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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May 05. 2024

그리고 베를린에서

자유도시에서의 48시간

세기말 <Lunch box>란 잡지가 있었다. 발행일을 기다려 잡지를 사서 모으던 시절이었고, 그건 중학생 용돈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난해한 화보, 솔깃한 인터뷰들, 파격적인 기사들에 내 마음은 쿵쿵 뛰었다. 잡지에 이런 말이 나와도 되나? 활자로 읽는 비속어는 생경했고, 그들이 가는 곳,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듣는 음악과 보는 영화는 묘사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독립잡지 특유의 친밀감-기사 속에 기자들의 사생활이 진하게 녹아든-도 그랬다. 나는 용기 내어 엽서를 쓰기도, 그게 다음 달 독자엽서란에 실리기도 했다. 인디와 언더의 차이점이 뭐예요? 나는 영문과 재학 중인 과외선생님에게 묻곤 했다. 쉽게 동요되고 함부로 마음을 주기 쉬운 나이, 잡지 속 이야기들은 내 정서의 한 축을 차지했었다. (나머지 한 축은 역시나 'FM음악도시'고)

그때 이른바 특파원들이 기고한 기사-베를린의 페스티벌, 클러빙, 도시 곳곳에서의 예술활동-들이 아직 내 안에 있었을까. 혼자 떠나는 주말, 행선지는 베를린이었다. 헤드윅, 타인의 삶,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그리고 베를린에서. 내가 생각하는 베를린의 이미지는 이런 것들이었다. 억압, 분노, 자유, 해방. 이런 키워드들은 여전히 유효할까. 억압이란 게 기껏해야 쳇바퀴 같은 가정보육의 나날이라도 슬쩍 가져다 비벼볼 수 있을까. 1시간 10분의 짧은 비행 동안 나는 눈을 감고 명상, 적어도 명상 비슷한 것이라도 하려 애썼다. 내 안에 깃드는 긴장을 좀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꽉 조인 현처럼 내 신경줄은 늘 팽팽했고, 그건 자꾸 예고 없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건 내게도 내 주변의 이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위탁수화물 없이 떠나는 가벼운 여행. 사전 정보 없이 다니는 짧은 일탈. 옷차림마저 가볍고 싶었으나 날씨는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그래도 베를린이지, 하며 가죽 트렌치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허나 바지 안엔 얇은 내복을, 등에는 핫팩을 붙인 상태였다. 그건 좋은 선택이었다. 부슬비가 내리다 작은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물러나고 맹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비를 긋는다는 핑계로 편집샵에서 편집샵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가게마다 예쁜 것들이 참으로 많았고, 그때마다 내 텅 빈 캐리어를 떠올렸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죄다 크고 무거운 도자기나 유리였던지라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몸을 데울 필요가 있어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짜조에 타이거맥주 혹은 사이공맥주를 마시다 보면 쌀국수가 나왔다. 국물은 따뜻하고 고기는 푸짐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기 좋은 컨디션이 되었다. 애매하게 출출해지면 감자튀김을 곁들인 커리부어스트를 먹었다. 참깨가 고루 발라진 시미트와 함께 커피도 마셨다. 초록 사과도 먹고 반미도 먹었다. 베를린 맥주도 물론 마셨다.


쇼스타코비치, 생상스를 볼륨 높여 들었다. 웅장함과 비장함을 만면에 띄우고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소품샵, 가구점, 나이키, 백화점, 강변, 미술관, 공원, 마트, 벼룩시장 등. 제일 재미있던 곳은 두 곳, 백화점 명품관과 벼룩시장이었다. 명품관 분위기는 뭐랄까, 한국처럼 종교적인 구석이 없었다. 그곳에선 손님인 나도 제의에 참가해야 하는 듯한 진중함과 엄격함을 풍겼던 것 같은데. 베를린의 명품관에선 친절하고 상냥하나 물건을 보여줄 땐 품 안에 한아름 안고 다가와 마구 펼쳐놓는, 시골 오일장 같은 부분이 있었다. 이건 이렇게 모양을 잡을 수 있어요, 하며 끈을 잡아당기는 손엔 거침이 없었다. 장갑도 한 손에만 끼고 있었다. 그게 꽤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와 가격은 늘 별개고.

일요일에 열린다는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은 역시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 행거에 한가득 걸린 가죽 재킷, 큰 테이블을 메운 필름 카메라들, 손으로 만든 물건, 보물처럼 남겨준 물건, 원래 주인은 이미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부스마다 가득했다. 인파 속에서 어깨너머로 구경하다 슬쩍 샛길로 새면 공원 나들이를 나온 많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잔디 위에서 고기를 굽고, 줄이 긴 그네를 타고, 놀이터에서 꺅꺅 거리는 베를리너들.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들도 여럿 보았다. 키보디스트의 현란한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춤을 추었다. 나는 함께 고기 굽던 친구들을 생각하고, 집에 두고 온 꼬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남은 자유를 세어보았다.

밤이면 클럽 앞에서 줄 서는 대신 호텔로 돌아와 발 뻗고 쉬었다. 이리저리 편한 자세로 바꿔가며 앤드류 스콧 주연의 <리플리> 시리즈를 보았다. 베를린에서 팔레르모의 풍경을 보는 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스콧의 연기는 색을 잃지 않았다. 마침 우연히 맞아떨어졌다. 여행에 챙겨간 필름은 로모그래피의 베를린. 아름답다고 생각한 풍경,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고 거울 속의 나-한 눈은 감고 한 눈은 뷰파인더에 감춘-의 모습이 흑백으로 남았다. 도시 저변에 깔린 자유에 대한 의지와 열망. 거기에 아주 살짝 발 담그고 돌아온 나는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졌다. 꼬마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으련만. 삼 개월차에 들어선 가정보육. 우리는 제법 고단하고 적잖이 즐겁다. 어떤 자유는 이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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