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언덕에서 나는 울었네

집이라는 한 글자 (14)

by 한량

A 부동산은 계속해서 손님들을 데리고 온다. 아니, 몰고 온다라는 말이 맞다. 손님들의 스타일은 다양하다. 노부부, 젊은 청년, 예비 신혼부부, 가끔은 반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지인도 데려온다. 거의 저인망 어업방식에 가까운 만큼 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그냥 보여주는 집이 되어버린 것일까? 다른 단지, 다른 평수를 찾는 손님에게 이런 집도 있으니 한번 보고 가라는 그런 집. 물론 나는 그들의 의중을 구별할 수 없다. 알 수가 없으니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약속이 잡힐 때마다 집을 쓸고 닦고 커피를 내린다. 그때마다 달과 꼬마는 집 밖을 배회한다. 집을 다 둘러본 손님이 신발을 꿰어신으며 '어쩜, 애기 있는 집이 이렇게 깔끔한가요? 애기는 어디 있나요?'라고 인사치레하자 A 실장이 '애기는 피난갔어요.'하고 대답하며 허허 웃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조그만 앙심도 품어보았다. 하지만 앙심은 금세 녹아버린다. 피난이고 나발이고 어쨌든 집을 팔아야 하니까. B 부동산에선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는다. C 부동산의 사모님은 확실히 마음을 접은 모양이었다. 은근히 애가 탔지만 다시 한번 답은 정해져 있다. 기다리는 수밖에. 그 애매한 시기에 집만 쓸고 닦는 대신 또 다른 할 일이 있었다. 매수 물건을 찾는 일이었다. 물론 매도에 성공해야 하겠지만.


그건 처음부터 정해진 계획이었다. 매도 후 현금을 쥐고 있는 기간은 되도록 짧게 가져간다. 거의 동시에 이뤄지도록 진행하자. 거시경제 속 긴 시계열의 향방은 모르겠고, 안다 해도 모든 타이밍을 최적화한다는 건 오만에 가까운 일이라 여겼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판다느니 같은 말은 가뿐히 무시하기로 한다. 오직 필요에 의해 사고, 필요에 의해 판다. 나 같은 소시민에겐 이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미리 사전 조사를 통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했다. 말 그대로 마음에 드는 집을 딱 찍어두어야 했다. 언제든 집이 팔리면 바로 살 집의 가계약을 걸 수 있도록.


여러 동네가 거론되었다. 이번에도 정보에 밝은 달이 목록들을 추려왔다. 여긴 어때? 물을 때 바로 거긴 싫어, 라고 말한 곳도 있고 조금 더 이야기해 봐, 라고 청한 곳도 있었다. 몇 군데 설명을 듣곤 인터넷으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네를 직접 둘러보는 일이다. 여름휴가. 꼬마는 어린이집에 가고 우리는 의기투합해 낯선 동네를 둘러본다. 부동산을 찾아 비타500을 얻어 마시고, 동네의 장점에 대해 귀 기울여 듣는다. 한번 가서는 다 알 수 없으니 여러 번 찾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마음이 여러 번 들쭉날쭉한다. 이 말을 들으면 이런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런 것 같다. 이번에 집을 사게 되면 오래 눌러앉으리란 예감은 둘 다 하고 있다.


집, 동네, 그리고 우리. 이제 둘이 아니라 셋이니 고려해야 할 변수는 더욱 많아졌다. 각자의 직장, 꼬마의 학교, 거기에서 파생될 인간관계과 삶의 편의성 여부. 거기에 마음 붙일 수 있는 그런 동네를 찾아야 했다. 생애주기로 봤을 때, 보통 이 시기 가중치를 높게 두는 항목은 '학군' 같았다. 취학연령이 되면 아무래도 쭉 눌러앉아 사는 게 좋을 테니까. 풀타임 맞벌이에 조부모의 도움도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학원 인프라가 절실한 순간이 올 터였다. 정규수업 후 돌봄교실, 마치고 학원, 어쩌면 또다시 학원 순으로 돌 것은 (안쓰러움을 차치하고) 예상 가능한 미래였다. 그러니 비슷한 아이들이 많은 동네, 정보가 풍부해 취사선택이 용이한 동네가 나을 터였다. 그러니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할 시점임이 분명한데


한여름 땡볕, 마을버스도 기를 쓰고 오르는 방배동 언덕배기. 의자도 걸터앉을 턱도 없어 그저 낡은 보도블럭을 깔고 앉아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겨우 드리운 나무그늘 속 매미도 속절없이 운다. 맴-맴-. 나는 말한다. '무슨 결정을 내리게 되든 최종 선택지를 나에게 줘놓고 몰아가지 마. 선택지를 줬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탓하지 마. 나중에 후회가 든다면 너 자신을 탓해.' 달은 말이 없다.


집을 구하는 길고 긴 여정 속 감정의 파고는 그렇게 솟아오른다. 비단 지금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껏 넘어온 파도들이 달려와 부서진다. 집을 구하고 얻고 사고파는 과정에서 부딪치던 기억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며 팽팽하게 대치하던 순간들. 후회하고 곱씹으며 서로를 원망하던 기억들. 유난한 상대가 좋아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우리였으니 매번 대차게 갈등을 겪기도 다반사. 함께 산다는 건 그 모두를 포함하는 거란 걸 몰랐던 때부터 잘 알게 된 지금까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맹렬한 기세로 언덕을 오른 마을버스가 발아래 정차한다. 창 너머로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느껴진다. 내 티셔츠 앞섶은 눈물 콧물로 얼룩져있다. 매미도 여전히 목놓아 울고 있다. 맴-맴- 쓰르르르. 맴-맴- 쓰르르르.









이전 13화사모님과의 커피 한 잔, 아니 커피 두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