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과 <음식중독> 다음엔 <정원가의 열두 달>
시작은 난잡한 독서였다. 사무실에서나 집에서나 짬이 날 때면 곁에 펴 놓은 책을 뒤적거렸다. 소설을 읽다가 르포를 넘기다 에세이를 음미하는 날들이었다. 특히나 자기 전엔 민음사 고전을 읽다 잠들곤 했다. 요즘 자기 전 읽는 책은 <양철북>으로 읽는 내내 권터 그라스, 대단히 미친놈이군. 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치긴 미치되 대단히 우아하게 미치면 이렇듯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군. 애초에 주인공을 정신 병원에 밀어 넣고 시침 뚝 떼며 시작한 이유가 있어. 예전에 읽을 땐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이젠 재미를 알겠어. 그래서 고전인 걸까? 하며 책 접고 얌전히 이불 덮고 잠을 청하고 있다.
하여튼 글에는 어떤 힘이 담겨있다. 사람을 매혹시키고 밤을 지새우게 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추동하는 그런 힘. <양철북>을 읽은 나는 그렇게 변화하였는가. 음악적인 소질도 유리 깨기의 기예도 없는 나는 양철북을 두드리는 대신 조심스럽고 완곡한 선택을 한다. (게다가 그리 색정적인 유형도 아니므로 없는 북채를 휘두르지도 않는다) <음식중독>을 읽고 되려 입맛 다시며 맥도날드에 가 감자튀김을 먹고, 그도 여의치 않는 날엔 무수히 많은 맛 사이에 고심하다 오리지널 프링글스를 사 와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식품공학의 첨단을 즐긴다. 그리고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고선 덥석 나무를 주문한다.
그것도 레몬 나무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 키워본 적도 없는 나무를 고르게 된 것은 아마도 루시드폴 때문이 아닐까. 보사노바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고 포르투갈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러다 이제 레몬 나무까지 사들이게 된 것이다. 홀린 듯 주문을 마치고서야 더듬더듬 검색창에 '레몬 나무 키우기'를 쳐 본다. 해를 많이 필요로 하고, 물도 잘 줘야 하나 너무 많이 주면 병에 걸릴 수 있다. 과실수는 벌레가 많이 생기기 마련이며, 비료는 또 어떻게 어떻게 줘야 한다는 말들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먹고 난 레몬 씨앗을 발아시켜 심는 이들도 많았으나 우여곡절 끝에 잘 성장한다 하여도 열매를 보려면 3여 년은 걸린다는 말도 나를 주춤하게 했다.
아무래도 지중해 기후를 구현해야 할 것 같았다. 해는 강렬하고 건조한 흙은 바람에 날린다. 해풍을 머금고 자라는 레몬과 올리브들. 여기 우조와 토마토, 페타치즈를 주시오. 독주를 들이켜는 양치기가 떠올랐다. 사실 양치기고 나발이고 장마가 머지않았으므로 햇살이 시급해 보였다. 동북아의 공동주택 베란다에서 햇살을 어떻게 구현한담. 하지만 햇살도 돈 주고 살 수 있는 시대다. 나는 다시금 식물등을 검색한 후, 도저히 집에 들이기 어려운 디자인들을 제외한 다음 그래도 전등다워 보이는 것을 주문한다. 소켓과 전선은 별도라 눈물을 머금고 그것도 산다. 잠깐만에 이렇게 후두둑 돈을 쓰고야 만다. 뭐 때문에? <정원가의 열두 달> 때문에.
카렐 차페크는 단언한다. 인간이 정원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부모의 마음'을 갖춘 때로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어야 한다.
나도 작지만 꽤나 기세등등한 정원을 가진 적이 있다. 길고양이들이 볕을 쬐다 널어둔 이불 빨래의 그늘 아래로 숨어들어 낮잠을 자고, 우리는 흐뭇하게 그걸 보며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곤 했다. 종로 6가의 꽃시장에서 묘목과 모종을 사 와 소꿉장난 같은 가드닝을 했다. 이른 봄에는 튤립을, 초여름엔 양귀비를 심었다. 그리고 한여름이 되면 풀과의 사투를 벌였다. 전지가위를 들고 쪼그려 앉아 풀을 자르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청개구리가 뛰어 달아나고 모기는 드러난 허리춤과 종아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나중엔 가위는 내버리고 그냥 손으로 잡초들을 쥐어뜯었다. 분명 작디작은 정원인데, 여기 풀을 뽑고 돌아서면 다른 쪽 풀이 성큼 자라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허리를 펴면 담장 위 고양이가 낮게 울었다. 모기 물린 곳은 벌써 벌겋게 붓기 시작했다.
봄의 정원, 여름의 정원, 가을의 정원 모두 제각각 아름다움이 있었으나 역시 겨울의 정원이 제일 평안했다. 잔디도 잡초도 벌레도 모두 잠든 겨울. 함박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고양이 발자국만 또렷하던 그 정원. 짙은 갈색의 배경 위로 내린 설경은 슈가파우더 잔뜩 뿌린 초코케익 같았다. 초코케익, 음. 좋지, 좋고 말지.
아무쪼록 좋은 날들이었지, 하며 자기만의 정원에서 보낸 시간들을 생각한다. 나는 잠시 흐뭇한 얼굴을 하고 정원가로서의 자아를 불러본다.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가? 화분이야 집에 많고 창고 구석엔 분갈이용 흙도 푸대로 있다. 앙증맞은 모종삽과 마사토도 크기 별로 준비되어 있다. 날벌레를 잡는 약과 식물영양제도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베란다 분갈이를 위한 회심의 아이템, 김치 버무리는 용도의 큰 매트도 고이 접힌 채로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제 튼튼한 레몬 나무와 돈으로 사들인 햇살만 오면 된다. 이쯤 되면 나도 제법 그럴싸한 정원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