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자전거 분투기
꼬마는 서울을 떠나기 전 열정적인 분위기의 어린이집을 다녔다. 등원은 물론 하원 때도 선생님들의 표정에서 하루의 고단함과 피로가 묻어나지 않아 늘 신기했다. 퇴근 무렵의 나는 라면에도 못 곁들일 만큼 지치고 무른 파김치 상태였는데. 규모가 작아 다른 반의 아이들과도 살갑게 지내는 그런 분위기라 마지막 하원길엔 동생들도 쪼르르 나와 꼬마를 안아주었다. 꼬마들도 작별의 개념을 아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것저것 받아온 그림과 편지엔 놀랍게도 나중에 결혼하자란 문구도 있었다. 만 세 살, 청혼을 하기도 받기도 하는 나이다.
이곳에 오고 난 후 꼬마의 하루는 길어졌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나와 함께다. 방문 너머로 '엄마!'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출근인 셈이다. 꼬마는 대략 7시에서 7시 반에 기상한다. 잠기운 묻은 얼굴을 바라보며 얼러주다 같이 거실로 나온다. 그럼 그때부터 놀이가 시작된다. 살림살이도 없는 집에 장난감도 몇 없으니 내가 놀잇감이 된다. 역할놀이에 심취해 있는 상태라 매번 다른 배역을 맡기는데, 반응이 허술하거나 어조가 시원치 않으면 가차 없는 디렉팅이 날아온다. 본인은 늘 주인공-주로 본인이 만난 어른들로 각종 직업인들이 주를 이룬다-을 맡고, 나는 그때마다 성실한 응대를 요구받는다. 그래도 여기까진 '사람'역할을 할 수 있다.
어영부영 놀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오전 나절 외출을 한다. 외출을 해야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볼일 때문에 조금 먼 길을 나서기도 하고, 그냥 동네를 배회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전거가 함께다. '타요'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이'라는 구급대원에 잔뜩 매료된 요즘, 자신은 제이, 자전거는 제이의 오토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제이처럼 검은색 헬멧을 쓰기에 더욱 의기양양하다. 제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어려움에 빠진 꼬마버스들을 구해주고, 꼬마버스들에게 주의를 준다. 꼬마가 제이라면 나는 누구? 당연히 제멋대로 하다 위험해진 꼬마버스다. '그렇게 속력을 내면 안 되지!'라거나 '무리하게 짐을 실으면 안 돼!'같은 소리를 매번 듣고 있다.
여기서 깐죽거리는 말투로 '저 빠르게 안 달렸는데요?' 했다간 불호령이 떨어진다. 몇 번 더 했다간 발을 구르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시종일관 과속에 과적을 반복해야 한다. 면허정지를 넘어 벌금형과 구류형에 처할지도 모르는 가여운 꼬마버스다. 그런 엄중한 상황극에서 꼬마는 줄곧 두 발로 땅을 지쳐왔다. 서울에서 밸런스바이크를 타던 그 모습 그대로다. 새로 산 자전거는 페달이 있으니 도리어 걸리적거리기만 한데, 페달을 떼고 탈래? 물으면 절대 아니란다. 그렇게 하루에 최소 두 번씩 나가 두 발로 달리며 나를 훈계해 오던 꼬마. 짐이 도착할 4월이면 나와 함께 페달을 밟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꼬마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도를 낸 자전거의 페달에 슬금슬금 발만 올려보더니, 몇 번의 헛발질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구불구불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처음 자전거를 타게 된 어릴 때가 떠올랐다. 뒤에서 잡아주던 아빠가 손을 놓아도 나 혼자 달려갈 수 있다는 그 흥분. 꼬마도 다르지 않다. 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도취되어 발갛게 상기된 얼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순전히 그 이유로만 상기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찬바람에 볼이 튼 것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마음이 뭉클했다.
그 이후로 우리의 산책은 점점 속도를 낸다. 나는 공유자전거 앱에 가입해 진정한 꼬마버스가 된다. 제이와 꼬마버스는 동네 공원은 물론 옆 동네 공원까지도 용기 내어 달려간다. 우체국도 마트도 놀이터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길은 평지에다, 보도는 넓어 자전거 타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그러나 꼬마는 커브를 돌다, 돌길을 지나다, 무리하게 턱을 올라가려다 종종 넘어진다. 마주 오는 다른 자전거를 피하려다 엎어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무릎과 손을 털고 다시 안장에 올라탄다. '제이, 괜찮아?' 하면 '응! 나는 괜찮아!' 하고 속도를 낸다. 우리가 정한 정류장-공원 벤치 몇 곳-에 다다르면 물통의 물을 나눠마시고, 가져온 과자를 쪼개먹는다. 그리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되너케밥을 사러 간 저녁, 가게 문을 나서는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제이, 비가 오는데 잘 달릴 수 있겠어?' '응! 어서 가자!' 소중한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매달고서 열심히 달린다. 무사히 도착해 아직 따끈한 되너를 먹으며 행복해한다. 그렇게 요령을 익혀가며 점차 오르막, 내리막도 부드럽게 달리게 된 꼬마다. 지난 주말, 비스바덴으로 향하는 길에도 자전거는 함께다. 일요일 오전이라 한산한 거리에서도, 유서 깊은 성당 앞 광장에서도 꼬마는 자전거를 탄다. 꽃모양으로 심어놓은 판석을 따라 둥근 선을 그리며 달린다. 제법 안정적인 커브로 꽃모양을 완성한다.
나를 앞서가는 동그란 뒤통수.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장을 볼 때나 놀이터에서 놀 때도 절대 벗지 않는 헬멧. 그래서 집에 도착해 벗어놓은 헬멧 안은 뜨끈뜨끈하다. 열 손가락에 구멍이 뚫린 자전거용 장갑도 장만해, 체감상 하루 스무 시간 정도 끼고 지낸다. 며칠 전엔 자물쇠도 하나 산다. 어린이용 자물쇠는 심장에 충격을 줄 만큼 귀엽다. 세 자리의 휠이 모두 숫자 아닌 그림으로 되어있다. 해, 기차, 쥐, 강아지, 곰인형, 자동차 등의 그림을 돌려 암호를 맞춰야 한다. 그렇다. 까막눈도 소중한 자전거를 잘 지켜야 하니까.
어느새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단단히 근육이 자리 잡았는데, 아직 말랑한 팔과 너무 대조적이다. 어느 날엔 뒷 허벅지 양쪽이 거뭇거뭇하고 거칠어진 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제대로 빳따 맞은 것처럼 보인다. 놀라서 로션을 듬뿍 발라주는데 간지럽다고 웃는다. 이럴 땐 어린이가 맞는데, 자전거 위의 꼬마는 언제나 용맹스러운 제이다. 제이를 따라 달리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잔디가 푸르러지는 것을, 개나리와 벚꽃, 목련이 피는 것을 본다. 호숫가 오리들이 헤엄치는 것도, 이름 모를 아기새가 쫑쫑 뛰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는 유치원 입학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