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 심보로 살아가기

집이라는 한 글자 (15)

by 한량

이제껏 우리가 가 본 부동산 사장님들의 공통된 말씀이 있었다. 가정이 화목한 게 제일이다. 마치 대강 급조한 가훈 같지만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동산을 사고팔며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넓고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불화가 생기면 많은 돈과 좋은 집도 다 소용없다는 이야기였다. 되게 원론적인 이야기였는데 그게 진짜 조언이 되는 시점들이 있었다.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방배역까지 터덜터덜 걸어 내려온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시원한 공간에서 달고 차가운 것을 먹으니 마음도 좀 진정되었다. 귀한 휴가의 반나절이 그렇게 흐른다. 의견이 쪼개지고 서로에게 볼멘소리를 하다 얼기설기 봉합되면서. 그러는 동안 방향은 점차 확실해진다. 우리 셋 모두에게 좋은 곳을 찾자.


소위 말하는 학군지는 꼬마에게 쏠린 경향이 있다. 정작 꼬마는 학군지가 뭔지 공부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비교적 균등한 집단 속에서 학원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점과 그게 실수요 측면에서의 집값 방어에도 도움이 되리란 것은 부동산 초심자의 눈에도 보였다. 그러니 다들 발돋움하고 턱걸이하려 애쓰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집단 안에서 왠지 모르게 '짜칠' 것만 같았다. '짜치다'는 '쪼들리다'의 경상도 방언으로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매우 고단하고 지친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 배우고 익히는 것, 누리고 영유하는 것, 즉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늘상 머리를 싸매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비단 대출금과 카드값을 제하고 난 가용 금액의 이야기뿐 아니다.


학원 뺑뺑이가 가능하다는 건 장점이지만, 보육과 돌봄 너머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대다수의 부모들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이 맹렬한 경쟁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라고 의문을 가져왔던 이들은 모두 더욱 공고해진 입시의 벽 앞에서 사라진 것 같다만,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입장에선 아직 순진한 의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차라리 그 돈을 모아 성인이 되었을 때 자립 자금으로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현금 가치의 하락을 우려한다면 주식이나 금이나 뭐 그런 걸로라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나이브하게 생각하던 부모들 특징이 진짜 자녀교육에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어린 나이부터 각종 사교육으로 '절여'놓지 않더라도 언젠가 내 아이는 '알아서 잘'하게 되겠지, 이런 마음. 이어 짧고 명료하게 요약했다. '그게 바로 도둑놈 심보지.' 나는 웃음을 픽 터뜨렸다. 진짜 맞는 말 같아서였다. 마치 로또 한 장 안 사면서 로또 될 꿈을 꾸는 것이랄까. 학원에서 학원으로, 과외에서 과외로, 무수한 정보를 밑바탕으로 자녀의 학업 성취에 힘쓰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 사교육 비용 대신 자립 자금을 준다는 것도 어설프긴 매한가지였다. 사교육을 시키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그것도 그것대로 하고, 자립 자금도 넉넉히 대줄 수 있을 테니.


더불어 나는 더 먼 출퇴근을 감수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생길 피로와 화. 사방이 아파트로 가득한 동네에서 그 부산물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늘 바틋하고 빠듯하게 쳇바퀴 돌며 살지 않을까. 낯선 동네에서 정 붙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꼬마가 다닐 학교의 분위기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여름부터 터져 나온 그러나 그전부터 차고 넘치게 존재했던 교실 붕괴 사건들을 보며,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해 보였다. 각이 날카롭고 모서리가 명징한 또 다른 의미의 정글, 거기에서 우리와 꼬마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까. 그건 분명 무지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자본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학군지의 생리를 잘 모르는, 얼레벌레 자라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는 부모의 한계.


그렇다면 어디로?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우리가 사랑하는 옛 동네로 향한다. 종로. 서울의 중심. 나는 예전부터 멋쩍은 농담을 던지곤 했다. 중심에 대한 욕망이 이토록 강렬한데, 그 중심이 600여 년 전의 중심이라고. 그래서 번짓수를 좀 잘못 찾은 느낌이라고. 하지만 위도와 경도가 조금 빗나간다 하더라도 내 욕망이 그곳을 가리키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돈이 몰리거나 사람이 몰리는, 그래서 사실 그 말이 그 말인 그런 곳보다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들이 남아있는 그곳에 끌리는 이 마음. 궁과 산이 어우러지고 그 까닭에 건물은 몸을 낮추는 곳. 나와 달, 그리고 꼬마. 우리는 그곳에서 치우침 없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100년은 훌쩍 넘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공원과 광장으로 쏘다니는 삶.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마침 집을 보러 온다는 약속이 잡혔다. 같은 날 두 건, A 부동산과 C 부동산이었다. 30분 간격으로 약속을 잡으며 나는 또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이번엔 목표가 분명한 그래서 더 절실한 그런 약속이었다. 나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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