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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Nov 08. 2021

어떤 부부의 세계

지난 주말의 부모님과 . 사진을 찍어준 달도, 나중에 사진을 받은 나도, 그리고  사진을  많은 친구들도 구도와 시선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친구 j는 대체  분이  저렇게 앉으셨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건 배경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포즈를 잡아보라  지시가 끝나자 말자, 엄마가 급히 그늘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기미가  생기는  싫다며 자리를 총총 옮기고선 아빠더러도 이쪽으로 오라고 말했다. 아빠는 말했다. '나는  받는  좋다.'


심정적으론 아빠 편이었다. 공원에 나오면 해 받는 게 좋지. 하지만 엄마의 의사도 충분히 존중한다.


그래서 둘은 나를 가운데 두고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중의 공을 쫓는 것처럼 고개를 열심히 돌려가며 대화에 참여한다. 막상 앉아있을 땐 별로 웃긴 것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거리감-부모님 사이뿐 아니라 그 사이 덩그러니 놓인 나까지의 거리-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까지 느끼는 나, 중립의 방관자다.


세상 어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있을까. 크고 작은 말다툼, 좁혀지지 않는 거리, 치밀어 오른 분노가 차갑게 식기까지. 싸움은 비슷할 텐데 집집마다 디테일은 달랐다. 달은 부모님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고 했다. 둘이 계속 그렇게 싸우면 나 뛰어내릴 거라며 베란다 난간에 기어올랐다고 한다. 아들의 대담한 제스처에 부모님은 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혀를 찼다. '너, 진짜 대단하다. 되게 극적인 사람이네.' 진심을 담은 이상한 칭찬을 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무섭도록 비가 쏟아지던 밤, 부부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말 그대로 집이 풍비박산 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아이들은 재빠르게 종이비행기를 접는다. 그리고 싸우는 부모님을 향해 비행기를 날리며 외친다. '싸우지 마, 싸우지 마.' 오누이의 용감한 외침. 나 역시 어린 남동생을 둔 누나였지만 빛을 발할 기지 하나 없이 눈물만 왕왕 흘렸다. '싸우지 마세요. 싸우지 마세요.' 명령이 되지 못하는 서글픈 청유, 힘 없이 쪼그라드는 애원. 그런다고 멈춰질 싸움이었으면 시작도 않았겠지. 몇몇의 기억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생생하다. 원고를 쓴답시고 기억을 꺼내놓자 후두둑 눈물부터 샜다. 어쩌면 나는 열다섯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을까.


아니다. 나는 한 발짝이 아닌, 열 발짝 스무 발짝도 더 나아갔다.


아직 제대로 말 못 하는 아기 앞에서 서로 날 선 감정을 쏟아낸다. 아기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적어도 잠들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지금 당장 이기고 싶은 알량한 감정이 자꾸 입을 열게 만든다. 피차 마찬가지라 싸움은 은근하고 집요하게 이어진다. 아기는 이상한 기미를 감지하고 평소보다 더 칭얼거리곤 했다. 불안함을 느껴 내는 짜증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보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혼자 책을 열었다 닫고, 장난감을 꺼내 노는 모습을 본 게 충격이었다. 분명 사나운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아는데, 그에 반응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다. 그건 어린 날의 내 모습과 다름없었다. 머리가 쿵 하고 울렸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기 앞에서 그러지 말아야지. 맹세가 절로 새겨졌다.


밤새 거센 비가 내려 어제의 단풍은 많이 졌을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걷게 되는 흐린 아침, 곧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기는 놀란 눈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북적이던 집이 조용해지고 아기도 나도 상념에 빠졌다. 가을이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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