 그건 이상하게 절절하고 절실했다. 그건 코로나 시대의 육아, 단절과 고립의 일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곁에 살 부비는 아기가 있음에도 차고 넘치게 외로웠다. 업고 안고 쓸고 닦고 장을 보고 저녁을 짓는 무수한 날들 속에서 나는 가만히 흐트러졌다. 몸은 이곳에 있으나 넋은 저곳을 맴돈다. 과거의 기억을 길어오고 아직 닿지 않는 곳을 헤맨다. 왼발이 디딘 자리와 오른발이 디딘 자리가 끝없이 멀어지는 느낌. 분열이 멈추는 곳은 노트북 앞, 그러니 그 자리에 앉아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

추측과 가정을 누덕누덕 기워본다.


영감은 하늘에서 뿌려지지 않는다. 그런 낭만적인 환상을 품고 신촌의 민속주점에서 소설가 선생님에게 마치 축성을 받듯 머리를 쓸어달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분은 흔쾌히 웃으며 내 정수리를 쓸어주셨지만 영감은 그렇게 도달하지 않았다. 그보다 지주식 김 양식에 가깝다. 기둥을 세우고 얼기설기 성긴 그물을 널어놓는다. 달이 부풀었다 잦아들고 바다가 밀려들었다 나는 사이 뭔가가 들러붙기 시작한다. 아기가 게워낸 것으로 얼룩진 내복과 반복되는 잠투정, 끈적거리는 장난감들 그리고 오늘 서점에서 만난 보석 같은 책의 몇 구절, 영화의 몇 토막들이 어우러져 덩어리지기 시작한다. 몇몇은 물결에 떠밀려 사라지고, 또 몇몇은 해에 바싹 마르고 만다. 그러다 몇은 저들끼리 뭉쳐 뭔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만들었던 몇 권의 기록들을 가지런히 세워놓으며 열 오른 얼굴로 말하곤 했던 다짐들을 생각한다. 전 이걸 계속 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요. 술을 홀짝이던 이들에게, 나직하게 박수를 치던 이들에게 했던 고백은 사실 나를 향한 것이었다. 이걸로 생계를 이을 수 있다면야 참으로 좋겠다마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혼자 쓰고 혼자 지우고 혼자 만드는 것은 그래서 속 편한 것도 있는 법이라고. 이렇게 계속하면 나중에 뭐라도 되지 않겠어요? 적어도 어깨는 굽고 눈이라도 나빠지겠죠. 그렇게 몸에라도 새기는 법이겠지요.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쓴 사람이라고요.

추가 입고를 부탁하는 메일에 설레고 다가올 페어를 준비하며 신간을 만드는 손놀림은 가쁘고 기쁘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도 엄마로서의 나도 아닌 창작자로서의 나. 여전히 꼬마를 어르고 집안일을 하다 또 꾸역꾸역 돈을 벌고 있지만 채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노트북 앞에 앉은 이 시간은 소중하다. 꼬마가 목욕하러 들어간 사이 갈아입을 새 내복과 로션을 꺼내두었다. 짬이 난다면 청소기도 돌릴 수 있겠지. 지금은 청소기를 집어드는 대신 잠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쓰다만 쪽글을 마무리한다. 행복하다. 이 감정은 백 퍼센트 진심이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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