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로 하겠습니다

집이라는 한 글자 (17)

by 한량

부동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다.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려 할 때나, 어디 한번 집을 내어볼까 고심하며 문 두드릴 때와는 다르다. 오늘은 계약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들어섰다. 매수자와 상대 부동산 사장님은 조금 늦는 모양이다. 살짝 지루해진 꼬마가 몸을 배배 꼬길래 짧은 산책도 다녀온다. 어딜 가나 지각자는 질색이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나의 음성은 나긋나긋하다. 드디어 계약성 작성의 시간. 무릎에 앉혀놓은 꼬마는 눈앞의 도장이 탐나는 모양이다. 사장님이 계약서 항목을 읊고, 둘러앉은 모두 이를 경청하는데 꼬마는 도장을 찍어보고 싶다고 조른다. 그래, 하고 내 도장을 쥐어주니 덥썩 내 손등에 도장을 찍는다. 이름 석자가 또렷하게 새겨진다. 이윽고 도장은 손등과 손바닥을 지나 팔뚝까지 상륙한다.

만으로 3살 조금 넘은 인생에 여섯 군데의 부동산을 다녀본 꼬마다. 특히 주말엔 맡아줄 곳이 없으니 그곳이 어디든 데리고 다녀야 한다. 부동산에서 꼬마는 요구르트를 얻어먹고 철 지난 내부도면도에 낙서를 한다. 정수기를 관찰하고 냉수를 한 잔 떠다 마신다. 블라인드 줄을 탐색하고 화분의 상태를 점검한다. 그러다 '나 쉬하고 싶어.' 라고 말한다. 그 지지배배와 가끔의 생떼 사이에서 우리는 신분증을 건네고 도장을 찍는다. 홍보책자를 받아 들고 손글씨로 메모를 남긴다. 좋은 매물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꼬마는 부동산마다 인주와 에어컨, 정수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사를 잘하고 얌전히 앉아있으면 주전부리를 얻어먹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것도 경제교육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종로 부동산의 사장님은 오늘도 호쾌하다. 꼬마를 보자 안색부터 환해진다. 다시금 둘째 낳아야지, 둘은 키워야지 염불이 시작되는데 달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사장님께서 좋은 매물 구해주시면 생각해 봐야죠. 허허.' 언제까지 저런 롤이 통할 수 있을까? 아들이나 조카뻘의 매수대기자 롤. 열심히 세상물정을 익혀나가는 중인 롤. 아직 어리숙하나 진정성만큼은 일품인 롤. 달은 나이가 있으니 아마 이번까지만 통하지 않을까? 답한다. 정말 진심은 진심인 게, 기다리던 매물 소식이 엎어진 그날에도 달은 사장님에게 푸념하지 않는다. 그쪽의 실수라고 탓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신 사과 한 박스를 사들고 다시 찾아가 부탁한다. 줄 서서 사는 떡이며 과일 같은 걸 사들고 계속 찾아간다. 그러니까 이런 놈이 더 무서운 거다. 웃는 얼굴의 찰거머리.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집념은 대단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집 혹은 땅, 정확히 말하면 대지지분. 우리 땅을 갖자. 지금은 텅 비어있거나 다른 건물로 존재한대도 언젠가는 새로 지을 수 있는 그런 땅. 그게 언제가 되든 기다리자. 시간은 개미가 가진 유일한 무기니까. 그리고 그 땅은 종로여야 했다. 원서동을 떠난 내내 그리워하고 있었다. 궁과 숲을 바라보는 창. 집에 온 이들이 그 앞에서 잠시 말을 멈추던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한대도 궁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였다. 그리고 궁을 에워싼 북악과 인왕, 더 멀리론 북한산도. 뭣도 모르는 사람 눈에도 영험하고 존귀하게 비치던 그 산들. 암벽을 낀 늠름한 산자락을 다시 보고 싶었다. 바다나 강보다 산이 좋았고, 숲이냐 산이냐 하면 궁이 좋았다. 궁세권이 우리의 최종 목표였다. 그러니 학군지가 대수랴.


그리하여 우리는 종로로 마음을 정한다. 그곳엔 1895년 개교한 매동초등학교가 있다. 무려 박완서 선생님의 모교로, 소설에도 숱하게 등장했던-가짜 주소와 진짜 주소를 번갈아 외우며 산을 넘어 등교해야 했던-바로 그 학교다(그래서 별 다섯 개 만점에 오십 개를 주고야 만다). 학교 앞마당엔 종로도서관이, 그 자락엔 종로구구민체육센터도 있다. 달과 내가 각각 수영과 발레로 집념을 불태웠던 그곳. 체육센터는 국궁장을 끼고 있으며 아래론 넉넉히 사직단을 품고 있다. 그리고 경희궁이 있다. 우리는 경희궁 경내를 여러 번 거닐었다. 눈이 소복이 쌓였을 때도, 여름휴가의 정점에서도. 입장료도 받지 않는 궁은 한적하고 고요했다. 신문로의 소음이 여기까지 거슬러 오진 못했다. 숭정전 계단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니 씨네큐브가 보였다.


늦은 밤 함께 영화를 보고 신문로와 세종로, 정동길을 걷던 날들이 떠올랐다. 막차가 끊길 때까지 집에 돌아가기 싫어 결국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 러시아 대사관을 지나며 '아관파천!' 외치고, 구세군회관의 빈 벤치를 차지하고 음악을 나눠 들었다. 미 대사관저를 지키는 경찰은 우리가 몹시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우리 눈엔 뵈는 게 없었다.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이 무려 네 개였다. 그런 눈깔을 하고 다녔으니 불심검문 같은 건 당할 리 없었다. 그런 시절들이 순간들이 이 동네에 녹아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도 풍경은 여전했다.


임장을 궁궐로 다니긴 처음이건만 한껏 들뜬 우리는 꼬마에게 묻는다. '너 매동맨 할래?' '응!' 단박에 대답이 날아온다. 그래, 매동맨 하자. 우리는 종로의 땅을 사기로 마음을 굳힌다. 언젠가는 집이 될, 아직은 집이 아닌 땅을.








이전 16화복과 덕, 그리고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