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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Oct 27. 2021

'늘 먹던 걸로', 대도식당

마음이 허하고 몸이 쇠하여 점심부터 고기를 찾았다. 시대에 역행하고 지구에 죄를 짓는 일이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침 황학동 어름이었기에 그만 '오늘은 대도식당이다!' 하고 외치고 말았다.



과거로 돌아가 17개월 전의 어느 날, 나름의 고민이 깊었다.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선 다들 자신들만의 세리머니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세리머니는 곧 들이닥칠 미래를 두려워함과 동시에 마지막 호젓함을 즐기려는 안간힘으로 이루어진다. 고민 끝에 h언니의 추천대로 고기를 택했다. '애 낳으면 고깃집은 당분간 절대 못 가. 좌식으로 된 곳이라도 연기도 있고 불판도 있지. 애 보면서 밥 먹기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도 분만을 하루 남기고 우리는 대도식당으로 향한다. 소고기 두둑이 먹고 영차영차 힘을 내어 아기를 밀어내기로 다짐한다. 골목 초입부터 가게 입구까지 자욱한 고기 냄새에 임산부의 마음은 적잖이 설렜다. 문을 열고 들어서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돌바닥은 물론이거니와 마루에 올라 좌식의 상에 앉기까지, 만삭의 나는 조심조심 내딛는다. 행여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만큼 온 사방이 좌르르 윤이 난다. 수십 년 켜켜이 쌓인 역사가 출산을 앞둔 이 밤을 더욱 기름지게 만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늘 먹던 걸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하며 등심 2인분을 주문한다. 작은 그릇 가득 고기가 담겨온다.  그 위에 놓인 희고 두툼한 기름 조각을 달궈진 무쇠팬에 던져 넣는다. 지글지글 녹아내리며 미끄러지는 기름, 그 위로 고기를 차차 올린다. 편으로 썰어 나온 양배추를 아삭 베어 물며 물끄러미 고기가 익는 과정을 바라본다. 흐뭇한 침묵, 불멍 아닌 고기멍.

그래서 씹을 틈도 없이 사라지는 고기를 먹고 힘과 용기를 내어 아기를 낳으러 갔던 기억이다. 이제야 다시 찾았으니 글쎄, 17개월 만의 방문이다. 희희낙락 웃으며 들어선 우리는 잠시 놀라고 만다. 아담한 단층의 건물은 그대로인데 안이 몰라보게 달라져있다. 구불구불 개미굴처럼 꺾어 들어간 통로와 칸칸이 나뉜 모습은 모두 훤하게 바뀌었다. 복도를 지나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나고 거기엔 입식의 테이블이 채워져 있다. 한옥의 천장은 반투명한 소재로 메워 공간이 밝다. 그러나 그것과 다르게 오스스 찬 기운이 들어 어깨를 움츠리는 우리다. 


'2인분이시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판을 보는데 새로운 메뉴도 등장했다. 고기 메뉴도 하나 더 생겼고, 수제 맥주에 위스키도 팔고 있다. 여기 여러모로 달라진 모양이네, 하며 등장한 고기를 팬 위에 올렸다. '양이 좀 줄어든 것 같지 않아?' 다시 메뉴판을 보니 1인분의 양이 200g에서 170g으로 줄어있다. '어쩐지, 접시가 조금 휑해 보이더라.' 쓸데없이 좋은 눈썰미로 고기의 중량을 체크하고선 말을 잇는다. 


저기 보니까 묵은지는 2천원 주고 시켜야 한대. 그러려면 첫 세팅에는 주고 추가할 때는 계산되는 게 낫지 않나? 바로 시키기엔 맛도 모르는데. 전체적으로 '대도식당'하면 떠오르던 넉넉한 분위기가 좀 사라진 느낌이야. 비싸지만 질 좋은 고기를 잘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로 바뀐 인테리어도 너무 매끈해서 흔해진 느낌이야. 한우 오마카세며 뭐며 요즘 유행한다는 고깃집들을 따라한 것 같잖아. 근데 왜 따라해? 그럴 필요가 없잖아. 명색이 대도식당인데! '등심을 맛있게 먹는 방법' 같은 설명이 그림과 함께 그려진 테이블 매트를 보며 우리는 수군거렸다. 


토속촌 생각해 봐. 줄을 기다렸다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을 고치고 고쳐 만들어낸 특별한 실내가 기다리고 있지. 줄지어 앉아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뚝배기를 두고 땀 흘리는 사람들을 봐. 게다가 독하고 쓴 인삼주까지 그냥 한 잔 준다고. 이게 진짜 간지지. 그런 유니크함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줄을 서게 하는 매력일 텐데. 대도식당의 다른 분점들이야 세련된 컨셉으로 짓는다고 해도 본점만큼은 옛 모습 그대로 지키고 있으면 좋았을걸.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성지의 모습을 간직하는 거지. 그러고 보면 기름기에 절은 상들은 어디로 갔을까? 황학동으로 갔을까? 하나쯤은 남겼으면 좋을 텐데. 같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문득


마음이 서운해지려 했다. 



서운한 마음으로 1인분을 더 추가하고, 여전히 가시지 않은 서운함의 여운을 안고 깍두기 볶음밥도 먹고야 만다. 물론 그 사이사이 파무침도 기름에 살짝 구워 먹고 아삭하고 단 양배추도 리필을 요청했으니 할 말은 없다만, 오직 이 사진 속 고기 한 조각만이 나의 서운함을 증명한다. 하나 남은 거, 너 먹어. 아냐 아냐. 너 먹어. 우리는 의 좋게 고기를 사양했다. 


'서운하게 잘 먹었네.'


하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로 향하는 길, 자연스러운 척 하나 상당히 어색한 배치의 발렌타인과 글렌피딕과 마주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게를 나왔다. 마지막 서운함은 여전히 지나치게 말쑥한 우리의 옷가지였다. 킁킁 고개를 파묻어봐도 은근한 고기 향밖에 나질 않는다. 어휴, 켜켜이 스며든 그 고기 냄새! 걸음을 뗄 때마다 온 동네 개들의 마음을 뛰게 했던 진한 향이 사라졌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느꼈던 한기가 바로 우수한 환풍 시스템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3만원의 서운함을 안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 '나는 고기도 이렇게 구워주고, 접시 가득 막 넉넉하게 주고, 그런 기억이 좋았단 말이야.' 하는 푸념에 달이 말한다. '어쩌면 13만원의 가치가 우리 기억보다 줄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 오, 이거야말로 생각해 볼 말이다. 오너의 감각, 오너의 야망, 오너의 수지타산을 위한 셈법을 흉보기 전 경제학 원론을 들췄어야 했나 보다. 그나저나 언제쯤이면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늘 먹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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