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프라우의 멀미
가끔 핸드폰의 사진 앨범을 열다 급작스러운 습격에 놀라곤 한다. 'n년 전 오늘'이란 이름으로 짧은 아카이브가 펼쳐진다. 그게 뜰 때마다 나는 허둥지둥 과거로 끌려간다. 저항할 도리 없는 속수무책의 덤벙덤벙. 어제는 '2년 전 오늘' 사진이 떴다. 거기엔 나와 꼬마가 있었다. 아직 만으로 6해를 살지 않은 꼬마에게 2년은 인생의 3분의 1이 넘는 시간이다. 그만큼 어리고 앳된 얼굴이었다. 키도 작았다. 그 작은 몸으로 막 새로 산 자전거를 타보고 있었다. 아직 페달을 밟을 줄은 몰라서 그냥 끄는 형식이었다. 마차의 말, 인력거의 인부처럼. 사진 속 햇살은 따스해 보였다. (짧은 앞머리 때문일까) 나도 조금은 어려 보였다. 애매한 웃음을 머금고, 맥줏잔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독일에 온 지 사나흘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로부터 2년, 이제 우리는 독일 체류 기간의 반환점을 돌았다. 이쯤 되면 원래 앨범에서 뭘 찾아보려 했더라? 이건 늘 잊어버리게 된다.
서울에서 보낸 짐은 도착할 소식이 없고, 가구 없이 텅 빈 집에선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렸다. 세탁기가 배송되던 날엔 환호성을 질렀다. 잘 마른 빨래들은 곱게 개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옷장이며 서랍장이 없었으니까. 급조한 침대에서 셋이 웅크려 잠이 들었고, 나의 잠은 토막토막 짧았다. 불안과 고민, 두려움과 낯섦. 24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놀이터에서, 학교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들이 생겼다. 서로 비슷한 고민, 오늘 저녁의 반찬거리, 학교 준비물 같은 것을 물어보고 답할 수 있다. 어느 마트에 생선 물이 좋은지, 어떤 한인 마트에서 뭘 세일하고 있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흠칫 놀라곤 한다. 김치 담그기나, 만두 빚기에 이르면 더 하다. 나는 우리가 세팅된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레트로, 복고, 90년대의 복각. 20세기말의 가정 주부 역을 맡은 우리들. 아이는 아직 혼자 집에 있을 수 없고, 남편은 출장이 잦다. 아니면 야근, 아니면 주말 출근. 나는 아직 이곳 언어를 모르고, 상식의 디테일도 모른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기 관련 공사를 하러 온 교포 사장님이 내게 말했다. 여기 왔다가 적응 못하고 우울증 걸려서 먼저 돌아가는 집들도 있어요. (꼬마를 흘깃 보며) 근데 애가 있으면 바빠서 우울할 겨를도 없는 거 같더라고.
업무와 상관없는 잡담이며, 은근슬쩍 놓는 말꼬리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완전 한국이잖아? 그 밑바닥에 은근하게 깔린 뉘앙스는 이 '팔자 좋은 여자'야, 그러니까 감사하며 살아, 같았다. 그런가? 나는 팔자 좋은 여자인가? 팔자 좋은 여자는 하루에도 서너 번 각기 다른 마트를 전전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루 네 번 아우토반 타고 직접 등하원 안 시킬 것 같은데. 팔자 좋은 여자는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두고, 매일 같이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칠 것 같은데. 마사지도 받고, 쇼핑도 하고, 음 또 뭐가 있을까? 나는 화끈함과 발끈함에 나도 모르게 '팔자 좋을 것 같은 여자'의 사례들을 찾다가 이를 그만두었다. 이게 다 부작용인 것 같았다. 일하다가 온 이들이 하루아침에 가정 주부, 여기 말로 하우스프라우가 되어서 겪는 멀미 같았다.
당근을 썰다가, 귀한 떡을 소분해 얼리다가, 한 보따리 가득 찬 판트 병을 짊어지고 마트로 향하다가 나는 서울이 그리워졌다. 강변북로의 출근길, 혼자 듣는 음악, 호록호록 마시는 커피. 도착 전부터 울리는 긴급 메시지(사실 다 긴급하지 않다)들까지 모두 다. 거기엔 내 책상이 있고, 파티션 위엔 내 직급과 이름이 있고, 나만의 내선 번호가 연결된 전화기가 있고, 내 노트북과 내 메신저와 내 옷걸이와 내 쓰레기통이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관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그래서 멋없고 적적하고 무난하고 심심한 것들이었지만 그 타고난 심심함으로 오래도록 사무실을 지키고 있겠지. 사람은 바뀌어도 사무집기는 영원하리. 종종 대놓고 커터칼을 그어대던 책상 위 유리도, 삼 단짜리 바퀴 달린 서랍장도, 그 오종종한 열쇠꾸러미들도 다 그대로겠지. 썩지 않는 핸드크림과,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티백. 어디선가 늘 튀어나오는 클립, 아 맞다, 다음엔 써야지 하고 백 년 동안 방치된 여행용 칫솔 세트, 돌돌 말린 여름용 덧신.
이제 집은 텅 비어있지 않다. 소리가 왕왕 울리는 일도 없다. 가구와 물건부터 사무실의 수준을 능가할 만큼의 많은 잡동사니들이 언젠가의 필요를 위해 켜켜이 들어차 있다. 나는 계절에 맞춰 옷을 바꿔 걸고, 무거운 온수매트를 이고 지고 접는다. 냉장고엔 학사일정이 붙어있고, 나는 휴일에 맞춰 형광펜을 긋는다. 앞집 아이의 이름, 나이, 다니는 학교를 안다. '2년 전 오늘' 사진에 등장한 맥줏집의 이름이 바뀐 것도 그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도 안다. 토요일엔 구독하는 신문이 배달되고, 가끔은 이곳 번호로 스팸 전화가 오기도 하니, 어느 정도 정착한 셈이다. 허나 반환점을 돌았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정리와 마무리를 위한 스텝을 밟아나가야 할 텐데. 내 발걸음은 다소 둔하다. 다음번 한국에서 오는 이가 책을 좀 가져다주면 좋으련만으로 시작된 소망은 방앗간 들기름과 고춧가루를 지나 두툼한 쥐포와 젓갈 근처를 맴돈다. 거기선 비리지 않은 비린 맛이 나고, 액수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고가 들어있다.
독일어 공부하기 싫어 편 노트북으로 이만큼 쓰고 말았다. 역시 독일어는 독일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