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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Nov 02. 2021

축축한 날들

호텔 부페에서 늘 같은 농담을 한다. '남은 것 좀 싸갈래? 주머니에 좀 넣어 가자. 가지 나물이나 애호박볶음 같은 거.' 주로 질퍽하고 축축한 것들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서는 상상.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저 사람, 제정신 아니구나. 하고.


요즘의 내 기분이 그렇다. 질퍽하고 축축한 것, 불쾌함 몇 덩어리를 넣고 다니는 느낌이다. 주머니 위로 얼룩이 생기고 그 얼룩은 쉽게 지지도 않는다. 해를 쬘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들어 거리를 쏘다녀보지만 노트북이며 책, 노트가 든 가방 덕에 어깨가 아프다. 


해가 지고 있다.


책과 글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위안을 찾는 법을 알고 있어 다행이다. 그건 내가 처음 불행에 깊이 발 디딘 때가 20세기여서 가능한 일이다. 지금이라면 나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선 남 모르게 쉬어갈 수 있긴 한 걸까. 넘쳐나는 영상과 메시지들, 그것도 내 앞으로 달려드는 슈팅 게임의 요격물처럼 느껴진다. 20세기를 지나온 이의 상상은 이렇다.

나가기 전 책장에서 고른 책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사람 없는 까페의 2층에 앉아 책을 폈다. 마침 해가 사선으로 들었고, 연달아 찬 음료를 마시고 있는 나를 데워주었다. 그럼에도 한기가 들어 머플러를 꺼내 둘렀다. 테이블 정리를 위해 온 직원이 히터를 켜주고 간다. 읽으며 생각했다. 언제 읽어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달라짐에 따라 책 속의 글도 점차 다르게 읽힌다. 무수히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살아남은 책이 주는 은총. 고전의 은사.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았다. 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것을 이제야 봤다. 한겨울, 껑충하게 올라붙은 바짓단과 미어져가는 운동화. 한여름엔 땀에 전 이마와 상기된 볼. 비행기가 멀리멀리 날아갈 때 내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밤, 발목끼리 서로 부비며 잠을 청한다.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너무 깊이 몰두하면 안 돼. 그러다간 정신이 또렷해지고 그 대가는 내일 똑똑히 치르게 될 테니까.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이름들을 지우려 노력한다. 내게 저지른 무례, 내게 준 섭섭함, 내게 안긴 실망. 대수롭지 않게 어긴 약속과 늘 조금씩 늦던 일. 지나친 살가움과 내게 늘어놓던 남들의 험담. 그러니 어디 가서 내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던 구설. 밤은 고요하고 나는 지나치게 남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사람 좋은 것처럼 마냥 무르게 굴던 나를 먼저 탓하지 않고, 손쉽게 생각하고 만다. 미워하고 만다. 


마지막 생각은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었다. 사 분의 일쪽으로 자른 청록의 사과를 그리자.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색으로 자연물들을 그리자. 그렇게 슬쩍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 '엄마'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방에 들어가 아기를 다독이니 칭얼거리며 내 옆으로 착 붙는다. 공기에 찬 기운이 섞여있었다. 이불을 절대 덮지 않는 아기를 데우기 위해 어깨며 다리를 쓰다듬었다. 제 손 언저리에 내 손이 닿으면 잠결에도 슬며시 그러잡는 아기. 고르게 잦아드는 숨소리를 들을 때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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