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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Oct 22. 2021

"야, 우리 맥북 같은 사람이 되자."

동네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에 앉는다.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시켜놓고 노트북을 편다. 노트북을 편다고 바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적당한 예열이 필요하다. 특히 낡은 레노버 노트북이라면 더욱 그렇다.


처음 맥북을 써 보고선 깜짝 놀랐다. 화면을 여는 것과 동시에 세팅이 완료되어 있다. 그러니까 로딩이라는 과정이 없다. 시계방향으로 동그라미가 뱅글뱅글 돌고, 그러다 뜬금없이 저절로 재부팅이 되곤 하는 빡침의 과정이 깔끔히 생략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폰에 애플워치와 에어팟, 아이클라우드와 애플뮤직까지 오래 써왔으니 이 세계가 안 익숙할 것도 없었다. 맥북까지 있으니 이제 애플 생태계의 완성이랄까, 나는 손쉽게 연결되고 빠릿하게 이어지는 이 세계에 빠져들었다. 빠져도 너무 빠져들었던 것이 급기야 어느 날 밤, 뭔가를 느릿느릿 굼뜨게 하고 있던 달에게 선언하기까지 이른다.


"야, 우리 맥북 같은 사람이 되자."


말은 청유형이었으나 사실 너 당장 네 맡은 바 일을 빠르게 처리하란 명령어였다. 인마, 너 자꾸 레노버처럼 굴래? 돌려서 말하면 이 말이었다. 우리 레노버로 말할 것 같으면 켤 때마다 지난 인생을 주마등처럼 복기하느라 헉헉댄다. 여러 프로그램들을 불러오느라 바쁘고, 메신저의 연결 여부부터 오리진과 스팀 로그인 여부까지 묻고 또 묻느라 정신이 없다. 야, 요즘엔 게임할 시간도 없다고. 그냥 인생이 실전 육아 게임이라고. 프로그램 설정을 바꿀 생각은 않고 나는 애먼 레노버를 꾸짖는다. 그럼 위잉 소리를 내며 대꾸하는 레노버다. 게다가 배터리는 얼마나 애달프게 줄어드는지 무거운 어댑터를 늘 지고 다녀야 하고, 그러느라 근처 까페의 모든 콘센트 자리를 꿰게끔 만들어줬다. 물론 내 어깨와 척추를 기울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사진을 매만지는 작업이 필요할 땐 아직 레노버가 손에 익다. 그게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당연히 하단의 콘센트를 지닌-에 앉게 된 연유다. 창 아래로 스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두고 나는 열심히 색감과 온도를 매만진다. 글씨를 요리조리 얹고 파일의 사이즈를 점검한다. 바야흐로 가을이 되었으니 북페어의 신청을 위해 바빠진 손길이다. 마감을 코 앞에 두고 집중을 하긴 한 모양이다. 눈을 들어 시계를 볼 때마다 30분, 40분씩 뭉텅이로 지나있다. 오후 2시가 넘자 마음이 조금 가빠진다. 작업한 파일들을 계속 저장해가며 속도를 올린다. 마침내 2시 20분에 이르러 나는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노트북과 어댑터와 텀블러를 가방 안에 때려 넣고 자리를 뜬다. 자꾸 기우는 어깨를 추키며 부지런히 걷고 걸어 집으로 향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트니트니에 가는 날이므로.


조금 전까지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올 바이 마이 셀프 외치고 있었는데, 이젠 '멋쟁이 토마토'를 함께 흥얼거린다. 동시에 돌봄 선생님과 합심해 아기의 옷을 꿰어 입힌다. 날이 많이 쌀쌀해진 만큼 옷 입히기 과정도 여간 복잡해진 것이 아니다. 아기는 이미 외출할 것을 알고 제가 좋아하는 오토바이 장난감을 들고 있다. 오토바이를 다른 손으로 옮기게 만들며 외투의 팔을 끼우는 일은 눈부신 야바위와도 같다. 지퍼를 채우며 '오늘은 엄마랑 선생님이랑 같이 빠방 타고 트니트니 가는 날이지?' 물으면 '빠방, 빠방.' 하고 답이 들린다.


아기는 조그만 공을 줍기도 하고 탱탱볼을 던지기도 한다. 블럭으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고 아치형의  구름다리도 지난다. 물론 한 손은 나와 꼭 잡은 채로 어딘가 심기가 불편해지면 금세 안기려 한다. 그 덕에 배며 등이며 말려 올라가는 옷을 잡아끌며 나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요란한 트니트니가 끝나고 돌아오면 한바탕의 놀이터 타임과 달의 퇴근을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이 이어진다. 준비한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놀다 재우기까지, 우리의 저녁은 매우 촘촘하고 조밀하게 짜여있다. 아기가 잠에 푹 들고나서야 다시 노트북을 펴고 아까의 작업을 이어나간다. 고요한 밤,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울린다. 좋아서 하는 야근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또 올해의 작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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