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량 Mar 20. 2024

문 앞에 선 당신

독일에서 택배 받기

자잘한 것에서부터 덩치 큰 물건까지 택배를 받을 일이 있다. 택배 받기, 나는 이 사소한 일에 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장바구니 맨 아래 결제 탭을 클릭하고 나면 그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현관문 앞에 박스가 놓인 걸 보고서야 아, 뭐더라? 하고 말았다. 애가 생기고 나선 익일 배송을 넘어 새벽배송이나 당일배송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근무 중 짬 내어 장바구니를 채우고, 도착한 택배를 뜯으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필요할 때면 똑 떨어져 난감한 것들, 휴지도 세제도 탐폰도 모두 그렇게 주문했다. 밀키트와 냉동식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수한 비닐 생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편리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파트 공동현관의 비밀번호는 사실 비밀이랄 게 없어서 각 회사의 택배기사님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분이 그걸 모르면 안 될 일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태도로 비밀번호를 누른 뒤, 가득 채운 카트를 밀며 들어오시는 구세주. 공기처럼 당연하고 빛처럼 소중했다. 그런데 이곳 독일은


비밀번호란 게 없다. 공동현관의 출입문, 우리 집 현관문, 주차장문, 쓰레기장문까지 모두 열쇠로 연다. 짤랑짤랑 간수 느낌은 안 나는 게, 열쇠 하나로 모든 문을 열 수 있다. 내 열쇠로 공용공간의 문을 다 열 수 있지만 옆집 문은 못 연다는 게 열쇠 기술의 핵심이라는데, 기술이고 나발이고 도어락을 쓰면 되지 않나요? 싶었다. 그래서 열쇠를 잃어버리면 그 열쇠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의 자물쇠를 바꿔야 하고, 당연히 그 비용은 막대해 열쇠 보험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단해요, 열쇠 문화. 그리워요, 띠-리-릭.


그러니 기사님이 산타처럼 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가는 일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건물의 누군가가 공동현관을 열어주어야 두고 갈 수 있다. 1층-이곳에서는 0층-의 계단, 혹은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안에도 종종 아마존 패키지가 놓여있었다. 나도 거기서 두어 번 작은 택배를 찾은 적이 있다. 물건은 별 탈 없었고, 익숙한 비대면 배송서비스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큰 물건이나 중요한 서류 같은 것은 꼭 기사님을 만나야 할 때가 있다. DHL에서 오는 알림은 대단히 여유 있는 친구의 메시지 같다. '07시에서 14시 사이에 너희 집을 방문할 거야.' 그럼 나는 몇 시에 쿠키를 구우면 될까? 너 제정신이니?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날 되도록 외출을 자제했다. 아마존 알림은 보다 쫄리는 맛이 있었다. '너희 집에 도착하기까지 8집 남았어.' 그 알림을 확인한 것은 30분이 지난 뒤였다. 뭐야? 그럼 이미 지나간 걸까? 나는 꼬마와 동네 놀이터에서 젤라또를 핥고 있었고, 집까진 7분 정도의 거리였다. 하하, 그러나 우리에겐 자전거가 있지. 냅다 올라타 집 앞 골목에 들어서니 아마존 조끼를 입은 기사님이 옆 건물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 우리 집이 그다음일까? 아니면 지나간 걸까?


꼬마와 나는 집 앞에서 매복할까, 집에 올라가 태연히 현관문을 열어줄까 잠시 의논한다. 문득 이런 일을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 한숨이 나오지만, 이날 받아야 하는 건 꼬마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자전거용 공구였기에 기사님을 놓칠 순 없었다. 굳이 인터폰의 버튼을 눌러주고 싶다는 꼬마의 의견에 따라 집에서 기사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인터폰은 잠잠하다. 거리로 난 창으로 내려다보니 기사님은 이미 옆 건물로 향하고 있다. 응? 오늘 공구가 도착하지 않는 걸까? 그때 알림이 뜬다. '너희 집 우편함에 두고 간다.' 하, 그렇군. 다시 내려와 우편함을 열어보니 거기 작은 택배가 들어있다. 새삼 알게 되었다. 왜 독일 사람들이 인간 cctv마냥 창밖을 그리 쳐다본다고 하는지 알겠어. 다들 택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어.


어느 날 DHL 기사님은 택배를 주고서,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내게 독일어로 일장연설을 한다. 대충 눈치로 보아하니 3층의 모모 씨에게 갈 택배를 내게 맡기겠다는 이야기다. 나보고 전해주라고. 그러더니 단말기를 들이민다. 대리수령했다는 싸인을 하는 말이렷다. 허, 나는 이제 막 이사 와서 3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얌전히 내 성을 쓴다. Jung. 독일어론 융. 나는 칼 융만 생각하고 내심 머쓱해했는데, 독어로는 그게 젊다, 어리다는 뜻이라고 E님이 일러주었다. 이런이런, 머쓱을 넘어 코쓱의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이다. 기사님이 훌훌 떠난 뒤 나는 3층으로 살며시 가 본다. 집이 세 개나 있고, 모모 씨의 집이 어딘지는 모르겠다. 계단참에 슬쩍 두고 집에 돌아왔다, 혹시 몰라 다시 가 사진을 찍는다.


서울에서 택배 좀 받아본 짬이 여기서 빛난다. 나 분명히 여기 뒀어, 뒀다고. 나중에 모모 씨가 내게 따질 참이면 사진을 보여줄 요량으로. 이쯤이면 지극히 합리적인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모 씨는 집에 도착해 계단에 있는 택배를 잘 찾을 수 있겠지? 허나


어느 저녁 누군가 현관벨을 누른다. 퇴근한 달이 장난친다고 생각한 꼬마가 문을 벌컥 열었고, 마침 화장실 물을 내리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다소 흐트러진 매무새로 화장실을 나선다. 하필 화장실은 현관과 마주 보고 있고, 달을 반기려던 내 앞엔 낯선 남자가 서 있다. 그의 시선은 잠시 흔들렸으나 침착을 되찾고 대화를 시작한다. 너가 융 맞니? 응, 내가 융이야. 너가 내 택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어. 응, 내가 그거 3층에 가져다놨어. 라고 하고 싶은데 갑자기 횡설수설한다. 써드 플로어가 생각이 안 나, 트와지엠 에따쥬라고 말한다. 낯선 남자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황급히 퇴장한다. 그래도 그는 젠틀맨이었어, 문을 닫고 바지를 추스르며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벨 울린다고 함부로 문 열어주면 안 돼! 꼬마에게 외친다.


남의 집 앞 택배는 절대 안 건드리는 한국의 황금률을 떠올리며, 당일배송 특히나 비대면 배송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언제나 침착함과 느긋함을 유지하며 화장실을 나서자, 다짐해 본다. 아무쪼록 가슴 깊이 새길 게 참 많은 때를 지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용맹한 제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