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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Oct 29. 2021

코로나 시대의 사람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2020년 그리고 2021년.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한 거지, 짚어봐야 할 만큼 뭉텅이로 흘러간 느낌이다.


2020년 1월, 우리는 공항 라운지에 있었다. 2019년 여름엔 문득 여름 여행 대신 겨울 여행을 갈까 상상했었고, 그럼 당연히 따뜻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콕 인, 치앙마이 아웃.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은 날들을 헤아려 보니 출국은 대략 임신 5개월 조금 못 미친 시점이다. 무사히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다행히 임신 중기는 위험도가 제일 적은 때라 한다. 특별히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 조심스럽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비행기 타는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이고자 치앙마이는 제외하기로 했다. 방콕 인, 방콕 아웃. 치앙마이의 숙소를 취소하고 방콕의 일정을 조금 더 연장했다. 그 정도면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떠날 때면 매번 공항에서 어른들에게 전화를 드리곤 했다. 이제 곧 출발하니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그때 부모님이 해 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뉴스에서 보니 중국에서 폐렴이 유행한다더라.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해.' 네, 네, 네. 우리 집엔 티비가 없고, 저녁 뉴스를 진지하게 보지도 않으니 그 말은 그냥 흘러들었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고 화약이 터지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비행기에서의 컨디션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설날, 중국 사람들에겐 춘절. 홀라당 마실을 다녀왔더니 방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다. 탁자엔 인쇄물로 된 편지 한 장과 빨간 봉투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귤이 놓여 있었다. 대충 읽어보니 차이니스 뉴 이어를 축하하며 투숙객 너희들도 새해에 복 많이들 받거라, 이런 내용이었다. 이게 홍빠오라는 건가? 빨간 봉투를 열어보니 금화 모양의 초콜릿 두 개가 들어있었다. 임신 중기, 단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으므로 덥석 베어 물었다.


빨간 봉투나 편지가 아니어도 설날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방콕 시내 곳곳에 붉은 장식과 황금색의 용 문양들이 가득했다. 중국 사람들은 이날 붉은 옷을 입는 모양이었다. 지상철 플랫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 이렇게나 중국 사람이 많다고? 놀라는 것은 아직 일렀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충분히 디스토피아적 상황이었다.


그때만 해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해 보였다. 솔직히 말해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모두들 따스한 남국의 겨울을 즐기고 있는데, 꼭꼭 마스크를 쓴 붉은 옷의 사람들. 달은 약간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시내를 돌아다니다 약국이나 드럭 스토어가 보이면 들어가 마스크가 있냐고 물었다. 모두 다 품절이었다. 아예 입구에 솔드 아웃이라고 써 붙여둔 곳들도 있었다. 그 말인즉 계속해서 마스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들에겐 마스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 정보는 모자라고 소문은 더디 퍼졌다. 우리는 하루 만 보씩 거뜬히 걸으며 방콕을 누볐다. 술 마시는 것과 오토바이 타는 것만 제외하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야시장도 가고, 밤의 유람선도 탔다. 더운 나라의 달달한 디저트는 끝도 없이 들어갔다. 아기의 뇌를 만드는 데 당분이 필요하대. 나는 이 말을 천하무적의 방패막이처럼 썼다. 타이 밀크티와 연유를 뿌린 도넛, 망고를 비롯한 열대 과일들을 계속 먹었다. 해를 받으며 수영도 하고 썬베드에 누워 그림도 그렸다. '아기 태어나고 나면 당분간 먼 여행을 가기 힘들다며? 그러니 지금 마음껏 놀자.' 그 말은 불길한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아기가 태어나던 5월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섰던 것일까. 분만실에 맨 얼굴로 입장할 수 있었고, 엄마와 아빠도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손주를 볼 수 있었다. 수척하고 퉁퉁 부은-출산 직후엔 이 두 가지 표현이 한 몸에 혼재되어 있다-나를 안아주며 토닥일 수도 있었다. 이후엔 모든 게 금지되었다고 한다. 제대로 수발들 이도 없이 마스크 쓰고 겪는 진통이라니, 상상도 가지 않는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아니 코로나 시대의 진통.


내 주변의 이들은 모두 백신을 맞았다. 근육통과 열감 외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오른손 잡이시죠? 그러면 왼쪽 팔에 놓을게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0.5초간 머리를 굴린 다음 대답했다. '아, 저 왼쪽 팔로는 아기를 안아야 해서요. 오른팔에 맞겠습니다.' 그렇게 두 번 다 오른팔에 접종을 했다. 약간의 피로는 있었지만, 그게 백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피로하므로. 오죽하면 굳은 어깨를 주물러주는 달에게 하소연했다. '나 두 손 뒤로 수갑 차고 연행되고 싶다. 그럼 굽은 어깨가 강제로 펴질 텐데. 지금은 완전 커브드 모니터라고.'


많은 희생과 암담한 사연들이 있었다. 사회의 약한 고리들에 금이 가고 깨진 것을 목도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공백 사이 방치된 학생들이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 폭력과 학대가 도처에 만연하리라는 걱정이 든다. 그것이 불가역적인 상태에 이르지 않았길 빈다. 회복의 시간에 충분히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이 시대도 어떤 식으로든 막을 내리겠지. 그게 유일한 희망이다.


'바야흐로 엄청난 시대가 올 거야, 그러니 너희들 어서 에어비앤비 주식을 사.' 친한 친구들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다들 흘려들은 모양이다. 잘했어. 친구들아. 40퍼센트 수익률을 보고 눈이 돌아가 불타기를 한 덕에 한층 겸손해진 나다. 하지만 이건 팔려고 산 게 아니란다. 이건 계속 가져갈 거야.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의 영역이라는데 내 예술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거든. 이런 실없는 생각만 하고 있다. 더불어 마스크 없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표정들을 아기가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가, 엘리베이터 같은 막힌 장소의 맨 얼굴들이 참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2년도 안 된 시간, 우리가 어떻게 부대끼고 부비며 함부로 비말을 튀기고 맞아댔는지 모를 일이다. 마스크 착용 덕에 감기 환자가 크게 줄었다는데, 그깟 감기쯤이야 두렵지 않다.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전망은 내 어깨를 더욱 굽게 만들지만, 그러나 우리가 함께 새로운 곳으로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횡행하는 시장 속 작고 여린 나는 아직 인버스를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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